에베레스트 정복 허영호,별이 되다…국내 최고령·최다 ‘기록의 사나이’

고(故) 허영호 대장이 2018년 4월 한국일보 본사에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반 30주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4년 한국일보 창간 40주년 기념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 이끌고
세계 4번째로 남극점 도보 탐험 성공… ‘무보급·무휴식 대장정’은 처음
함께 남극점 찍은 홍성택 대장 “가장 대장 다운 대장이었다”

1994년 1월 12일 자 한국일보 1면에 한국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꾸린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의 남극점 도달 기사가 실려 있다. 고 허영호 대장은 이때 탐험대장으로 부원 3명을 이끌고 ‘무보급·무휴식 대장정’을 펼쳤고, 탐험 시작 40일 만에 남극점에 도달해 태극기를 꽂았다.

세계 최초로 3극점(북극·남극·에베레스트)과 7대륙 최고봉을 동시에 밟은 산악인 허영호 대장이 29일 담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故) 허영호 대장은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제천고와 청주대를 졸업, 1987년 대한민국 산악인 최초이자 세계 등반 사상 3번째로 겨울철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했다. 겨울 에베레스트는 혹독한 저온과 강풍, 심한 폭설, 짧은 일조시간 등으로 위험성이 높아 등반 성공률이 매우 낮다. 등반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고인은 늦은 나이까지도 탐험을 멈추지 않았고, 2017년 5월 국내 최고령인 63세 나이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국내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6회) 기록도 고인이 보유하고 있다.

1994년 1월 11일 한국인으로 처음 도보로 지리학적 남극점에 도달한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가 태극기와 한국일보사기를 앞세우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승환, 허영호, 유재춘, 홍성택 대원. 한국일보 자료사

1994년 1월 11일 한국인으로 처음 도보로 지리학적 남극점에 도달한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가 태극기와 한국일보사기를 앞세우고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승환, 허영호, 유재춘, 홍성택 대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인은 세계 최초로 3극점(1987년 에베레스트·1994년 남극점·1995년 북극점) 도달에 성공했는데, 이 중 1994년 남극점은 한국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꾸린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와 함께 밟았다. 당시 고인은 홍성택, 유재춘, 김승환 등 대원 3명을 이끌고 영하 30~40도의 혹한과 초속 40m가 넘는 폭풍설 속에서 장장 40일간 1,400㎞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 남위 90도 남극점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로써 한국은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선 아문센 탐험대(1911년) 이후 도보로 탐험에 성공한 4번째 나라가 됐다.

이때 기록이 특별한 건 남극점으로 향하는 40일 간 중간 보급이나 휴식 없이 ‘무보급·무휴식 대장정’을 펼쳤기 때문이다. 고인과 대원들은 1인당 120㎏의 장비와 식량을 썰매에 싣고 오로지 도보를 통해 남극점에 도달했다. 덕분에 1년 먼저 같은 거리를 탐험한 일본원정대보다 등반 기간을 23일이나 앞당겼다. 

1994년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94 한국 남극점 탐험' 대원들이 귀국 후 두 대의 오픈카에 타고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오른쪽이 고인경 단장, 허영호 대장, 정길순 대원이고 뒤차에 김승환


1994년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94 한국 남극점 탐험’ 대원들이 귀국 후 두 대의 오픈카에 타고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오른쪽이 고인경 단장, 허영호 대장, 정길순 대원이고 뒤차에 김승환, 유재춘, 홍성택 대원이 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4년 1월 30일 자 한국일보 11면에 한국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꾸린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 화보가 실려 있다. 탐험대는 당해 세계 4번째로 남극점 도보 탐험에 성공했다.

1994년 1월 30일 자 한국일보 11면에 한국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꾸린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 화보가 실려 있다. 탐험대는 당해 세계 4번째로 남극점 도보 탐험에 성공했다.

고인은 에베레스트를 필두로 남미 아콩카과(6,959m), 북미 매킨리(6,194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오세아니아 칼스텐츠(4,884m), 유럽 엘부르즈(5,642m), 남극 빈슨 매시프(5,140m)를 등정하며 세계 7대륙 최고봉 정상도 밟았다.

고인과 남극점, 에베레스트 등정을 함께 했던 홍성택 대장은 30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고인을 “내가 경험한 대장 중 가장 대장 다운 대장이었다”고 추억하며 “등반을 잘하는 건 기본이고, 공부와 연구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하기 때문에 준비부터 마지막까지 항상 완벽했다. 대장님과 등반하면서 인명사고가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고 전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로를 인정해 고인에게 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을 수여했다.

고 허영호 대장이 1994년 한국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꾸린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와 함께 남극탐험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 허영호 대장이 1994년 한국일보 창간 40주년을 맞아 꾸린 ’94 한국 남극점 탐험대’와 함께 남극탐험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산악인으로 명성을 떨친 후엔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파일럿이 되기 위해 1998년 초경량 항공기 조종면허를 따고 세계일주에 나섰다. 한 차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08년 4월 여주-제주 1,000㎞ 단독 비행에 성공한 데 이어 2011년에는 초경량 비행기로 국토의 동·남·서쪽 끝인 독도, 마라도, 가거도를 거쳐 다시 충북 제천비행장으로 돌아오는 1,800㎞의 단독 비행을 완수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자녀 허재석·정윤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8월 1일 오전 10시 40분이다. 장지는 충북 제천 선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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