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아닌 극우로 전락한 국민의힘
새 정치세력 만드는 외엔 방법 없어
유력 개혁보수 정치인들이 나설 때
급기야 여기까지 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으로 자멸했듯 국민의힘도 전당대회로 자폭했다. 정상 보수정당으로의 회생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짓밟고 헤어 나올 수 없는 무저갱에 스스로를 처박았다. 국힘은 더는 보수정당이 아니다. 수구란 규정도 한가하다. 그건 변화를 원치 않는 게으른 부작위 행태를 의미할 뿐이다.
극우든, 극좌든 접두사 극(極)을 붙이는 기준은 급진성이되 그 급진성을 판단하는 요소가 위법성과 폭력성 여부다. 헌재 판결대로 위헌적 폭력으로 기존체제를 일거에 뒤집으려던 게 계엄사태의 본질이다. 이후에도 정상 법 절차를 거부하고 법원난입 등의 폭력행위를 조장, 방조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치받았으니 정의(定義) 그대로의 극우다.
처음엔 윤석열과 주변 몇몇의 일탈로 착각했다. 대부분의 국힘 의원들이 겁먹은 좀비로 보여 연민의 정도 품었다. 아니었다. 계엄 이후 9개월간의 과정은 그들이 계엄을 만든 진짜 극우의 토양임을 보여주었다. “모든 힘을 바쳐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겠다”는 장동혁 대표의 첫 일성은 자기개혁 없이 오직 반(反)이재명에만 기대겠다는 기생(寄生)정치 선언에 다름 아니다. 굳이 윤석열을 면회하지 않아도 이미 그대로 ‘윤 어게인’이다.
아무리 이재명 정권의 선의를 믿어본다 한들 일당정치의 본질적 한계를 간과할 수는 없다. 민주정치에서 합리적 견제세력의 존재는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범보수층의 공감을 끌어내고 수권세력으로서의 실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면 그만으로도 훌륭한 야당 역할이다. 지금의 국힘 체제와 구성원으론 어림도 없다.
보수정치인 중에 인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찍이 개혁보수의 기치를 든 유승민에 윤의 반민주적 행태에 끈질기게 제동 건 한동훈, 이젠 확실하게 주관 갖춘 안철수, 6선 중진 조경태 등등…. 다들 국힘 주류에게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이들이나 뒤집으면 배신자 딱지는 훈장이다. 이 정도의 자질과 경륜을 갖춘 유력정치인들이 왜 희망 없는 당에 머물러 있나. 장동혁 체제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바뀌리란 기대는 접는 게 좋다. 2년 뒤 총선을 두고 공천에 목숨 건 그들은 더 절박하게 기득권에 집착할 것이다. 앞날은 당내 수모뿐이다.
‘제3지대 필패론’이라는 게 있다. 보수기득권 정당에서 독립해 성공한 경우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실제로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서부터 이인제의 국민신당,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비박계의 개혁보수신당 등 기억되는 제3의 신당들이 하나같이 성장치 못하고 스러졌다. 이런 선례가 발목 잡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전 제3지대 정당들은 당내 갈등에다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해가 동기였던 게 대부분이었다. 큰 틀에서 보수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정치적 지향점에서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지금의 국힘은 보수정당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상태다. 전국적으로 중도·온건보수층의 민의를 대변할 만한 세력이 실종됐다는 의미다. 이만하면 제대로 된 보수정당에 내줄 공간은 충분히 조성돼 있다.
이 시점에선 정상정치를 복원하고 보수가치의 복구를 시도하는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적지 않은 정치자산을 보유한 유력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철학과 대척되는 당 안에서 가망 없는 미래를 바라고 있는 모습이 도리어 구차하다. 당장엔 미약해도 갈수록 바닥 민심서부터 새 파장이 번져갈 것이다. 이게 그들을 유력정치인으로 키운 국민에게 빚을 갚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