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엘에이 시민의 자화상

일요일 아침, CVS에 들어섰다. 이곳은 이제 더 이상 ‘동네 약국’이 아니다. 입구에는 무장한 시큐리티가 서 있고, 스토어 매니저는 안내원이 아니라 방패처럼 문 앞에 버티고 있다.

물건 하나를 고르려면 버튼을 눌러 직원이 와서 장치를 열어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쇼핑이 아니라 족쇄 푸는 절차에 가까운 풍경. 이것이 현재의 로스앤젤레스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휴대폰을 든 남성이 진열된 담요를 들고 태연히 걸어 나간다. 매니저가 붙잡으려 하지만 밀려나고, 옆에 있던 경비원은 움직이지도 않는다.

“내 이불이 젖었단 말이야”라는 변명과 함께 사라져가는 뒷모습에선 도둑질과 피해의식, 방치된 사회가 뒤엉킨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구도 막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속을 피해 밀려난 노숙인 캠프가 어느새 길 건너에서 우리 집 바로 앞까지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저 사진을 찍어 신고하고 걸음을 옮겼다. 화도, 동정도, 피로감도 사라졌다. 익숙해진 비극은 더 이상 감정을 소모하지 않는다.

그렇다. 이 도시는 지금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곳’이 되었다.

상점은 진열장을 잠그고, 주민은 무표정하게 신고 버튼만 누르고, 공권력은 주민을 보호하지 못한다.

노숙과 절도, 무기력한 제도, 그리고 무감각해진 시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공동체 붕괴의 현장.

로스앤젤레스는 여전히 빛나는 도시라 불린다. 하지만 그 빛은 더 이상 사람을 밝히지 못한다.

텐트가 차지한 인도, 잠긴 진열장, 감정 없는 시민.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실체다.

이곳에서 시민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도시의 잔해 속을 무감각하게 떠도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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