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이 미국 라디오를 바꿨다…”요청 아닌 권력의 이동”
미국이 본 K팝 성공 비결…”아티스트 아닌 팬덤이 주인공”
글로벌 성공의 역설…”한국 팬들은 멀어졌다고 느낀다”
“제발 BTS 노래 한 번만 틀어달라고 전화하던 2017년의 팬들이 아니다. 그들은 방송국을 바꾸고, 산업의 판도를 뒤흔든 새로운 권력이었다.”
2025년 공개된 BTS 다큐멘터리 ‘Forever We Are Young’은 시작부터 선언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무대 위 슈퍼스타 BTS가 아니라, 객석과 모니터 뒤에서 세상을 움직인 팬덤 ‘아미(ARMY)’라고. 수많은 BTS 다큐가 그들의 성공 신화를 조명할 때, 이 작품은 영리하게 카메라를 돌려 그 신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2010년대 후반 미국 라디오 방송국을 뒤흔든 ‘아미 혁명’이다. 당시 베테랑 라디오 프로그래머였던 Sassy는 “영어 노래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K팝 그룹의 한국어 노래는 전례 없이 미국 전역의 라디오 전파를 탔다. 음반사의 거대한 로비 때문이 아니었다. 트위터 캠페인과 이메일, 끈질긴 전화 요청 등 팬들의 조직적인 ‘압박’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다큐는 이 과정을 단순한 ‘팬들의 열광’으로 그리지 않는다. 미디어를 움직이고, 산업의 관행을 깨부수는 ‘권력의 이동’으로 생생하게 포착한다. 더 이상 “노래를 틀어달라”고 애원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당신들이 틀어야 할 것”을 관철시키는 주체적 권력의 탄생이다. 테네시의 마을 딸기 축제에서 보라색 BTS 티셔츠를 입고 행진하는 중년 여성들, 라틴 아메리카의 광장에서 BTS 춤을 추며 SNS 스타가 된 청년의 모습은 BTS가 어떻게 팬들의 삶 자체를 바꾸는 ‘문화 현상’이 됐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동시에 다큐는 팬덤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다룬다. 특히 “BTS가 너무 커져서 멀어진 것 같다”고 토로하는 한국 팬들의 인터뷰는 글로벌 성공의 역설을 날카롭게 찌른다. 모두의 스타가 되면서, 가장 먼저 지지했던 이들의 상실감은 아이러니하게 커졌다. K팝이 세계의 표준이 되면서 ‘한국성’이 희석되는 미묘한 지점까지 포착해낸다.
또한 팬들의 ‘자발적 행동’이 플랫폼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무급 노동’이 되는 현실적 비판은 교묘히 비껴가지만, “팬덤은 어떻게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가?”라는 질문에는 성실히 답한다.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팬덤이 자발적으로 거액을 기부한 사례 등을 통해, 아미가 단순한 팬클럽을 넘어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하나의 ‘커뮤니티’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Forever We Are Young’은 단순한 팬 무비가 아니다. BTS의 성공 뒤에 숨겨진 진짜 엔진, 즉 팬덤이 어떻게 미디어 생태계를 재편하고 문화의 권력을 이동시켰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보고서다.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라디오를 점령했던 팬덤은 이제 무엇을 할까? 영화는 조심스럽게 미래를 암시한다. 이들은 이제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틱톡의 알고리즘을 역으로 설계해 콘텐츠를 확산시키는 ‘알고리즘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다. ‘Forever We Are Young’은 BTS에 대한 기록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권력자로 떠오른 21세기 팬덤에 대한 가장 시의적절한 탐사 다큐다.
강채은 기자 | chase.press.kr@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