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탁과 주변의 보이지 않는 독성 물질, 프탈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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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부터 위험성 경고에도 일상 곳곳에 그대로

플라스틱·가공식품·화장품을 통해 인체로 유입돼

불임·발달장애·암 위험까지… 사회적 비용 수억불

태아·어린이의 호르몬 체계 교란, 되돌릴 수 없어

규제 강한 EU·미국은 느슨… ‘침묵의 피해’ 키워

노스캐롤라이나주 캐리에 거주하는 독성학자 얼 그레이(80)는 지금도 40여 년 전의 실험 장면을 잊지 못한다. 1980년대 초, 그는 당시 연방 환경보호청(EPA) 산하 실험실에서 특정 화학물질이 생식 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가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 물질은 ‘프탈레이트(phthalates)’였다. 이 화학물질은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었지만, 그 영향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레이는 옥수수기름에 프탈레이트를 섞어 실험쥐에게 투여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눈에 띄게 이상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컷 쥐들의 고환은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았고, 정자가 이동하는 통로는 막혀 있었으며, 일부 개체에서는 생식기관이 아예 없거나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외형적으로는 암컷과 수컷의 특징이 뒤섞인 듯한 형태를 띠는 개체도 있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도 명확한 패턴이 보였어요. 어떤 쥐에서는 장기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죠.” 그는 당시에는 이 결과의 심각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당시 실험은 인간에게 보내는 명백한 위험 신호였다고 확신하고 있다.

■ 플라스틱 시대를 타고 번진 화학물질

프탈레이트는 20세기 중반 플라스틱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함께 확산됐다. 값이 싸고 가공이 쉬운 플라스틱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이 화학물질은 산업 전반에 ‘마법의 첨가제’처럼 사용됐다. 프탈레이트는 비닐 바닥재, 샤워 커튼, 어린이 장난감과 고무 오리 인형, 의료용 튜브, 혈액 주머니, 링거 라인, 화장품(향수, 로션, 샴푸, 매니큐어), 식품 포장재와 가공 라인 장비, 자동차 내부 마감재, 전선, 케이블, 페인트, 접착제, 비옷, 인조가죽 등 제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특히 문제는 이 물질이 플라스틱에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 먼지, 음식, 물로 쉽게 빠져나와 인체로 유입될 수 있다. 음식을 포장한 비닐랩, 플라스틱 용기, 식품 제조 기계의 호스에 닿는 순간, 우리는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섭취하게 된다.

■ 과학이 밝힌 충격적인 상관관계

지난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연구는 프탈레이트가 단순한 산업 물질이 아니라 인체 내 호르몬 시스템을 교란하는 ‘내분비계 교란물질(endocrine disruptor)’임을 밝혀냈다.

이 물질과 연관된 건강 문제는 ▲남성 정자 수 감소 및 불임 증가 ▲고환 기형 및 발달 장애 ▲임산부의 조산 위험 증가 ▲태아 성장 지연과 저체중 출생 ▲ADHD, 자폐 스펙트럼 등 신경 발달 문제 ▲심혈관 질환 및 고혈압 위험 증가 ▲인슐린 저항성 증가와 당뇨 위험 ▲특정 호르몬 관련 암(유방암, 전립선암) 위험 증가 등이 보고됐다.

특히 태아와 유아기 시기의 노출이 가장 치명적이다. 이 시기에는 인체의 호르몬이 매우 정교한 신호에 의해 장기와 뇌가 형성되는데, 프탈레이트가 이 신호를 ‘가로채거나 왜곡’하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대(NYU) 연구팀은 프탈레이트 노출이 미국 내 사망률과 질병 증가에 어떤 경제적 부담을 주는지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약 667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영원한 화학물질’이라 불리는 PFAS보다도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 느리고 분산된 정부의 대응

문제는 이러한 과학적 경고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1990년대부터 프탈레이트에 대한 위험성 논문은 줄곧 발표되어 왔다. 하지만 규제는 지극히 더디게 진행됐다.

그러나 연방 정부의 대응은 조각나 있었다. 일부 물질은 식품의약국(FDA) 관할이고 다른 일부는 환경보호청(EPA), 또 장난감은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담당하면서 책임이 분산돼 강력한 규제를 추진할 주체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지난 2009년이 되어서야 연방 정부는 어린이 장난감에 사용되는 3종의 프탈레이트를 금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최소 9종의 프탈레이트가 식품 접촉 물질이나 산업 제품에서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국 내에서 실질적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허용’ 상태로 남아 있다.

전직 FDA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법적으로 확실한 피해가 입증되지 않는 한 기업 제품을 금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사이에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유럽연합(EU)은 ‘예방 원칙’을 적용한다. 즉, 유해성이 의심되면 완전한 과학적 증명이 없어도 우선 제한한다. 따라서 주요 프탈레이트 4종은 전면 사용 금지되고 있고, 화장품과 장난감 분야에서는 최소 12종이 금지돼 있으며, 대체물질 사용을 의무화하는 한편 제조사가 ‘무해함’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무해함이 입증될 때까지는 사용 가능’이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 차이가 수백만 명의 건강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우리가 먹어온 음식의 진실

프탈레이트는 특히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에서 높은 수치로 검출된다. 냉동피자, 라면, 소시지, 가공육, 과자류, 패스트푸드, 배달 음식, 대량 생산된 빵과 제과류 등 제품들의 포장 자체보다는 가공·조리·이송 과정에서 플라스틱 장비를 통해 음식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조사 결과 미국인 대부분의 소변에서 프탈레이트 대사물질이 검출됐다. 이는 사실상 ‘전 국민 노출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레이 교수는 과거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고무 오리 장난감을 사주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난감의 40%가 프탈레이트였습니다. 그걸 물에 띄워 놀게 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마음이 아픕니다.”

■ “되돌릴 수 없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미 노출된 세대다. 태아 시기에 프탈레이트에 노출된 아이들의 뇌 구조와 생식 기관 발달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뇌 발달은 ‘한 번의 기회’입니다. 프탈레이트가 특정 시기에 이를 방해했다면, 그 영향은 평생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프탈레이트 프리(phthalate-free)’를 광고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회의적이다. 대체물질 또한 아직 충분한 안전 검증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레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도 결단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솔직히 말해, 아직도 이해할 수 없어요.”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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