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인생을 소신껏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열심이 잘못 된 소신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인생을 주관대로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주위의 권유도 소용이 없기에 외톨이처럼 자신의 세계에 갖혀 살아간다.
그래서 한 번쯤은 자신의 열심과 소신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냉철하게 반추해 보아야 하는 것은 무가치하게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욕심이 없다. 즉 이 말은 시간의 차이이지 때가 되면 누구나 욕심을 내려놓는다. 소중한 가치로 살아 온 사람조차도 건강의 문제와 경제적 상황과 복잡한 인간 관계등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바른 소신도 포기하게 된다.
주위에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즉 끝을 보아야 어쩔 수 없이 내려놓는 사람들인데 그것은 고집으로 바른 소신과 고집조차도 구분을 못한다.
그만큼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고 잘못 된 소신은 흘러가는 세월의 항해 속에 좌표없이 떠다니다 침몰하는 배와 같다.
잘못 된 소신은 결국 주위 사람들까지 힘들게 한다. 가장 가까운 피해자는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이 희생양이 된다.
즉 잘못 된 소신은 가까운 사람들까지 희생 시켜가며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는데 그런 소신은 상당히 위험하다.
한국 사회는 대를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에 관대한 사회인 것 같다. 그런 희생의 결과로 목적을 이룬들 바른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 관계를 오래 하다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바른 소신과 고집을 혼동한다. 특히 기독교인들 중에 자신은 신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그 분들의 삶을 유심히 지켜보면 자신의 고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는 믿음 좋은 신앙인으로 인정을 받는데 교회 밖을 나오면 기본적인 인간 관계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은 바른 소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러한 소신이 가족이 먼저 인정해 주는 바른 소신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 가족도 인정해 주지 않는데 남들도 그런 잘못 된 소신을 인정해 줄 수 있을까?
그만큼 인간은 바른 소신과 고집조차도 구분을 못한다. 고집불통인 사람의 주장을 주위 사람들이 마지못해 수긍해 주면 자신의 소신이 맞다고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잘못 된 소신의 고집을 꺾어야 한다. 적어도 중년부터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잘 경청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그런 유연한 사고를 통해 자신이 믿고 살아 온 소신이 틀릴 수도 있다고 수긍해 보면 어떨까?
자신의 잘못 된 소신을 믿으며 살아간들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뿐더러 타인들은 구름을 잡으려는 그런 허황 된 소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