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두보는 “봄에 시절을 아는 비가 내려 만물이 싹트고 자란다”(‘춘야희우’)고 했다. 절기 이름인 곡우(穀雨)는 봄비로 온갖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뜻이다. 그 비는 생명과 희망이다.
비는 시련과 비통일 때가 더 많다. 드라마 주인공이 회사에서 잘리고 터덜터덜 걸을 때, 나타나지 않는 그 사람을 기다릴 때, 비가 내린다.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김현식 ‘비처럼 음악처럼’) 하고 견딜 수밖에.
□ 그 비가 요즘 여권에서 오용되고 있다. “동지란 비를 함께 맞아 주는 것”(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비를 같이 맞아 주겠다”(유튜버 김어준씨). 갑질로 낙마한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흠결 백화점’인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위로하고 두둔하며 한 말이다. ‘현지 누나’ 인사 청탁으로 사퇴한 김남국 전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을 걱정하며 강득구 의원은 비뿐 아니라 돌까지 함께 맞겠다고 했다.
□ 높은 곳에서 자기들끼리 맞는 비엔 감동이 없다. 비는 처음부터 관심사도 아니다. ‘비 맞기를 자처하는 나 자신’을 알리고 ‘나를 통해 결집할 일군의 지지층’만 챙기면 된다. 억울하게 비 맞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록그룹 들국화의 노래 ‘행진’은 움츠리지 말고 부디 나아가라는, 청춘을 향한 응원이다. 최고 권력자들까지 비 맞겠다고 엉뚱한 용기를 내면 곤란하다. 연이어 비 뿌리는 민심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최문선 논설위원 (moonsun@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