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차 가격 고공행진… ‘100개월 할부’까지 등장

자동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하자 100개월짜리 초장기 자동차 대출까지 등장하는 등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한 자동차 딜러 매장 전경. [로이터]

미국에서 자동차를 사는 일이 갈수록 ‘장기 생존 게임’이 되고 있다. 신차와 트럭 가격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등하더니 급기야 100개월(8년 4개월)짜리 초장기 자동차 대출까지 등장했다.

15일 월스트릿저널(WSJ)은 “2020년 이후 신차와 트럭 가격이 약 33% 오르면서 소비자들이 8~10년짜리 할부를 선택하지 않으면 신차를 구매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전했다.

현장의 체감도는 더욱 냉혹하다. 펜실베니아주에서 자동차 매장을 운영하는 데이비드 켈러허는 “이제는 월 300달러짜리 신차 할부금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많은 가정이 새 차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신차 평균 가격은 팬데믹 이전인 3만8,000달러 수준에서 크게 뛰어올랐다. 여기에다 고금리까지 겹치며 자동차 구매 장벽은 한층 높아졌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콕스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신차 평균 거래 가격은 4만9,000~5만달러선에서 형성되며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천정부지로 오른 신차 가격의 부담은 고스란히 월 할부금으로 전가됐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J.D.파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미국 내 신차 평균 월 납입액은 760달러에 달했다. 높은 할부금에 생활비와 금리 부담이 겹치면서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연체가 늘어나는 조짐도 나타나는 모양새다.

특히 연방준비제도(FRB·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도 자동차 할부 금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연체율 상승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이 금리에 반영된 데다, 은행들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서민층의 체감 금리는 오히려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신차를 포기한 수요가 중고차 시장으로 몰리며 중고차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월 할부금 납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출 기간을 계속 늘리고 있다. 소비자 신용정보 제공 기관 익스피리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신차 구매자의 3분의 1가량이 72개월 이상 장기 대출을 선택했다. 일부 대형 픽업트럭 구매에는 100개월짜리 초장기 할부 상품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3만 달러 이하의 저가 신차 모델이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소닉 오토모티브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히스 버드는 “아무리 할부 기간을 늘려도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가 모델이 없다면 구매력은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금융 리스크도 빠르게 쌓이고 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보유한 자동차 대출 잔액은 1조6,600억달러로, 5년 전보다 약 3,000억달러 늘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대출 시장이 주택 시장처럼 소득과 자산에 따라 양극화되는 구조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시장 전문가들은 100개월 할부의 등장을 일시적 과열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보고 있다. 한 자동차 컨설팅업계 전문가는 “문제는 차 가격이 비싸다는 데 있지 않다”며 “중산층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의 신차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월 페이먼트를 낮추기 위해 대출 기간을 늘리는 방식은 당장의 구매를 가능하게 할 수는 있지만, 총부담을 키워 가계 재무 구조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며 “미국 자동차 시장도 주택 시장처럼 현금 여력에 따라 갈리는 양극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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