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수명 120세 시대… 알츠하이머는 최후의 불치병으로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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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치매

지금이 치매 정복 골든타임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진화 중

일본 배우 와타나베 겐이 50대 샐러리맨으로 등장한 영화 ‘내일의 기억(2007년)’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가 겪게 되는 초기 혼란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사토루)는 영업력이 뛰어난 리더로 촉망받던 인재인데, 어느 날 갑자기 발표 도중 경험 못했던 극한 공황 상태에 빠진다. 좀전까지 똑똑히 외우고 있던 고객 이름과 숫자가 통째로 기억에서 날아간다. 방향감각도 상실한다. 매일 지나던 지하철역 출구를 찾지 못해 땀을 쏟고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서서히 부식되는 금속’이라고 자신의 뇌를 묘사한다.

알츠하이머병이 시작됐음을 인지한 환자 심정은 사토루가 말했듯 ‘점진적이지만 명백히 무너지는 일상에 대한 좌절’로 요약된다. 줄리앤 무어가 주연한 영화 ‘스틸 앨리스(2015년)’에도 그 참담함은 잘 드러난다. 극중 하버드대 언어학 교수인 그는 지하철역을 헤맨 사토루와 마찬가지로 집 주변 러닝 코스에서 넋을 놓는다. 특히 그는 ‘맞서 싸울 수 있는’ 병이 아니라 맥없이 패배를 선언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주저앉는다. 미국 소설 ‘망각의 스토리’에서 작가는 알츠하이머병이 닥쳐온 순간을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열차 기적소리가 순식간에 귓전을 때리고 지나갔다’고 서술했다. 병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도 손쓸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 존재 확인 1세기 지났지만… 멀고 먼 알츠하이머 정복의 길

1907년 독일 신경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가 심한 기억장애와 망상을 겪은 50대 여성 환자 뇌에서 특이 병변을 발견하면서 명명된 알츠하이머병.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등 독성 단백질이 뇌내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고, 뇌세포가 섬유화됨에 따라 서서히 인지능력을 잃게 된다는 대표적 퇴행성 뇌질환이다. 현대 의학이 존재를 확인한 지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이 병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영역이 베일로 가려져 있다. 인공지능(AI) 발달에 힘입어 인간 수명 120세 시대가 온다지만, 그래서 이 병을 정복할 수 있으리란 장담을 듣기는 아직 쉽지 않다. 알츠하이머병은 과연 마지막 불치병으로 남게 될까. 끝내 인류가 극복할 날은 다가올 것인가.

최근 세계적인 대형 제약사(빅 파머)들이 줄줄이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 세마글루타이드 기반 알츠하이머병 신약 두 건에 대해 진행해 온 임상3상을 중단했다. ‘인지 개선 입증’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서다. 존슨앤드존슨도 포스디네맙으로 알츠하이머병 억제 효과를 검증하려 했으나 임상2상에서 멈췄다. 그렇다고 희망의 불씨가 꺼지진 않았다. 연구자들이 속속 내놓는 결과물들은 알츠하이머병 정복을 향한 인류 진보가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립보건원은 한국인에게 특화된 알츠하이머병 원인 규명으로 이끌어줄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 우리 특성에 맞는 타깃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흔히 2차전지 소재로 알려진 리튬의 재발견도 눈에 띈다. 미 하버드대 연구팀이 지난해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리튬 농도가 부족하단 점을 밝혀냈다.

▲ 치매 환자 100만 명 시대, 골든타임은 흘러간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 상태를 부르는 가장 흔한(75% 이상) 질환이다. 혈관이 파손돼 치매에 이르는 경우와 희소 유전적 질환에 기인해 치매에 이른 경우는 15% 이하로 추계된다. 대략적인 국내 치매 환자(65세 이상) 규모는 96만1,000여 명(정부발행 2025치매백서)에 달한다. 65세 이상 전체 인구 946만여 명에 비하면 유병률은 10.3% 수준이다. 동일 연령대 암성 질환 평균 유병률(14.5%)에 미치진 않지만, 완치가 불가능한 예후를 놓고 보면 치매가 국민 건강에 끼치는 영향이 더 심대하다. 치료와 요양에 드는 총 비용(환자 1명당)은 연간 2,639만 원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따지면 매년 국내에서 이들 환자 모두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무려 23조 원에 육박한다. 개인 부담액은 물론 건강보험재정에도 커다란 손실이다. 정부가 내놓는 치매 장래 추계치를 보면 더 암울하다. 2070년 65세 이상 국내 치매 환자는 223만8,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드는 비용도 215조 원에 이른다.

치매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이토록 빠르게 확대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물론 급격한 고령화다. 때문에 ‘2차 베이비부머(1964~74년생)’들이 본격적으로 노인기에 접어들어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폭증하기 전, 진단기술과 치료 혁신을 이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매 환자 100만 명을 눈앞에 둔 지금이야말로 알츠하이머 정복의 골든타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 혁신적 치료제, 수천만 원 고비용과 부작용이 걸림돌

알츠하이머병 치료는 대부분 ①약제 처방에 의존한다. 그리고 증상 완화를 돕는 ②디지털 치료가 부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에 관한 새로운 연구 성과도 잇따르고 있다. 퇴행성 뇌질환이라는 성격은 같지만 도파민 신경세포가 소실돼 발생하는 파키슨병처럼 수술 등 외과적 방식으로 알츠하이머병증을 경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①증상을 약 5%가량 완화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리셉트(성분명:아세틸콜린)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널리 사용됐다. 각성 상태를 도와주는 약으로 근본적인 치료를 기대할 순 없는 수준이다. 이어 지난해 우리나라에 도입된 레켐비(성분명:레카네맙)가 있는데, 기존 약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효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세포에 달라붙는 기전을 억제하고 섬유화하는 작용을 가로막는 일종의 항체치료제로 약 27% 정도 인지기능 악화 지연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이 약은 너무 비싸다. 1년 처방 비용이 3,000만 원(전액 비급여)을 넘는 수준이다. 처방을 위한 진단(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PET 검사 2회 이상)에도 목돈(최소 300만 원)이 들어간다. 효과가 뛰어난 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약제비 인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알츠하이머병 정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현존하는 항체치료제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김대수 교수는 “항체를 만들어주는 약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데 장기 복용 시 정상적인 뇌세포에도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도 이어지는데 정원석 카이스트 교수 연구팀이 개발해 상용화를 추진 중인 염증 반응 없는 항체치료제를 사례로 꼽을 만하다.

②인지기능 쇠퇴를 늦추고 뇌가소성을 높이는, 전자적 자극으로 접근하는 디지털 치료법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신약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부작용 우려도 낮다. 최근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질환을 가진 쥐에게 특정 시각 자극을 줘 치매 물질이 쌓이지 않게 된 과정을 검증했고 임상3상에 도달했다. 이밖에 충남대 연구팀이 추진한 환자 뇌에 자기장으로 자극을 줘 증상을 덜어주는 디지털 치료방식도 각광을 받았다. 고규영 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 연구팀은 뇌척수액을 통한 치매 물질 체외 배출 효능과 촉진 방식을 밝혀 세계 학계 주목을 끌었다. 김 교수는 “고규영 교수 연구팀이 내놓은 방식은 뇌에 독성 물질 자체가 머무르지 않게 하는 이상적인 어프로치로 평가할 수 있다”며 “체내에 막혀 있는 하수구를 뚫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약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치료가 된다”고 말했다.

▲ 혈액 검사로 조기진단, 약제 전달 방식 다변화…희망은 꺼지지 않았다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민관이 함께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2021년 발족한 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을 6년째 이끌고 있다. 지난해 책 ‘치매해방’을 낸 묵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한 치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미래가 머지않았다고 말하는 연구자다. 치료 방식과 관리 영역 모두 괄목할 성과를 이루고 있어서다. 국내외 바이오 업계와 과학자들이 이제는 베타 아밀로이드와 타우 등에만 집중하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치료에 다가서고 있다고도 평했다. 묵 교수는 “치매를 발병시키는 독성 단백질에만 타기팅을 하지 않고 전체적인 뇌 시냅스(뉴런끼리 연결하는 부위) 기능을 강화하고 항산화 작용도 기대할 약제가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병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기엔 아직 이르지 않을까. 혈액 검사만으로 알츠하이머병 고위험군 여부를 골라낼 수 있는 진단법도 최근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 도입이 예상되는데, 알츠하이머병이 까다로운 원인 중 하나인 조기진단 해법이 하나둘 완성되고 있다. 묵 교수는 건강과 사회성을 유지하면 뇌세포가 독성 단백질로 약해지는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른바 ‘인지예비능’이 커지게 된다고 강조한다. 치매를 부르는 알츠하이머병은 과학자들 힘만으로 막아내기엔 힘겹다. 뇌 면역성을 키워내는 환자 위험군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 줄탁동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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