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오는 어떻게 성수동을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만들었을까 [이혜진 기자의 사람 한 권]

성수동은 한때 낡은 소규모 공장과 오래된 주택가, 방치된 공간이 혼재해 있던 지역이었다. 한마디로 낙후된 강북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성수동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됐다.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골목마다 들어섰고, 엔터테인먼트·게임 기업들이 속속 자리를 잡았다. 어두침침했던 유휴 부지들은 휴식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숙원사업이던 샘표 공장 부지 이전이 확정되며 첨단 기업과 스타트업을 위한 기반도 마련됐다. 하드웨어적 변화뿐 아니라, 일상의 불편이 눈에 띄게 개선되는 도시로 바뀌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있다. 그는 지난 12년간 성동구청장으로 재임하며 상전벽해에 가까운 변화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군으로도 거론된다. 그는 최근 ‘성수동’(메디치미디어)과 ‘매우 만족, 정원오입니다’(시공사) 두 권의 책을 잇따라 펴내며 성동구에서의 행정 경험과 도시 철학을 풀어냈다.

성수동엔 왜 붉은 벽돌 건물이 많을까

미국의 도시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기업이 있는 곳에 사람이 간다”는 통념과 달리 “사람이 있는 곳에 기업이 간다”는 창조도시 이론을 제시했다. 도시를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면 사람이 모이고, 그 흐름을 따라 기업도 유입된다는 것이다. 낙후된 준공업 지역이던 성동구의 행정을 맡은 정원오 구청장 역시 사람이 올 수 있는 동네를 만들면 기업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 판단했다.

서울숲 카페 거리가 뉴욕 브루클린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갖게 된 배경에는 붉은 벽돌이 있다. 1960년대 모나미가 마포에서 성수로 이전한 뒤 구두·자동차 정비·인쇄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당시 유행하던 붉은 벽돌로 건물이 지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붉은 벽돌 건물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 구청장이 붉은 벽돌 지원 사업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디자이너 지춘희의 한마디였다.

“붉은 벽돌은 튀지 않지만 정직하고 따뜻하죠. 성수동 분위기와 딱 맞는 재료예요.

이를 중심으로 도시의 결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이 제안을 계기로 성동구는 2017년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붉은 벽돌로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할 경우 공사비의 절반,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130곳의 붉은 벽돌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붉은 벽돌은 이제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성수동만의 감성이자 정체성이 됐고,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재개발 vs 재생, 이분법적 접근 대신 전략적 선택”

전면 재개발과 도시 재생은 그동안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오가며 추진돼 왔다. 정권이나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는 일도 반복됐다. 정 구청장은 이런 이분법적 접근이 도시 공간을 회복하는 데 오히려 부적절하다고 본다.

그는 “심각하게 낙후되거나 슬럼화돼 사회·문화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지역은 재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반대로 잠재력이 풍부하고 입지와 문화적 매력이 축적된 지역은 도시 재생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철거냐 존치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특성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구청장은 주민 공청회를 거쳐 성수동 일대를 전면 철거해 고층 주거·상업시설로 조성하려던 뚝섬 특별계획 3·4·5구역을 해제했다. 대신 IT·디자인·유통·콘텐츠 산업 등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성수 IT산업·유통개발진흥지구를 4배 확대하고, 용적률을 최대 560%, 건축물 높이를 120m까지 완화했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글로벌 기업이 함께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강남에서 성수동으로 본사를 이전한 무신사의 로드샵 전경/ 출처= 무신사

강남에서 성수동으로 본사를 이전한 무신사의 로드샵 전경/ 출처= 무신사

공무원은 조연, 혁신가와 주민이 주연

성수동의 변화에 대해 정 구청장은 거창한 청사진이나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두고 “가만히 흐름을 살폈다”며 “경청했고, 한발 물러섰고, 멀리 보려 했다”고 설명한다. 이미 많은 것이 들어차 있는 도시를 공무원이 책상 위에서 설계해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의 행정은 혁신가와 주민이 제안하고 앞장설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여는 데서 출발했다. 공무원은 이를 정리해 가이드라인으로 만들고, 조율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다만 성수동 역시 ‘뜨는 동네의 역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가로수길과 경리단길에서 나타났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곳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 구청장은 상생협약과 주민협의체 등을 통해 이를 완화하려 했고,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어지며 폐업과 이전, 창작자의 이탈, 공간의 상업화, 커뮤니티 약화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인정한다.

그는 해법을 두고 “억지로 규제하거나 주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정치는 주도가 아니라 조율이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길을 터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 성수동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그는 확신했다.

 

 

[서울경제]

0
0

TOP 10 NEWS TODAY

오늘 가장 많이 본 뉴스

LATEST TODAY NEWS

오늘의 최신 뉴스

시니어 생활

오피니언 Hot Poll

청취자가 참여하는 뉴스, 당신의 선택은?

타운뉴스

최신 뉴스

“할리우드는 망했다”…중국 인공지능으로 만든 영상에 멘붕 상태 [지금이뉴스]

틱톡 모회사인 중국 바이트댄스의 인공지능(AI) 동영상 생성 모델 '시댄스 2.0'의 등장에 충격받은 할리우드가 성명을 내고 법적 절차를 예고하는 등 강하게 ...

[사건 플러스] 고작 ‘깨진 타일’ 때문에… 피자가게 점주의 잔혹한 계획 살인

"살려주세요… 칼에… 찔렸어요." 지난해 9월 3일 오전 10시 57분, 경찰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일 대낮에 흉기 난동이 벌어졌다는 ...

성큼 다가 온 AI시대…“분배의 틀 다시 만들고 새로운 규범 정해야”

“인공지능(AI) 시대가 되면 우리는 부의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까.” AI의 확산이 빨라지고 휴머노이드의 상용화 가능성도 높아지는 등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를 ...

美 대표 위스키와 콜라의 조합…‘잭다니엘&코카-콜라 제로슈가’를 먹어봤다 [신상 언박싱]

코카-콜라음료㈜가 미국을 대표하는 위스키 브랜드 잭다니엘(Jack Daniel’s)과 세계 1위 음료 브랜드 코카-콜라를 최적의 레시피로 조합한 즉석음료(RTD) ‘잭다니엘 & 코카-콜라 제로슈가’를 만들었다 ...

자율주행 택시에 처음 탔던 날 — 낯선 미래를 받아들이는 순간들

[이지효 교수의 한국사람 사는 이야기] 처음 자율주행 택시에 탔던 날을 기억합니다. 막상 ‘운전자가 없는 차’ 앞에 서니 묘한 긴장감이 올라왔고, ...

“엡스타인 그림자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케이시 와서먼, 에이전시 매각 뒤에도 ‘LA올림픽 사수’

제프리 엡스타인 연루 의혹으로 파문이 커지고 있는 미국 스포츠·엔터테인먼트 재벌 케이시 와서먼이 결국 자신의 에이전시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최근 연방 법무부가 ...

LA 민주사회주의자들, ‘주택 탈상품화’ 계획이란?

로스앤젤레스 진보 진영과 민주사회주의자들(DSA-LA)이 추진하는 주택 정책 구상이, 보수진영으로부터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사회주의적 주택 몰수 계획”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

“정치쇼는 강하지만 실무는 빵점”… 뉴욕 초짜 시장 맘다니, 한파 대응 논란

뉴욕시의 첫 무슬림 시장으로 주목받은 조흐란 맘다니 시장이 취임 한 달 만에 혹한 대응 부실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지난 2주간 이어진 ...

“이제야 엡스타인과 손절? 정치인들의 ‘면피용 도덕성 쇼’”

한때 제프리 엡스타인과 그의 측근들로부터 정치 후원금을 받는 데 주저가 없던 미국 정치인들이, 엡스타인 관련 문건이 추가로 공개되고 여론이 들끓자 ...

[속보]이란 지지 ‘글로벌 행동의 날’…수천 명, LA 다운타운 뒤덮어..

2월 14일  오후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웨스트 2번가 519번지 일대에는 수천 명으로 추산되는 ...

LA 시장실, 팔리세이즈·라크먼 화재 ‘입막음 논란’…선거 앞두고 신뢰도 직격탄?

시장 선거를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팔리세이즈와 라크먼 화재를 둘러싼 카렌 배스 시장실의 소방국 언론 대응 개입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 ...

불법거리 점령 중 총격…LA 도심서 남성 목·턱 맞고 중상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불법 스트리트 테이크오버(거리 점령) 현장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에 따르면, 사건은 오늘 새벽 1시 15분쯤 18번가와 메인 ...

“트럼프는 떠날 것” 유럽 가서 일격 날린 美 대권 잠룡 [지금이뉴스]

차기 미국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미 정치 매체 ...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에서 피겨 코치 총격 살해…가석방 중 도주범의 잔혹 범행

28살 피겨 스케이팅 코치, 샘 라인한 씨가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에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용의자는 키스 브라운, 1급 살인과 무장강도 등 여러 중범죄 혐의로 ...

‘몰아서 자기’는 오히려 ‘독’… “평소보다 2시간만 늦게 일어나세요”

연휴는 몰아 잘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무작정 늘린 잠은 오히려 피로 불러와 기상 시간 2시간 넘게 늦추진 말아야 오랜만에 ...

쇼트트랙 황대헌, 올림픽 1,500m 은메달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황대헌(27·강원도청)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대헌은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

“대학 교제 읽기 힘드네”… 입학 전 체계적 읽기 습관 들여야

소설 한권 완독으로 독서 체력 자신에게 맞는 독서 환경 찾기 시간표에 독서 일정 포함하기 전략과 목적을 갖고 읽기 대학 입학 ...

‘주방·욕실’ 리모델링 해볼까?… 올해 뜨고 지는 디자인

‘우드 톤’ 등 자연적 색감↑ 넓은 워크인 샤워 룸↑ ‘올 화이트’ 인테리어↓ 빽빽한 상부 캐비닛↓ 최근 모기지 이자율이 3년만에 최저 ...

정은채♥김충재, 공개 열애 3년차에 럽스타그램..박수에 하트로 애정

배우 정은채와 미술작가 김충재가 변함없는 애정 전선을 자랑했다. 지난 13일(한국시간) 김충재는 개인 SNS에 "글로벌 아트워크 프로젝트의 작가로 선정되어 이번 프로젝트를 ...

‘챗GPT 저격’ 수퍼볼 광고한 클로드, 이용자 11% 급증

챗GPT의 광고 도입을 풍자하는 광고를 내보낸 앤트로픽의 인공지능 모델 '클로드' 이용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지 시간 14일 미 CNBC와 IT 전문매체 ...

띠별로 보는 주간 운세 2월 10일 – 2월 23일 [지윤 철학원]

쥐띠 이정표를 찾도록 운수: 살아가는 데에 길이 많지만 수많은 길 중에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

컬버시티 웨스트필드 몰 외부서 총격… 남성 1명 사망, 용의자 도주

13일 금요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컬버시티에 위치한 웨스트필드 몰 외부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해 남성 1명이 숨졌다고 경찰이 밝혔습니다. 총격은 오후 ...

차준환 한국 역사 쓴 날… ‘부모 잃은 비극’ 피겨 스타, 감동의 올림픽 데뷔전 “어머니, 아버지 위한 무대였다” [밀라노 올림픽]

하늘로 떠난 부모님과 약속을 끝내 지켰다. 비행기 참사로 부모이자 스승을 한꺼번에 잃었던 막심 나우모프(25·미국)가 생애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미소와 함께 ...

‘한국 아시안컵 완패’ 악몽 주역, 이강인의 PSG까지 무너뜨렸다… ‘리그 우승 실패 위기’ 비상

이강인(25)의 소속팀 파리 생제르망(PSG)의 우승 경쟁에 비상이 걸렸다. 원정에서 뼈아픈 완패를 당하며 크게 미끄러졌다. PSG는 14일(한국시간) 프랑스 렌의 로아존 파르크에서 ...

1181일 걸렸다.. “116억 횡령” 박수홍 친형 최종 결론은?

2022년 11월 21일(이하 한국시간) 1심 첫 공판 이후 1181일 만에 나오게 될 진짜 최종 결론이다. 방송인 박수홍 친형 부부의 횡령 ...

“아미 사랑 얼마나 큰지..” 방탄소년단, 한국 아티스트 최초 15개 국가·지역 패션지 커버 동시 장식

방탄소년단(BTS·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이 15개 국가/지역 패션지 커버를 장식하며 독보적인 글로벌 영향력을 입증했다. 방탄소년단은 패션 잡지 GQ ...

56억 잃고도 다시 투자..조영구 “내 인생 올인” 충격 고백

주식 투자와 사기로 56억원을 잃었던 방송인 조영구가 파크골프 사업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조영구는 14일(한국시간) 유튜브 채널 '그리구라'를 통해 공개된 '필승! 그리 ...

[한국정가] 차기 권력 삼국지…정청래·김민석·조국 향배는?

최근 범여권에서 불거진 합당 내홍의 본질을 두고, 차기 권력을 둘러싼 이른바 ‘넥스트 이재명’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습니다. 현시점 여권의 ...

미국서 홍역 급증…백신 접종률 하락 속 ‘청정국 지위’ 위협

“이러다 후진국 될라”…접촉만 해도 90% 감염, 33년 만에 최악 맞은 미국 후진국형 감염병으로 여겨지던 홍역이 미국에서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나며 ...

벽. 잠들지 않은 자들은 무덤에 있다 [김준철 시인의 시가 있는 radioseoul1650.com]

밤이었다 아니, 그건 새벽으로 가는 긴 터널이었다 그 안에는 죽음을 찾는 나비들의 비명이 있고, 터널 벽으로는 비가 내린다 터널에는 사람들이 ...

경제 • IT

칼럼 • 오피니언

국제

한국

LIFESTYLE

K-NOW

K-NEWS

K-BI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