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극장가에서 아주 인상적인 기록을 세운 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영화〈만약에 우리〉입니다. 이 작품은 개봉 당시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화려한 스케일이나 특수효과가 아닌, 오직 이야기와 감정의 힘으로 대작을 이긴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의 연출은 2019년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만든 김도영 감독이 맡았습니다. 당시에도 섬세한 감정선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출로 주목받았던 감독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보다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 그리고 시간과 선택,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풀어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주연 배우들의 ‘찰떡 캐스팅’입니다.먼저 구교환 배우. 극중 은호를 연기하는 구교환은 그야말로 “그냥 은호 그 자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김도영 감독 역시 처음부터 구교환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을 생각했다고 하는데, 순수한 이미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딘가 자신 없어 보이지만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남자 사람 친구 같은 인물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해 냅니다. 겉으로 보면 조금 가벼워 보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가장 진중한 인물, 바로 그런 은호라는 캐릭터가 구교환이라는 배우와 정말 잘 어울립니다.
상대역인 문가영 배우 역시 인상적입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화면 속에서 유난히 예쁘게 등장하는데, 보는 순간 “아, 구교환이 어리버리 어버버 할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도시적이면서도 따뜻한 이미지, 사랑 앞에서는 솔직하고, 이별 앞에서는 담담한 듯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복잡한 인물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해 냅니다. 두 배우의 조합은 영화 내내 큰 무리 없이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시간의 표현 방식입니다. 보통 영화에서는 과거를 흑백으로, 현재를 컬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그 반대로 갑니다. 2008년 이후 과거의 장면은 컬러로, 그리고 현재인 2024년의 장면은 흑백으로 표현됩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대부분, 거의 90%가 과거 이야기이고, 현재의 장면은 약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장 찬란했던 시간은 과거였고, 현재는 이미 색을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의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극중에서 구교환이 연기한 은호는 게임 프로그래머입니다. 그가 만든 게임 속 세상은 처음에는 색을 잃어버린 세계로 시작하지만, 끝까지 가면 결국 해피엔딩으로 컬러를 되찾게 됩니다. 이 설정은 영화 전체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물립니다. 사랑도, 인생도, 지금은 색을 잃은 것처럼 보여도 끝까지 가면 다시 빛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후반부에는 극장 뒤쪽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 자신의 이야기와 겹치는 순간들이 꽤 많을 수 있습니다. 특히 동거를 했거나,혼자 살던 연인의 집에 매일 왔다 갔다 하며 연애했던 분들, 사랑하고 헤어졌던 기억이 있는 분들은 그 시절, 옛 연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크게 울게 만드는 영화라기보다는, 조용히 마음 한쪽을 건드려 “아…” 하고 숨 한번 길게 쉬게 만드는 영화라고 할까요.
이 영화에서 또 하나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요소는 음악입니다. 2003년 3월 발표된 임현정 4집 수록곡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이 영화의 시작과 끝, 두 번 등장합니다. 이 노래가 흐르는 순간,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한 번 더 또렷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 노래와 함께 영화관을 나서면, 아마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입니다.
영화 〈만약에 우리〉는 현재 LA와 Buena Park의 Recency Theatres에서 상영 중입니다. 더 반가운 점은 영어 자막이 함께 제공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2세, 3세 자녀들과 함께 보시기에도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부모 세대는 한국어로, 자녀 세대는 영어 자막으로, 같은 영화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한인 사회의 대표적인 상영 공간으로 자리 잡은 Recency Theatres가 이렇게 꾸준히 한국 영화를 소개하고, 또 미국 영화들을 한국어 자막으로 상영해 주고 있는 점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덕분에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그것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극장에서 더 많은 한국 영화와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그리고 무엇보다 이 문화가 오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한인 관객 여러분들이 극장을 찾아 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고, 우리가 즐길 때, 이 소중한 극장 문화도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씨네마 가이드 이준학
CED (California Event & Design) 대표 (909)714-238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