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신을 믿고 산다고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자신의 믿음의 수준을 통해서 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믿음은 각자의 믿음으로 자신이믿는 종교를 통해 자신을 아는 것부터 시작 된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신을 믿어야 바른 믿음의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신과의 관계를 기도와 성경 말씀 묵상과 봉사를 통해 믿음을 쌓아간다. 그렇게 신앙이 자라나면 신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내려 놓게 되는데 신은 진정성 있는 믿음을 보시고 때가 되면 신앙인들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신다.
신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의 생각대로 살지말고 신께만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바란다. 이 말은 맞는 말 같지만 자신만의 신앙의 기준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신께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기라고 하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신앙인에게 마음의 소원을 신이 응답해 주실까? 신은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으로서 뛰어난 지혜를 주셨다. 지혜란 판단력으로 인간으로서 최선의 삶을 살아갈 때 신은 도움의 손길을 준다.
자신의 노력없이 신께 무조건적인 간구는 도둑놈 심보다. 하나님을 요술 방망이로 생각하는 아주 안일한 신앙관이다.
신앙인은 기도와 말씀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알아가야 한다. 그렇게해야 신과의 관계가 온전해 질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녀의 믿음 상태를 정확히 알고 계신데 구름 잡는 기도를 계속 드린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 즉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자신부터 제대로 알아야 신앙 생활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조건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십니다.”라고 말 하는 신앙인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신앙 생활으로 비현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믿음의 시작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부족한 자기 자신을 알고 그런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할 때 하나님은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을 신 앞에서 자신을 몰랐다. 그들은 회당에서 존경 받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외식하는 사람들이었다. 즉 자기 자신을 모르는 가식적인 삶을 예수님은 책망하셨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인문학적인 사고를 키우지 않으면 맹목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은 인간의 이성의 범주 안에서 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신앙 생활을 하더라도 인간의 이성을 철저하게 제한하면 미신적인 신앙으로 빠질 위험이 높다.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두뇌를 주셨을까? 그것은 합리적인 사고와 상식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왜 한국 기독교는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종교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목사들의 설교에 성도들이 영적 허수아비로 전락 되었기 때문이다. 목사들이 삶으로 보여주는 바른 신앙과 바른 설교를 했더라면 기독교인들이 지금과 같은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철저히 알자. 신 앞에 자신을 부인하는 것도 자신을 제대로 알 때 가능한 것이다. “기독교는 절대 구름 잡는 허황 된 종교가 아니라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합리적인 이성의 종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