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치안:..시민의 경각심이 만든 새 범죄지형”

통계는 범죄가 줄었다고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스스로 만든 사설 보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인 같은 강력범죄는 줄었다는 공식 통계가 나오고 있지만, 거리의 체감 안전도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상점들은 철제 셔터를 내리고, 집집마다 CCTV와 경보장치를 달고, 차 안에는 아무것도 두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이 도시의 안전은 더 이상 공권력만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방어기전 위에 겨우 유지되는 일상의 균형처럼 보입니다.

팬데믹 기간 치솟았던 살인은 줄고, 강력범죄 총량도 완만하게 내려오고 있다는 분석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편의점과 약국의 도난 방지 장치는 더 촘촘해졌고, 택배는 문 앞이 아니라 잠금 장치가 있는 박스로 들어갑니다. 줄어든 것은 통계상의 숫자일지 몰라도, 늘어난 것은 “언제든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상시 긴장감입니다.

이 괴리는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닙니다. 범죄 유형이 더 조직적이고 지능적으로 진화하면서, 피해 규모는 크지 않아도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매치기 대신 차량 절도, 단독 범행 대신 소규모 조직의 연쇄 절도, 물리적 폭력 대신 계좌를 노리는 신종 사기가 늘어날수록 시민들의 일상은 더 많은 자기 방어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남가주 곳곳에서 눈에 띄게 성장한 산업이 있습니다. 주택·상가 보안 시스템, 차량 추적기, 개인용 카메라, 사설 경비 서비스입니다. 치안의 공백이나 불신을 메우는 것은 결국 시장과 개인의 지갑이며, 경찰이 모든 골목길과 주차장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민들은 스스로 하나의 사설 보안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보안망은 물리적 장비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웃 주민끼리의 커뮤니티 앱, “이 시간엔 그 길은 가지 말라”는 생활 노하우, 번호판 가리고 주차하기, 택배 수령 시간 맞추기 같은 생활 습관 변화까지 포함됩니다. 도시는 ‘보이지 않는 치안 매뉴얼’을 공유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학습 중입니다.

문제는 이런 방어기전이 계층·지역별로 매우 불균등하게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보안 시스템을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 집과 가게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안전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민의 경각심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포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출발점에는 “공권력이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느슨한 처벌, 논쟁적인 보석 제도, 반복되는 재범 뉴스는 “범죄를 저질러도 별일 없다”는 인식을 키우고, 그 반사 효과로 “그래서 내가 더 조심해야 한다”는 자기 방어 심리를 강화합니다.

경찰과 검찰, 법원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경각심은 공공선이 아니라 개별 생존 전략으로 흩어집니다. 누군가는 도어벨 카메라를 추가로 달고, 누군가는 아예 밤에 일을 줄이고, 누군가는 범죄율이 낮은 동네로 이사를 고민합니다. 이 과정에서 공공의 안전은 ‘개인의 도피와 투자 능력’에 따라 파편화됩니다.

더 우려스러운 지점은 시민들이 이 구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차 유리 깨진 사진이 SNS에 올라와도 “LA면 그럴 수 있지”라는 반응이 따라붙고, 상점의 상품이 모두 잠겨 있어도 “요즘 다 저렇다”는 체념이 뒤따릅니다. 범죄 자체보다 ‘범죄에 적응한 일상’에 무감각해지는 순간, 도시는 사실상 범죄 친화적인 환경을 고착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익숙해지는 것은 곧 기준을 낮추는 일입니다. 예전 같으면 신문 1면에 올 일도 “어차피 또 나오는 얘기”가 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할 시민의 분노는 피로감 속에 희미해집니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은 다시 개인의 보안 투자와 두꺼워진 방범 창틀뿐입니다.

그렇다고 시민 경각심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 경각심이 지금처럼 각자도생의 방어기전으로만 작동할 때, 도시 전체로 보면 더 불평등하고 더 위험한 구조를 영속화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무서워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현실적인 불안과 일상적 경험을 제도 개선으로 연결해주는 정치·행정의 복원입니다.

정책 입안자와 치안 당국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숫자는 좋아졌으니 안심하라”는 자기 위안의 서사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통계상의 하락과는 별개로 시민들이 어떤 장비를 달고, 어떤 경로를 피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귀 기울이는 것, 그 일상적 방어기전 속에 진짜
치안의 실패 지점이 숨어 있습니다. 시민은 이미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시가, 그리고 공권력이 그 경각심을 ‘혼자 버티는 방어’에서 ‘함께 바꾸는 안전’으로 옮겨줄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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