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ICE 공포에 위기감… 흔들리는 ‘자바시장’

지난달 이민 단속이 실시된 후 자바시장 중심인 크로커 스트릿의 매장 다수가 문을 닫은 가운데 거리가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상혁 기자]

미 서부 의류 유통의 심장부이자 한인타운의 젖줄로 불리는 LA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트’, 이른바 자바시장이 연방 이민당국의 강도 높은 단속 여파로 사실상 고사 위기에 처했다. 매출은 바닥을 치고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면서 지역 경제 전체가 얼어붙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4,000여 업체의 생계가 걸린 자바시장은 장기 불황 속에 정책적 불확실성과 이민 단속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시린 겨울을 보내고 있다.

■ 공포가 집어삼킨 상권

자바시장에서 프린트 업체를 운영하는 한인 업주 이모씨는 최근 직원들의 변화된 생활 패턴에서 위기를 직감한다. 이씨는 “과거에는 직원 중 다수인 라티노 노동자들이 인근 식당과 쇼룸을 돌며 활발히 소비해 시장 경기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되었으나, 지금은 신분 노출과 단속 우려로 인해 생필품 구매조차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씨는 “ICE가 자주 출몰한다고 알려진 곳에는 아예 발길을 끊었으며, 전반적으로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저축에만 집중하는 등 생존을 위한 자제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덧붙였다.

업계 일각에서는 “신분이 불확실해도 범죄 이력이 없으면 단속돼도 다시 풀려난다”는 다소 완화된 소문이 돌며 불안을 달래고 있다. 하지만 한인 업주들은 이러한 낙관론이 실제 현장의 공포를 지우기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모씨는 “현 정부가 말하는 제조업 활성화가 실재하는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며 “노동자와 소비자 모두가 공포에 질려 숨어버린 상황에서 관세나 제조업 장려책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 오프라인 매장의 몰락

자바시장의 장기 불황은 부동산 경기와 쇼룸 문화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자바시장 내 작은 쇼룸 하나가 매물로 나오면 권리금을 얹어서라도 즉시 새로운 업체가 들어오는 선순환이 활발했으나, 현재는 빈 매장이 장기간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프라인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쇼룸을 새로 열려는 수요가 사실상 끊겼으며, 그렇다고 온라인 시장이 그 빈자리를 대체할 만큼 활성화된 것도 아니다. 업주 장모씨는 “오프라인 매장이 죽으면서 상권 전체의 활력이 사라졌고,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조차 없어 상권 공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업계 전반의 심각한 침체 상황을 전했다.

또 다른 한인 도매업주도 “1~2월은 미국 전역에서 쇼가 열리며 바이어들이 물건을 바잉해 봄·여름 시즌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요즘은 장사가 아예 안 되는 수준이라 손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느 정도 매출이 나와야 트렌드와 수요를 읽을 수 있는데, 지금은 그 단계 자체가 무너졌다”며 “동부 지역은 폭설까지 겹치면서 주문이 더 끊겼다”고 말했다.

17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그는 “이렇게 나쁜 경기는 처음”이라며 “바이어들이 새로운 업체를 찾지 않고 기존에 거래하던 대형 업체에서만 구매하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있는 ‘큰 집’들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버티기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주 김모씨는 “도매업체들로부터 받은 주문량이 대목인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상태”라며 “관세 장벽으로 수입 단가가 올랐음에도 국내 공장으로 주문이 몰리지 않는 것은 소비 심리 자체가 완전히 죽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높은 관세가 국내 제조업의 활력이 아닌 원가 상승과 소비 절벽이라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세희·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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