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엘에이 시장 선거가 ‘진보 대 진보’ 구도로 재편되면서, 미국 최대 지방정부 가운데 하나인 로스앤젤레스의 정치 지형이 격렬한 재배치를 맞고 있다.
한때 서로를 공개 지지하며 진보 동맹을 과시했던 카렌 베스 현 시장과 시의원 니티야 라만이, 이제는 같은 진보 라벨을 달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형국이다.
베스 시장은 2022년 당선 이후 홈리스 감소, 살인 사건 감소, 저소득층을 위한 신규 주택 공급 확대 등을 주요 성과로 내세우며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
실제로 시는 거리 홈리스 수를 완만하게 줄였다고 주장하고, 일부 폭력범죄 지표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베스 측은 “혼란스러운 시기 속에서도 시정을 안정시켰다”는 메시지로 중도·진보 유권자 모두에게 어필하려 한다.
그러나 베스의 리더십은 2025년 팔리세이즈를 휩쓴 대형 산불 이후 크게 흔들렸다.
당시 베스가 사고 직후 해외에 머물렀던 사실, 이후 피해 규모와 대응 실패를 다룬 내부 보고서가 ‘축소·무마’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위기 때 보이지 않는 시장”이라는 비판이 커졌다. 이 여파는 이미 홈리스·치안·시정 전반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진 시민 정서와 겹치며, 현직 시장의 ‘프리미엄’을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
이런 틈을 파고든 인물이 바로 4지구 시의원 니티야 라만이다. 라만은 2020년 시의원 선거에서 민주사회주의자(DSA LA), 기후·주거 운동 단체, 청년 자원봉사 네트워크 등을 등에 업고 기존 현역을 꺾으며 LA 정치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2022년 시장 선거 당시 그는 베스를 “LA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시장이 될 수 있는 후보”라고 치켜세우며 공개 지지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라만은 후보 등록 마감 직전에 돌연 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베스를 정면 도전 상대로 지목했다.
그는 출마 선언에서 “캐런 베스를 여전히 존경하지만, 지금의 LA는 멈춰 서 있거나 뒤로 가고 있다”며 “홈리스, 치안, 재난 대응에서 훨씬 더 과감한 변화를 이끌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진보는 같지만, 방향과 속도는 다르다”는 메시지로 기존 진보 시정을 비판한 셈이다.
양측이 내세우는 의제는 모두 ‘진보’라는 이름 아래 있지만, 세부 내용과 접근 방식은 확연히 갈린다. 홈리스·주거 문제에서 베스는 Inside Safe 등 실용적 프로그램을 확대해 노숙인을 호텔·모텔과 임시 거처로 옮기고, 점진적으로 영구 주택을 늘리는 단계적 해법을 강조한다.
반면 라만과 그를 지지하는 민주사회주의·세입자 보호 진영은 공공주택과 사회주택 대폭 확대, 강력한 세입자 보호, 토지 공공성 강화 등 보다 구조적인 변화를 주문한다.
치안·경찰 이슈에서도 균열선이 보인다. 베스는 총기 폭력과 살인 사건 감소를 성과로 내세우며, 경찰과의 협력을 유지하되 지역 기반 예방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진보적 치안’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라만은 과거 LAPD의 역할 축소와 예산 재배분을 주장해 온 인물로, 경찰 조직을 더 작고 특수화된 방향으로 재편하고 그 재원을 정신건강·주거·사회서비스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같은 진보 안에서도 ‘안전’을 둘러싼 우선순위와 수단이 다르게 설정돼 있는 셈이다.
팔리세이즈 대형 산불은 이번 선거의 상징적 분기점으로 떠올랐다. 베스에게는 재난 대응과 시정 투명성, 위기 상황에서의 책임감이 도마에 오른 사건이고, 라만에게는 “기후 위기 시대에 LA가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 계기다.
재난 이후 조사 과정과 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쟁은, 베스식 네트워크 중심 정치와 라만식 운동·정책 중심 정치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번 구도를 ‘진보 내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LA 진보 정치가 성숙 단계로 접어든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시카고·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대도시에서 이미 민주당 내 운동권·사회주의 진영과 제도권 진보 세력이 충돌하는 사례가 이어져 온 가운데, LA가 비슷한 흐름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특히 라만을 지지하는 DSA·YIMBY·청년 조직이 어느 정도까지 결집하고, 베스가 흑인 커뮤니티·노동계·제도권 민주당 네트워크를 얼마나 재결집시키느냐에 따라, 2026년 이후 캘리포니아·전국 민주당의 진로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후보군 전체를 놓고 보면, 중도·보수 성향의 대형 자산가 릭 카루소, 전 LA통합교육구(LAUSD) 감독관 오스틴 뷰트너 등 잠재적 도전자들이 잇따라 불출마로 기울면서, 베스와 라만을 축으로 한 진보 양강 구도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로써 이번 선거는 “누가 LA의 시장이 될 것인가”를 넘어 “어떤 유형의 진보가 LA를 이끌 것인가”를 둘러싼 일종의 레퍼렌덤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진보와 진보가 맞붙는 이 이례적인 시장 선거에서 로스앤젤레스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아직 안개 속이다.
다만 팔리세이즈 산불 이후의 불신, 홈리스와 치안, 기후위기 대응과 도시 성장 전략 등 복합적인 변수를 안고 치러지는 이번 승부가, LA는 물론 미국 진보 정치의 향방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