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내 또래의 남자 환자가 들어왔다.
작년에 수술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어서 6개월 만에 보는 것 같은데, 왠지 얼마 전에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환자와 그의 아내도 나를 본 것 같다며 말을 흐린다.
기억을 맞춰 보니,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접수하는 곳에서 서로 스쳐 지나간 모양이었다. 우리에게는 동갑의 딸들이 있었고, 공교롭게 같은 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었던 것이다.
진료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환자 가족과의 묘한 경쟁심을 느끼며 6개월 후에 다시 반갑게 보자는 덕담을 나눴다.
면접시험은 1시에 끝난다고 했다. 밖에 있기에 추운 날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12시가 조금 넘어서부터 교문 앞에서 서서 기다렸다.
다들 교문 너머로 목을 길게 뺀 모습이었다. 멀리서라도 자식 얼굴이 보일까, 표정이 밝은가 어두운가를 가늠하려는 표정들이었다.
그 순간 부모들의 불안한 머릿속은 대개 비슷했을 것이다.
내 자식이 좋은 학교를 가야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살 것이라는 생각. 더 좋거나 더 나은 것은 비교할 대상이 있다. ‘남들보다’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학원이 끝나는 밤에 가끔 딸을 마중 나갔었다. 한 건물에 수학 학원만 해도 대략 10개쯤 되는 것 같다.
이름들도 화려하고 자극적이다. ‘수학의 아침’, ‘대치 스파르타’, ‘힘수학학원’, ‘미친수학학원’, ‘수학을 담다’, ‘파인만’, ‘세이노학원’, ‘올인원 수학학원’ 등등. 뜻을 알 것도 같은 이름도 있고, 헛웃음이 나는 이름도 있다.
같은 시간에 건물의 좁은 구멍을 빠져나오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개미집을 빠져나오는 개미 떼처럼 끝이 없어 보인다. 그들 모두가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기대를 받고 있을 터였다.
얼마 전 사망한 고(故) 안성기 배우의 영결식에서 그의 장성한 장남이 공개한 고인의 과거 편지를 기사로 접한 적 있다.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인기 절정의 대배우는 다섯 살 아들에게 이렇게 적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라.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의 평화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늘 남을 배려했고 낮은 자세로 임했던 그의 삶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진심으로 쓴 편지였을 것이다.
그가 바란 것은 ‘더 나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편지에는 경쟁, 공부, 명문대, 성공이란 단어가 하나도 없었다.
추웠던 날, 이제 다시는 갈 일이 없게 된 교문 앞에서 목을 빼고 딸을 기다리며 느꼈던 초조함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자식이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면, 나의 삶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큰 보탬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해를 끼치지는 않는 부모의 뒷모습을…
오흥권 분당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교수·’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타임 아웃’ 저자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