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펀드’ 외치더니 “경찰 유지”로… 말 바꾸는 라만, 신뢰 잃나

로스앤젤레스 시장 선거전에 막 뛰어든 니티아 라만 시의원이 경찰 문제를 둘러싸고 스스로 남긴 기록과는 다른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그때그때 말을 바꾸는 정치인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논쟁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디펀드”에서 “경찰 유지”로 선회

라만 시의원은 2020년 첫 시의원 선거에서 민주사회주의자연합(DSA)의 지지를 받으며 “경찰 예산 감축(Defund the police)”을 공개적으로 외쳤고, LAPD를 ‘훨씬 더 작은, 특수 임무 위주의 무장 조직’으로 줄이자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그는 교통 단속, 교통사고, 비폭력 정신건강 위기 대응 등을 비무장 인력과 다른 기관으로 넘기자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이달 초 갑작스러운 시장 출마 선언 직후 한 방송 인터뷰에서 라만은 전혀 다른 어조를 보였습니다. 그는 “우리는 경찰력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며 “현재 인력으로도 911 신고에 제때 대응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공공안전을 “도시의 최우선 과제”라고 못 박으며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이 도시에 살지도, 투자하지도, 일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안전이 이 도시의 척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표결 기록과 엇갈리는 현재 메시지

문제가 되는 지점은 라만 시의원의 최근 발언이 지난 몇 년간 시의회에서의 표결·행보와 쉽게 맞물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시의회가 LAPD 채용을 약 250명 줄이는 예산을 통과시키자, 그는 작은 규모의 경찰 조직이 폭력적 대치 상황을 줄일 수 있다며 방향성 자체에는 우호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 2021년: 에릭 가세티 당시 시장의 경찰 인력 목표를 300명 줄이자는 마이크 보닌 전 시의원의 제안에 동참했지만, 안은 무산됐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경찰 예산이 약 3% 늘어나는 가세티 예산안에는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 2022년: 시의회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LAPD 채용 계획을 축소한 예산안에도 찬성해, 계획을 한층 후퇴시키는 데 힘을 실었습니다.

  • 2023년: 캐런  배스 시장이 밀어붙인 경찰 임금·보너스 인상 패키지에는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당시 합의안은 초임 연봉 인상과 retention 보너스를 통해 인력 이탈을 막고 신규 채용을 늘리겠다는 취지였지만, 라만은 “채용 효과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도시 재정을 사실상 파탄 낼 수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후 그는 한 지역 주민 모임에서 “이 계약은 채용을 늘리지 못한 채 도시를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 2024년: 경찰 임금 인상 효과가 본격 반영된 배스 시장의 시 예산에는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 2025~26 회계연도: 지난 1월, 배스 시장이 LAPD 추가 채용 170명을 위해 약 260만 달러를 확보하자는 안건을 제출하자, 라만은 다른 DSA 출신 시의원 3명과 함께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그럼에도 안건은 9대 4로 통과됐습니다.

그럼에도 라만 시의원은 최근 성명에서 “나는 재정적으로 책임 있고 적절한 수준의 투자를 담은 경찰 예산에는 찬성해 왔고, 시장이 되어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자기 진단과 현실의 표결 기록 사이 간극을 두고,  배스 시장 측은 “전형적인 정치인처럼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배스 캠프 대변인 더글러스 허먼은 “라만의 투표 행적을 보면 도시를 더 안전하게 만들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 손으로는 경찰력을 줄이는 선택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경찰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진보 지지층의 배신감과 “중도 러시” 비판

라만 시의원은 그동안 경찰 대신 노숙인 지원, 길거리 의료팀, 갱개입 프로그램 등 대안적 공공안전 모델에 예산을 돌려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습니다. LAPD 인력 부족이 반드시 긴급 출동 지연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현장에 꼭 무장 경찰이 가지 않아도 되는 신고에는 비무장 대응팀, 정신건강 전문 인력 등을 투입하면 비용과 효율 면에서 더 낫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처럼 “작은 경찰, 다양한 복지·개입 프로그램 확대”를 강조해 온 라만이 시장 후보 등록과 동시에 “경찰력 유지”를 공개적으로 내세우자, 그를 진보 동맹으로 여겨온 일부 단체들은 배신감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LA 블랙라이브스매터 공동 설립자 멜리나 압둘라는 “그의 발언은 스스로 밝힌 가치에 대한 노골적인 배신”이라며 “라만과 배스 모두 중도로 달려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경찰 폐지를 목표로 하는 이들 입장에서, “디펀드”를 외치던 정치인이 선거 국면이 되자 “경찰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신뢰의 바닥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읽힙니다.

한편 라만은 여전히 “911 신고에 무조건 무장 경찰이 출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비무장 인력과 더 저렴한 대응 수단을 확대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권자에게 전달되는 인상은 단순합니다. “경찰을 줄이자”는 과거의 구호와 “경찰력을 지키자”는 현재의 메시지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표를 던질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LAPD 규모와 시장 레이스의 계산법

현재 LAPD는 약 8,700명 수준의 정규 경찰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시위 이후 채용 축소와 퇴직 증가가 겹치면서, 한때 1만 명에 달하던 인력은 지속적으로 줄어왔습니다. 카렌 배스 시장은 취임 이후 LAPD를 다시 9,500명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세웠고, 2028년 올림픽·패럴림픽 등 대형 국제 행사를 앞둔 도시의 치안 수요를 강조해 왔습니다. 시는 경찰 채용 절차를 단축하고, 임금 인상과 보너스를 통해 인력 유출을 늦추려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퇴직·이탈 인원이 신규 채용을 앞지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라만 시의원이 “경찰력 규모 유지”라는 메시지로 선회한 것은, 시장 선거에서 ‘범도시적 유권자’를 상대로 해야 하는 현실 계산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시의원 선거 당시에는 DSA와 진보 단체, 조직 노동 등을 중심으로 한 진보 연합에 기대어도 승산이 있었지만, 시장 선거는 범중도·비정당층까지 포괄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공안전 이슈에서의 강경한 ‘디펀드’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적 선회는 동시에 정치적 리스크도 안고 있습니다. 중도층에게는 여전히 치안·재정 문제에서 “모호한 후보”로 보일 수 있고, 진보 지지층에게는 “말을 바꾸는 정치인”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말을 바꾸는 정치인”에 대한 기본적 불신

정치인의 입장이 세부 정책과 재정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합니다. 세부 예산 항목, 인건비 증가, 세수 전망 등은 매년 달라지고, 이에 따라 정책 도구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입장의 조정 과정에서 얼마나 솔직하게 과거 발언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왜 선택을 바꾸게 됐는지 설명하느냐입니다.

라만 시의원의 경우, “디펀드”를 전면에 내걸던 시기와 “경찰력 유지”를 강조하는 현재 사이에 유권자가 납득할 만한 서사와 설명이 충분히 제시됐는지는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과거에는 왜 경찰 감축이 필요하다고 봤는지, 지금은 왜 경찰 유지가 필수라고 보는지, 그 사이에 범죄 양상·예산 구조·시민 여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짚어야 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메시지에서는 이러한 연결고리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라만 개인의 진보·중도 위치를 둘러싼 이념 공방을 넘어섭니다. “그때그때 말을 바꾸는 정치인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유권자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키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공공안전처럼 시민의 불안과 직결된 사안에서 과거 구호와 현재 메시지 사이 간극을 줄이지 못한다면, 라만 시의원이 시장 선거전을 치르는 내내 따라다닐 질문은 단 하나일지 모릅니다. “언제의 니티아 라만을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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