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효 교수의 한국사람 사는 이야기]
처음 자율주행 택시에 탔던 날을 기억합니다. 막상 ‘운전자가 없는 차’ 앞에 서니 묘한 긴장감이 올라왔고, 인간이 통제하지 않는 이동수단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감정적인 일이었습니다.
문이 닫히고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습니다. 핸들은 스스로 돌아가고, 브레이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판단에 따라 작동했습니다. 평소라면 운전석을 힐끔거리며 기사님의 표정을 살폈겠지만,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기술의 정밀함이 아니라,사람의 존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대표적인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로는 Waymo와 Cruise가 있습니다. 이들은 운전자가 없는 차량을 도심에서 실제로 운행하며, AI 기반 센서 시스템과 고정밀 지도, 실시간 데이터 처리 기술을 결합해 주행합니다.
자율주행 기술은 보통 레벨 0에서 5까지 구분되는데, 로보택시는 인간 개입이 최소화되거나 전혀 필요 없는 상위 단계(Level 4~5)를 지향합니다. 차량은 라이다(LiDAR), 레이더,카메라를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알고리즘이 상황을 분석해 주행을 결정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인간 운전자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하고, 더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겁니다.
인간 운전자는 실수를 합니다. 졸음운전도 하고, 신호를 놓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율주행 택시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공감’이 없습니다. 위험 상황에서 차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그 기준은 알고리즘이고, 우리는 그 알고리즘을 보지 못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늘 새로운 기술 앞에서 망설였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사람들은 무인 운행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엘리베이터 승무원’이 존재했고, 기술이 안전해도, 사람들은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승무원은 사라졌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버튼을 누르며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율주행 택시도 어쩌면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운전석이 비어 있는 것이 어색하지만, 몇 년 후에는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더 위험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기술 수용성(technology acceptance)은 단지 기능의 문제가 아니고, 심리적 적응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신뢰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 불안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자율주행 택시는 사고율을 낮추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고, 인간 운전보다 더 안전하다는 통계가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안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신뢰는 숫자로만 형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야기로 신뢰를 만듭니다. “저 기사님은 20년 무사고래.” 같은 말은 설득력을 가집니다. 반면 “이 알고리즘은 1억 km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했어.”라는 문장은 이성적으로는 납득되지만,감정적으로는 멀게 느낍니다.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미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데이터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일이 아니라,감정의 기준을 업데이트하는 일이라는 것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저는 놀랄 만큼 평온했습니다. 차는 부드럽게 멈췄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술의 성취였습니다. 처음의 긴장은 사라지고,오히려 묘한 안도감이 남았습니다. 제가 미래의 한 단면을 통과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미래에 적응할 것입니다. 처음 스마트폰을 들었을 때도, 처음 모바일 결제를 했을 때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낯설었지만, 결국 편리함이 두려움을 이겼고, 자율주행 역시 그렇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지 모릅니다.
미래는 거대한 이벤트로 오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선택의 형태로 옵니다. “타볼까, 말까.”라는 질문처럼. 그날 저는 ‘타보는 쪽’을 선택했고,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미래를 받아들이는 순간은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후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은 채 한 걸음 내딛는 때라는 것을.
자율주행 택시는 단지 이동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뢰를 재정의하고, 통제권을 재배치하며,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다시 쓰는 과정의 상징입니다.
어쩌면 낯선 미래는 늘 그렇게 찾아옵니다. 조용히 문을 열고, 우리가 앉기를 기다리면서.

이지효 한국 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문화 콘텐츠학 박사
jihyol@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