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치사] 공천 학살, 배신자 낙인, 계엄까지… 공생·공멸 가른 ‘당청 갈등’의 역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정당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①이명박 정부: 레임덕 부추긴 박근혜와 반목
②박근혜 정부: ‘배신의 정치’에 ‘옥새 파동’까지
③문재인 정부: ‘추다르크’ 독주?… 조기 봉합
④윤석열 정부: 이준석 이어 한동훈 제거 시도
⑤이재명 정부: 당권 겨냥 ‘포스트 이재명’ 경쟁

최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2차 종합특검 후보 추천 등을 계기로 표면화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간 이상 기류를 두고 역대 정부에서 나타난 당청 갈등이 재현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을 책임지는 파트너이자 행정·입법부로서 협력과 견제를 반복할 수밖에 없지만, 갈등의 정도와 깊이에 따라 공생과 공멸을 결정짓기도 한다. 작은 해프닝에 그친 사례도 있는 반면, 선거 참패와 정권 몰락으로 이끈 사례까지 역대 정부의 당청 갈등을 톺아봤다.

①이명박 정부: 레임덕 부추긴 ‘앙숙’ 박근혜와의 반목

대선후보 경선부터 치열하게 맞붙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표 간 감정의 골은 5년 내내 국정 운영을 발목 잡은 요인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두 달 만에 열린 18대 총선 공천을 둘러싼 갈등으로 허니문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친박근혜계 공천 학살로 여권이 사분오열하면서다. 박 대표의 “살아서 돌아오라”는 호소에 힘입어 친박계 26명이 한나라당 소속이 아닌 친박연대·무소속 등으로 생환했다. 범여권으로 보면 압승했지만,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지켜낸 결과(153석)에 만족해야 했다.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는 ‘여당 내 야당’이라는 평가를 들었고, 정권 말인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박 대표가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천권을 쥐고 친이명박계 학살로 되갚았다. 당청 갈등에 20%대로 주저앉은 국정 지지율은 이 대통령 임기 종료 때까지 유지됐다.

2007년 8월 13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연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8월 13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이명박, 박근혜 후보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연설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②박근혜 정부: ‘배신의 정치’에 ‘옥새 파동’까지

공고했던 박근혜 정부는 임기 중·후반 당청 갈등을 피하지 못했다. 친박계였던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이었다. 당청 갈등 끝에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 원내대표는 물러났지만, 이를 수습하기 위해 들어선 김무성 대표와도 2016년 20대 총선 공천을 두고 충돌했다. 청와대가 노골적으로 당 공천 과정에 개입하자, 김 대표가 공천장 날인을 거부하고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간 이른바 ‘옥새 파동’이 벌어졌다.

당청 갈등 분출로 20대 총선 결과는 패배로 귀결됐다. 이는 정권 후반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동력 상실을 부추기며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탄핵으로 정권 몰락을 앞당긴 요인 중 하나였다. 훗날 박 대통령은 20대 총선 공천 개입 혐의로 실형(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24일 5개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 사건은 '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24일 5개 지역구 후보자에 대한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실 앞 영도대교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 사건은 ‘옥새 파동’으로도 불린다. 뉴시스

③문재인 정부: ‘추다르크’의 독주?… 비교적 조기 봉합

문재인 정부도 출범 초기 국정 주도권을 둘러싼 당청 갈등이 있었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추미애 민주당 대표 간 불화설이 대표적이다. 내각 구성 과정에서 인사추천권을 놓고 두 사람이 맞부딪혔고, 추 대표의 국민의당을 향한 ‘머리 자르기’ 발언을 청와대가 대신 사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다만, 임기 초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고공행진에 추 대표도 끝까지 대립각을 고수하진 않았다. 후임으로 ‘관리형 리더십’을 갖춘 이해찬 대표가 들어서면서 당청 갈등은 조기 봉합됐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017년 5월 16일 국회에서 신임 인사차 예방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장미 한 송이를 선물 받고 포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017년 5월 16일 국회에서 신임 인사차 예방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장미 한 송이를 선물 받고 포옹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④윤석열 정부: 여당 대표 이준석·한동훈 축출 시도

윤석열 정부는 당청 갈등이 정권 몰락을 부추긴 경우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선 때부터 불협화음을 빚었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몰아내며 당청 수직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이후에도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 공천에 개입하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이어진 22대 총선까지 참패를 면치 못했다. 당은 비상대책위 체제를 반복하면서 ‘대통령실 2중대’ 역할에 충실했다.

‘윤석열 정부의 황태자’로 불렸던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디올백 논란이 불거진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요청하는 등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자, 양측 갈등은 감정적 대립으로까지 번졌다. 한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를 거쳐 여당 대표에 오른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고, 12·3 불법 계엄 당시 윤 대통령이 군에 지시한 체포 대상에 집권여당 대표인 한 대표가 포함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회 계엄 해제 의결에도 야당뿐 아니라 한 대표가 앞장선 배경이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실을 비롯한 친윤석열계와 한 대표의 갈등은 정권 몰락의 요인 중 하나였고,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국민의힘 내홍의 가장 큰 배경이기도 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4년 1월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4년 1월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⑤이재명 정부: 당권 잡고 대권 도약 ‘포스트 이재명’ 경쟁

이재명 정부는 임기 초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높은 가운데 당청 갈등이 부상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을 등에 업고 대표 연임을 노리는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를 차기 대표로 비당권파 간 경쟁이 조기 점화한 모양새다. 청와대는 당청 갈등에 선을 긋고 있지만, 비당권파에는 이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이 다수 포진돼 있다. 문재인 정권 초 추미애 대표를 연상케 하는 탓에, 독자 플레이를 선호해온 정 대표 특유의 캐릭터를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번 당청 갈등은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여권 권력투쟁과 무관치 않다. 8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민주당 대표가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손에 넣어 차기 대권을 노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권 장악 이후 대권을 거머쥔 이 대통령의 길을 따르려는 ‘포스트 이재명’ 경쟁이 불붙은 셈이다. 정 대표의 연임 여부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집권 2년 차 국정 운영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8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바라보지 않은 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고위당정 직전 민주당이 '김성태 변호인' 출신을 2차 종합특검

김민석 국무총리가 8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공관에서 열린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바라보지 않은 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이날 고위당정 직전 민주당이 ‘김성태 변호인’ 출신을 2차 종합특검 후보로 추천해 대통령이 질타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민경석 기자

근본적 원인은 수평적 당청관계 인식 결여

정권마다 당청 갈등이 반복된 원인에는 대통령 단임제와 이에 따른 신구 권력 간 경쟁 등 구조적 문제가 있다. 정권 중·후반으로 접어들수록 갈등이 빈번해지는 이유다. 반복되는 당청 갈등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선 수평적 당청관계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청 모두 민주주의 기본인 정당정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청와대도 정당정치의 영역을 존중해야 하고, 집권여당도 당내 소통을 통해 정당정치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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