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스토리] 화투 만들던 닌텐도…창업자의 골칫덩이 손자가 글로벌기업으로 키웠다

닌텐도의 어벤저스<1>

게임기로 유명한 닌텐도는 역발상으로 전 세계 게임 시장을 뒤집은 일본의 대표적 혁신기업이다. 혁신의 이면에는 마블코믹스의 ‘어벤저스’처럼 남다른 재능과 식견을 가진 인물들인 ‘닌텐도 어벤저스’가 있다. 이들의 영광과 눈물이 서린 발자취 속에 닌텐도 혁신의 비결이 들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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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로 흥한 자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内房治郎)가 1889년 일본 교토에서 창업한 닌텐도는 무려 137년 된 회사다. 닌텐도(任天堂) 라는 회사명은 ‘운은 하늘에 달렸다’는 뜻이다. 회사의 운명을 하늘에 맡긴 특이한 사명은 창업자인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지었다.

시작은 화투였다. 화투가 등장하기 이전 일본 사람들은 서양 카드게임을 즐겼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난파선을 통해 조총과 함께 전래된 카드가 영어 발음을 딴 가루타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에도 막부는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박을 금지하며 카드 게임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 바람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화투, 즉 ‘하나후다’다. 카드에 표시된 숫자를 꽃과 동물 그림으로 대체한 화투는 카드의 눈가림격 변종이다. 그런데도 메이지 정부는 1885년 화투를 도박이 아닌 놀이도구로 보고 허용했다.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이를 곧 사업 기회로 봤다.

원래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교토에서 건축자재용 석회를 다루는 도매업체 하이타카본점을 운영하던 집안의 양자로 들어갔다. 각종 재료에 익숙하고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독특한 화투를 만들었다. 닥나무 껍질로 직접 만든 종이를 여러 겹 붙인 뒤 뒷면에 점토를 섞은 도료를 발라 만든 ‘대통령(大統領)’이라는 상표의 화투는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묵직한 손맛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견고했기 때문에 패에 흔적을 남겨 속임수를 쓰기 힘들어 폭력배(야쿠자)들이 운영하는 교토와 오사카의 도박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한마디로 품질을 차별화한 화투를 만들어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그는 교토에 닌텐도골패라는 화투 상점을 열었다. 운이 좌우하는 도박판의 주요 도구를 주력 사업으로 삼으면서 하늘에 운을 맡긴 특이한 사명이 등장했다. 당시 교토는 고조라쿠엔 등 대규모 유곽이 있어 도박판이 항상 벌어졌다. 따라서 화투 수요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야마우치는 유통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래서 전국의 담배왕으로 통하던 무라이 상회의 무라이 기치베이와 손잡고 담배가게에서 화투를 팔도록 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유통 혁명이었다. 담배와 화투의 주요 소비자가 일치하는 것을 눈여겨 본 덕분에 전국적으로 화투를 팔게 됐고, 작은 상점이었던 닌텐도는 일본 최대의 화투·카드 제조사로 성장했다.

제3대 사장을 맡아 닌텐도를 화투회사에서 게임업체로 변신시킨 야마우치 히로시.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3대 사장을 맡아 닌텐도를 화투회사에서 게임업체로 변신시킨 야마우치 히로시. 한국일보 자료사진

회사를 바꾼 버림받은 자

그러나 사업으로 승승장구했던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집안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아들이 없던 그는 가업 승계를 위해 야마우치 세키료를 양자로 들였다. 그러나 1929년 2대 사장이 된 세키료는 여섯 살 된 아들 야마우치 히로시(山内溥)를 두고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았다. 히로시의 어머니마저 아들을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돌보지 않았다.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홀로 남은 손자 히로시를 일찌감치 후계자로 여겨 애지중지 돌봤다. 그러나 히로시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삐뚤어졌다. 나중에 아버지 세키료가 병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히로시는 아버지를 냉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히로시는 두고두고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렸다.

히로시는 와세다대학에 진학한 뒤 곧바로 결혼했으나 여전히 말썽꾸러기로 살았다. 고급외제차를 몰고 유흥가를 돌며 돈을 흥청망청 썼다. 하지만 할아버지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손자를 미워하지 않고 무조건 지지했다.

망나니였던 히로시가 정신을 차린 계기는 유일한 응원자였던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닌텐도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히로시에게 가업을 이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사업을 하기 싫었으나 평생 할아버지의 속을 썩인 것에 대한 속죄로 1949년 제 3대 닌텐도 사장이 됐다. 그는 이왕 하는 사업이라면 닌텐도를 세계 최고의 카드 회사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1960년 미국을 다녀온 뒤 그의 꿈이 산산조각났다. 직접 방문한 세계 1위 카드회사 US플레잉은 2층짜리 초라한 창고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거기서 충격을 받은 히로시는 세계 최고의 카드회사가 돼도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해 다른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야마우치 히로시를 통해 닌텐도의 변신이 시작됐다.

닌텐도의 게임기 '게임&워치'. 닌텐도 홈페이지 캡처

닌텐도의 게임기 ‘게임&워치’. 닌텐도 홈페이지 캡처

고통스러운 변신

변신의 과정은 험난했다. 1962년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를 주식시장에 상장해 확보한 자금으로 즉석 밥 시장에 뛰어들었다. 즉석식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 벌인 사업이었으나 맛이 없다는 혹평 속에 손해만 봤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일본 사람들도 여가를 즐길 것이라고 보고 호텔과 택시 사업에 손댔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연이은 사업실패로 닌텐도 주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의 장점을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그래서 카드와 화투라는 놀이도구로 일어선 만큼 또다른 놀이기구인 장난감 사업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1966년 닌텐도 변신의 시작인 유명 장난감 ‘울트라 핸드’가 등장했다. 손잡이를 당기면 길게 늘어나 멀리 떨어진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집게 손 형태의 이 장난감은 140만 개 이상 팔리며 닌텐도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줬다.

이를 계기로 야마우치 히로시는 개발부를 신설해 다양한 장난감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이에 힘을 얻어 신사업으로 일본 전역에 장난감을 이용한 광선총 사격장을 만들었는데 하필 유가가 폭등하면서 모든 물가를 끌어올린 오일쇼크로 사업이 좌초했다. 닌텐도는 직원들 월급을 주기 힘들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그는 돈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야마우치 히로시의 특징은 집요함이다. 그는 회사 사정이 어려운데도 포기하지 않고 신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그렇게 꺼낸 아이템이 1980년 내놓은 휴대용 게임기 ‘게임&워치’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면서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게임&워치는 말 그대로 시계와 결합한 게임기다. 계산기 형태의 작은 기기에 시계 기능과 간단한 게임 하나를 집어 넣었다. 그때까지 없었던 실용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새로운 발상의 기기다.

게임&워치는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4,340만 대가 팔려 닌텐도를 해외까지 알렸다. 덕분에 닌텐도는 80억 엔의 부채를 1년 만에 갚고, 40억 엔의 현금까지 확보했다. 그야말로 극적인 변신의 성공이다.

가정용 게임기 붐을 일으킨 닌텐도의 '패미컴'. 닌텐도 홈페이지 캡처

가정용 게임기 붐을 일으킨 닌텐도의 ‘패미컴’. 닌텐도 홈페이지 캡처

“성공 비결? 그런게 어딨어”

자신감을 얻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본격적으로 미국 전자오락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미국에 수출한 ‘레이더 스코프’라는 전자오락기(아케이드 게임)가 실패하면서 닌텐도는 다시 위기를 겪었다. 레이더 스코프는 1980년대 전자오락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인베이더’ 같은 슈팅 게임기다. 미국 판매를 위해 제작된 3,000대 가운데 1,000대만 팔리고 나머지는 그대로 재고가 됐다. 닌텐도는 재고를 보관한 미국의 창고 임대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이 기기가 실패한 이유는 몇 달에 걸쳐 배로 실어나르는 동안 미국의 유행 게임이 변했고, 특유의 전자음을 미국 전자오락실 업주들이 시끄럽다고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패가 전화위복의 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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