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역사는 스포일러지만, 감정은 현재진행형 [이준학의 스크린리포트]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스틸컷. 사진 제공=쇼박스

씨네마 가이드 [영화 개봉작] 왕과 사는 남자

이번 스크린 리포트에서는 최근 한국에서 관객 6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방문 일정 중 현지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관객의 호흡과 정서가 그대로 전해지는 극장 경험 덕분에 작품의
감정선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반가운 소식은, 이 작품을 미국에서도 여러 극장에서 상영
중이라는 점이다.

미국 내 상영관 안내
REGENCY THEATRES (구 CGV): 3500 South Western Avenue #304, Los Angeles, CA
90005
CGV 부에나파크: 6988 Beach Boulevard, Buena Park, CA 90621
Regal La Habra: 1351 West Imperial Highway, La Habra, CA 90631
AMC Orange 30: 20 City Boulevard West, Orange, CA 92868
AMC Santa Monica 7: 1310 3rd Street, Santa Monica, CA 90401

이 영화의 흥행 이유를 단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몇 가지 분명한 지점이 있다.
첫째, 역사라는 이미 진실이 알려진 이야기를 ‘사람의 얼굴’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역사는
이미 스포일러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선택과 감정은 여전히 새롭다.
둘째, 웃음과 눈물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정서적 완급 조절이다. 영화 초반부는 유해진과
조연들의 리듬감 있는 연기로 극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고,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의
무게가 쌓이며 마지막에는 훌쩍이는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결정적이다.
주인공을 맡은 유해진은 이번 영화에서도 우리가 기대한 만큼, 아니 기대한 그대로
‘유해진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과하지 않지만 정확하고, 웃기지만 가볍지 않다. 생활 연기의
대가답게 시대극 속 인물도 현실의 사람처럼 숨 쉬게 만든다.

고종을 연기한 박지훈은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변주를 보여준다. 역사 속에서 이미 상징으로
굳어버린 군주가 아니라, 두려움과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간 고종’**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나 스스로의 어리석은
고정관념 때문에 큰 기대 없이 그의 연기를 바라봤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선입견은 완전히 무너진다. 박지훈은 눈빛과 호흡만으로도 고종의 내면을
고스란히 전달하며, 특히 결정적인 순간마다 보여주는 불안과 결단의 표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떠올리게 될 고종의 얼굴과 눈빛은 박지훈의
모습으로 각인될 가능성이 크다고 느껴질 만큼, 그의 연기는 강렬하고 설득력이 있다.

한명회를 맡은 유지태는 권력의 얼굴을 절제된 에너지로 표현한다. 큰 소리나 과장된 몸짓
없이도 화면을 장악하는 그의 연기는, 권력이 어떻게 말보다 침묵으로 작동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지금까지 우리가 TV나 영화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사꾼’
혹은 책략가로서의 한명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유지태의
한명회는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기 이전에, 그 시대를 실제로 장악했던 리더로서의
카리스마와 무서울 만큼의 아우라를 지닌 존재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실제 한명회는 건장한
체격과 강한 외모를 갖춘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유지태의 묵직한 체구와 절제된 연기는
이러한 역사적 이미지를 설득력 있게 되살린다. 기존의 한명회를 지워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한명회를 스크린 위에 세운 그의 연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존재감은 매화 역의 전미도다. 말수는 많지 않지만, 등장하는
순간마다 감정의 결을 바꾸는 힘을 지녔다. 특히 후반부의 몇몇 장면에서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극장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왕을 모시는 상궁
매화를 연기한 배우가 전미도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관람했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상궁의 모습, 혹은 단순히 동생이나 아들을 보살피는
가족적 감정을 넘어서는 연기였기 때문이다. 전미도의 매화는 왕을 모시는 인물이면서도,
인간적인 연민과 절제된 거리감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영화를 보던 중반부에 이
배우가 전미도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제야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여러 뮤지컬
무대, 특히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들과 전혀 다른 결의 연기라는 점이 더욱
선명해졌다.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서로 다른 색깔의 연기를 소화해 내는 배우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연기력이 정말 대단했다’는 표현은 이 경우,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처럼 많은 배우들이 각자의 연기를 온전히 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출을 맡은 장항준
감독의 힘이 크다. 배우의 연기를 억누르지 않고, 인물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만드는 디렉션,
그리고 현장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의 인품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겼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연기들은 ‘연기한다’기보다 ‘살아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역사는 이미 스포일러지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세종의 장손이자 문종의 아들로 태어난
단종 이홍위는 의심의 여지 없는 조선의 ‘적통 중의 적통’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권력의 한복판에서 너무도 이른 시련을 맞이한다.

삼촌 수양대군의 권력 장악 과정 속에서 충신들을 차례로 잃고, 결국 열다섯의 나이에 왕위를
빼앗긴 채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역사는 오랫동안 그를 무력하게 폐위당하고, 유배지에서
식음을 전폐한 채 나약하게 죽어간 비운의 군주로 기록해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던 단종의 마지막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다시 써 내려간다.

유배지에서 단종은 촌장 엄흥도를 만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죄책감과 무력감에 잠식돼
있던 소년은 엄흥도의 도움 속에서 조금씩 웃음을 되찾고,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기 시작한다.

치열한 정치 싸움의 희생양으로만 남아 있던 연약한
왕은, 점차 ‘약한 노루의 눈’을 지우고 ‘범의 눈’을 가진 군주로 각성해 간다. 이 영화는 단종의
삶을 통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한 인간의 성장과 결단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되살려낸다.

〈왕과 사는 남자〉는 웃고 울게 만드는 영화다. 한국에서 봐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역사를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극장을 나설 때, 마음 한켠이 묵직해지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영화.
지금, 이곳에서도 만나볼 가치가 충분하다.

 

씨네마 가이드 이준학

CED (California Event & Design) 대표 (909)714-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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