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팔레비 왕조 폐지 후 이슬람공화국 설립
1981년 대통령 당선…1989년 최고지도자 등극
시위 강경진압·핵협상 타협거부에 美 공습 빌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하메네이가 분쟁 속에서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날 오전 1시 15분, 이란 시간으로는 오전 9시 45분에 이란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지 약 15시간 만이다. 이란 관영 IRNA 통신에 따르면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폭발과 함께 굵은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이곳은 하메네이의 집무실 부근으로 파악됐다.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가문의 후손으로 1939년 4월 19일 이란 북동부의 마슈하드에서 태어난 하메네이는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 경전 쿠란을 익혔다. 1958년 시아파 성지인 이란 서부 도시 곰으로 이주해 루홀라 호메이니에게서 신학을 배우며 그와 가까워졌고 정치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와 함께 팔레비 왕조의 모하마드 레자 샤(국왕) 반대 운동을 벌였고 3년간 추방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1978년 이란 이슬람혁명을 일으켰고, 이듬해 팔레비 왕조를 폐지시킨 뒤 이슬람공화국을 세웠다.

아야톨리 알리 하메네이가 대통령이던 1981년 군복을 입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스승인 호메이니가 초대 최고지도자에 올랐고, 측근인 하메네이도 국방차관에 등용되며 공직에 진출했다. 1981년엔 97%의 득표율로 3대 대통령이 됐다. 이란의 첫 성직자 출신 대통령이었다. 그는 취임 연설 때 제거 대상으로 “일탈과 자유주의, 그리고 미국의 영향을 받은 좌파”를 지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재선에 성공해 1989년까지 재임했다.
하메네이는 1989년에 호메이니가 노환으로 숨지며 최고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란에서 종신직인 최고지도자는 국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권력의 정점일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신의 대리인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고지도자는 이란의 대내 정책의 최종 결정·집행 감독권, 각종 선거 승인권뿐 아니라 사법부 수장, 국영 매체 경영진, 대통령·내각의 임면권, 사면권 등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하메네이는 반대파를 숙청하며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갔다. 또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1982년 창설을 도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더욱 밀착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유연하게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메네이는 1997년 당선된 개혁파 진영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부여했다. 특히 2001년 미국에서 벌어진 9·11 사태 국면에서 하타미 대통령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하자 이를 막지 않았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2009년 이란 테헤란 남부 사원에서 열린 호메이니 사망 20주년 기념식에서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또 하메네이는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를 금지한다는 파트와(종교지도자의 칙령)를 직접 발표했다. 2015년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서방과 타결한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이행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폈고, 이는 결국 스스로의 명을 재촉하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하메네이는 1999년 개혁파 신문 살람이 폐간된 데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 반발하는 시위,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본격화한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한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인 것이 미국에 대규모 공습의 빌미를 줬다. 앞서 테헤란 상인들은 지난해 말 이란의 핵개발과 서방의 제재로 누적된 경제난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것이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이란 당국은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서는 3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를 계기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소요사태에 따른 군사개입을 시사하며 핵협상 재개를 종용했다.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의 3차회담이 열린지 이틀 만인 28일 이란을 공습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정세는 격랑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는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을 자신의 유고시 대리인으로 지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후계구도가 정리되기 전 IRGC 출신의 강성 인사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