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메리카노.” 늘 그렇듯, “뭐 마실래?”라고 동행이 묻기도 전에 메뉴 선택은 끝나 있었다. 주문을 하고 나서야 메뉴판을 훑어보는데 낯선 메뉴가 눈에 띈다.
‘콜롬비아 그란자 에스페란자 세로 아줄…’ 이름만 스무 자가 넘고 가격은 무려 1만 원. 살짝 궁금하긴 하나, 이름 부르기도 쉽지 않은 새 커피를 공부하고, 시도해보고, 비교하면서 실패의 리스크까지 감수하는 게 구식 아재는 버겁다. 더구나 만만찮은 가격까지. 그래서 아메리카노가 가장 속 편하다.
커피가 다방커피, 자판기커피, 원두커피로 삼분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블랙커피, 밀크커피, 설탕커피 식으로 억지로 나눠봐도 10종류가 안 됐던 것 같다. 1990년대 후반 근사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갖춘 프랜차이즈가 등장하기 전 이야기다.
이후 카페라떼, 카페모카로 시작된 커피의 분화는 로스터리 카페가 늘고 핸드드립, 콜드브루, 싱글오리진 등 새 취향까지 반영하며 가속화했다.
여기에 원두의 종류, 산지, 로스팅 방식, 배합 비율, 추출 방식, 첨가물, 온도 등 각종 변수들이 결합하면서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커피가 그저 커피였던 시절엔 소고기도 그냥 소고기일 뿐이었다. 점차 ‘출신 성분’에 따라 국내산 육우, 수입산, 한우로 구분하기 시작하더니 등심, 채끝, 부챗살, 안창살처럼 부위별 세부 명칭이 일상에서 통용된다.
동일한 부위라도 마블링에 따라 3등급부터 1등급으로, 1등급은 다시 ‘원뿔(1+)’, ‘투뿔(1++)’로 나누는데, 요즘엔 가장 비싼 투뿔 중에서도 No.7, No.8, No.9으로 세분화해 가격을 매긴다. 같은 투뿔이라도 No.9이 붙어야 최고가 선물용으로 인정받는다.
상품이 세분화할수록 등급 간의 실질적 격차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스페셜티 커피 87점과 90점의 차이, 한우 투뿔 No.7과 No.9의 차이란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다.
작은 차이로 가격은 크게 올려 받고 싶은 판매자 입장에선 겉모습을 인상적으로 꾸며 차별성을 과장하는 과잉∙과대 포장이 가장 손쉬운 선택지다.
색깔, 모양, 재질이 독특한 하드 케이스와 벨벳 소재로 마감한 안감에 금박 로고를 두르거나, 동일한 제품을 살짝 다르게 구성해 ‘리미티드 에디션’, ‘프리미엄 세트’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