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로 본 술이 센 나라들과 한국인의 술 이야기
세계에는 술을 즐기는 문화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술에 강한지 약한지는 단순한 습관이나 문화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최근 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술을 얼마나 잘 견디는지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 유전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ALDH2라는 효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효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술을 비교적 잘 견디고, 기능이 약하면 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빨개지거나 쉽게 취하게 됩니다.
유전자 연구를 보면 지역마다 이 효소의 분포가 크게 다르고, ALDH2 효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평균적으로 술에 강한 인구 비율도 높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DNA적으로 술에 강한 TOP10 국가들은 아일랜드, 독일, 체코, 러시아, 폴란드, 프랑스, 스페인, 영국, 호주, 미국 등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이 유럽과 서구권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ALDH2 효소 결핍 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반대로 한국,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약 30~40% 정도의 인구가 이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유전적으로 보면 한국인은 술에 강한 민족이 아니라 오히려 술에 약한 편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술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오히려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술 문화 때문에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술잔을 채워주는 문화입니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잔이 비어 있으면 술을 따라주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고, 종종 외국인 친구들은 이렇게 농담합니다.
“한국에서는 술잔이 비어 있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
잔이 비어 있으면 누군가가 바로 술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보통 자신의 술은 스스로 따르기 때문에 이런 문화가 꽤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또 하나 외국인들이 놀라는 문화는 바로 ‘원샷’입니다. 서양에서는 술을 천천히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 술자리에서는 건배 후 잔을 한 번에 비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 회사에 취직한 저의 한 호주인 친구는 첫 회식에서 이 문화를 경험한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건배를 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생존 훈련이 시작된 줄 알았다.”
한국의 술자리 예절도 외국인들에게는 흥미로운 문화입니다. 한국에서는 연장자나 상사 앞에서 술을 마실 때 고개를 살짝 돌리고 마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의 외국인 친구는 이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물었고, “예의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은 마시라고 주면서 왜 숨기고 마시는 건가요?”
또 다른 유명한 한국 술 문화는 폭탄주입니다. 맥주잔에 소주잔을 떨어뜨려 섞어 마시는 방식인데,외국인들에게는 마치 화학 실험처럼 보인다고 합니다.한국 술 문화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2차, 3차 문화’입니다.
서양에서는 보통 한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1차, 술집에서 2차,노래방에서 3차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사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증류주가 한국의 소주라는 점입니다. 위스키나 보드카가 아니라 작은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가 세계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외국인들에게 의외로 들립니다.
이처럼 한국의 술 문화는 단순히 술을 많이 마시는 문화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에 가깝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농경 사회에서 막걸리를 나누며 공동체 결속을 다졌고, 현대 사회에서도 술자리는 인간관계를 가까워지게 만드는 공간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술 이야기를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나라”라는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유전적으로는 술에 약한 편이지만,오랜 역사와 공동체 문화 속에서 술이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술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떤 술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지만, 어떤 술자리는 사람을 더 솔직하게 만들고, 그 솔직한 순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그래서 한국의 술잔에는 단순히 술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지효, 문화 콘텐츠학 박사, 한국 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jihyol@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