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보도] “도그 파이트는 끝났다”… 전투기 대신 수송기가 미사일 90발 쏘는 시대

영화 '탑건'에서 묘사된 근접 공중전. 전투기들이 서로 꼬리를 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 해군 홈페이지

1986년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크게 흥행한 영화 ‘탑건’ 이후 현대 공중전이 묘사된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는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은 ‘클리셰’(틀에 박힌 진부한 표현)가 있다. 주인공이 탑승한 전투기는 고성능 레이더와 미사일, 심지어 인공지능(AI)까지 탑재한 첨단 기술의 결정체로 수십, 수백 킬로미터 밖의 표적까지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소개된다.

하지만 정작 공중전 장면에 들어가면 이들 전투기는 적기 조종사의 표정까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서로의 꼬리를 물기 위해 분투한다. 기관포든 미사일이든 조준하려면 어떻게든 적기의 꼬리를 물어야 하고, 이를 위해 조종사들은 엄청난 중력가속도를 버텨가며 이를 악물고 조종간을 붙잡는다. 적기가 미사일을 쏘면 그것을 피하려 플레어(미사일 회피용 무기)를 쏘고, 계곡을 따라 아슬아슬한 초저공 비행을 하며 미사일을 따돌리는 장면도 단골로 등장한다.

상대 꼬리를 무는 전투기들의 근접 공중전…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하지만 현실의 현대 공중전에서는 영화 속에서 묘사된 공중전 장면 같은 모습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눈으로는 상대를 볼 수 없는 거리에서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가시거리 안에서 서로 만나도 조종사 헬멧에 장착된 헬멧 연동식 조준 시스템 덕분에 적 비행기의 꼬리를 물지 않고도 미사일을 쏠 수 있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박진감 넘치는 시각적 효과와 함께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야만 하는 영화에서는 이런 단조로운 현실 공중전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영화와 현실의 괴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벌어질 공중전에서는 전투기와 전투기 간의 이런 단조로운 전투 모습조차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전투기가 아닌, 수송기나 공중급유기, 드론이 공중전을 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박진감 넘치는 공중전이 펼쳐지지만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사용하는 현실에서는 좀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박진감 넘치는 공중전이 펼쳐지지만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사용하는 현실에서는 좀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라이트 형제에 의해 1903년 탄생한 ‘비행기’라는 물건은 등장과 함께 각국 군대의 높은 관심을 받으며 단숨에 전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비행기의 탄생 이전까지 전쟁은 육상과 해상이라는 2차원 공간에서만 치러졌지만,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단숨에 전장의 영역을 3차원으로 확장했다. 비행기는 적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적 진영과 전력을 염탐할 수 있는 정찰 수단으로 도입됐지만, 이후 적의 머리 위에 수류탄이나 박격포탄을 던지는 ‘폭격’이라는 역할이 추가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와 비행기가 공중에서 싸우는 공중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시작된 공중전은 조종사나 관측수가 상대 항공기를 향해 권총이나 소총 따위를 쏘는 정도였다. 당시 소총은 1발 쏠 때마다 장전 손잡이를 당겨주어야 하는 볼트액션 방식이라 연발 사격은 불가능했고, 이런 단발 사격으로 적기를 맞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적적으로 적기에 총알을 맞히더라도 적기 조종사의 급소에 명중시키지 않는 한, 치명타를 줄 수도 없었다. 주요 열강들은 지상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하던 기관총을 비행기에 붙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1914년 프랑스 육군의 ‘브와쟁 트루아(Voisin III)’ 복엽기가 기관총을 이용해 독일군 아비아틱 BI를 격추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인류 최초의 공중전 격추 사례다.

최초의 공중전은 대단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브와쟁 트루아는 전방석에 조종사, 후방석에 관측수가 탑승하는 구조였는데, 조종사 머리 위에 거치대를 설치하고 여기에 기관총을 붙였다. 기관총을 쏠 때는 뒷자리의 관측수가 일어서서 총을 잡고 방아쇠를 당겨야 했는데, 비행기는 물론 표적도 3차원 공간에서 정신없이 흔들렸기 때문에 명중률은 기대할 수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과 독일의 공중전을 그린 영화 '라파예트'의 한 장면. 조종사가 적 비행기를 기관총으로 격추하기 위해 꼬리 물기를 시도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과 독일의 공중전을 그린 영화 ‘라파예트’의 한 장면. 조종사가 적 비행기를 기관총으로 격추하기 위해 꼬리 물기를 시도한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흔히 보는 장면처럼 조종사가 조종석 전방 십자선에 적기를 정렬한 뒤 기관총을 쏠 수 있는 항공기는 1915년에 등장했다. 엔진과 방아쇠 사이에 *동기화 기어를 장착해 프로펠러 날개가 기관총 총구 앞을 지나는 순간에는 총이 발사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완성되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공중전 시대가 열렸다.

동기화 기어(Synchronization gear)
1개의 프로펠러 엔진을 사용하는 항공기 전면에 기관총을 장착·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 기관총 방아쇠를 엔진과 연결된 기어로 연결해 프로펠러가 총구 앞에 없을 때만 격발이 되도록 만들었다.

1,2차 세계대전…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서로 뒤엉켜 싸우는 ‘도그파이트’

그리고 이때부터 적기를 잡기 위해 서로 꼬리를 무는 공중전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로의 꼬리를 물기 위해 전투기들이 뒤엉키는 모습은 마치 개가 싸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도그파이트(Dogfight)’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리고 이 도그파이트는 공대공 미사일이 등장하기 전까지 공중전 그 자체로 인식됐다.

2025년 1월 대만 타이중의 공군 기지에서 대만 공군 병사들이 전투기에 장착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P4 '사이드와인더'를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5년 1월 대만 타이중의 공군 기지에서 대만 공군 병사들이 전투기에 장착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P4 ‘사이드와인더’를 살펴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공중전=도그파이트’라는 공식이 깨진 것은 공대공 미사일이 배치된 1950년대 중반의 일이다. 로켓에 유도장치를 달아 항공기를 공격한다는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태동했고, 시제품도 독일에서 만들어졌지만, 공대공 미사일이라는 이름으로 첫 실용화에 성공한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1956년부터 AIM-4 ‘팰컨’, AIM-9 ‘사이드와인더’와 같은 공대공 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하기 시작했고, 이 중 사이드와인더가 1958년 타이완 위기 때 처음으로 실전 격추 기록을 세웠다.

적 항공기 쫓아가는 공대공 유도 미사일 등장…달라진 공중전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미사일 만능주의가 퍼지면서 공대공 미사일의 발전 속도가 빨라졌다. 공대공 미사일은 적 항공기의 엔진에서 나오는 열을 추적해 따라가는 적외선 유도 방식과 레이더 전파를 사용해 적기를 쫓아가는 레이더 유도 방식으로 나뉘어 발전해 나갔다. 적외선 유도 미사일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목표물을, 레이더 유도 방식 미사일은 먼 거리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으로 이원화됐는데,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먼 거리의 표적을 레이더로 탐지·추적하는 레이더 유도 방식 미사일이 도입되면서 가시거리 밖 공중전 시대가 열렸다. 이때부터 도그파이트를 통해 가까운 거리에서 싸우는 공중전은 WVR(Within Visual Range), 레이더를 이용해 먼 거리의 적과 싸우는 공중전은 BVR(Beyond Visual Range)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AIM-7 ‘스패로’나 소련의 R-23 ‘에이팩스’가 이러한 BVR 시대를 연 대표적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BVRAAM)이다.

사이드와인더, 스패로 등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이스라엘 공군의 F-15I 전투기. AP 연합뉴스

사이드와인더, 스패로 등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이스라엘 공군의 F-15I 전투기. AP 연합뉴스

레이더를 이용해 먼 거리의 적기를 공격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미국과 소련은 상대보다 먼저 보고 먼저 쏠 수 있는 전투기와 공대공 미사일을 경쟁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10㎞ 안팎의 사거리를 가졌던 ‘스패로’의 사거리는 30㎞에서 70㎞까지 늘어났다. 이에 질세라 소련도 35㎞급 사거리를 가진 R-23의 후속 모델로 기획한 ‘알라모’의 사거리를 73㎞까지 늘렸다. 이후 1980년대까지 양측의 공대공 미사일 경쟁은 사거리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는데, 미국은 184㎞의 사거리를 가진 ‘피닉스’를, 소련은 304㎞ 사거리의 ‘아모스’를 만들어 초장거리 공대공 교전 시대를 열었다.

수십 킬로미터 날아가는 공대공 미사일…각국의 사거리 늘리기 경쟁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반능동 레이더 유도(SARH)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SARH 방식은 전투기가 표적에 레이더 전파를 계속 쏴주면, 발사된 미사일이 그 레이더 전파의 반사파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유도 방식을 사용하면 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는 미사일이 명중할 때까지 표적에 레이더 전파를 비추고 있어야 한다. 이는 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의 생존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SARH 방식 ‘스패로’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까지 날아가는데 1분 이상 소요되는데, 이는 이 시간 동안 미사일을 발사한 전투기가 계속 표적을 향해 비행하며 *레이더 조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과의 거리는 계속 가까워질 것이고, 적이 미사일을 쏘면 이 미사일에 꼼짝없이 맞거나 유도를 풀고 회피기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미사일은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다.

레이더 조준 상태 유지(Lock-on)
레이더나 적외선 센서 등으로 목표를 지정하고 사격통제컴퓨터가 조준을 고정하는 행위. 사격통제컴퓨터가 레이더 전파·적외선 신호를 이용해 표적에 대한 정조준 상태를 유지하며 유도무기에 표적 정보를 전송, 발사가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당연히 각국은 발사만 하면 미사일이 알아서 표적을 쫓아가는 능동 레이더 유도(ARH)의 필요성을 인식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사일 정도의 작은 체적을 가진 비행체에 고성능 레이더를 구겨 넣을 기술은 없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중·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SARH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스스로 적 전투기 위치 파악해 표적을 쫓아가는 미사일

1990년대 초반 배치된 미국의 AIM-120 ‘암람’은 미사일이 알아서 표적을 쫓아가는 ARH 방식이다. 물론 이 작은 크기의 미사일에 장거리 탐색 능력을 가진 고성능 레이더를 넣을 수는 없기 때문에, 암람은 일정 거리까지는 발사한 전투기의 레이더가 탐지·추적한 적기의 위치 정보를 데이터링크로 수신해 비행경로를 보정하고, 표적과 가까워지면 자체 레이더를 가동해 스스로 표적을 찾아가는 유도 방식을 채택했다.

2023년 3월 한국 공군 F-35A 전투기가 가상의 공중 표적을 향해 AIM-120 암람(AMRAAM)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공군 제공

2023년 3월 한국 공군 F-35A 전투기가 가상의 공중 표적을 향해 AIM-120 암람(AMRAAM)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공군 제공

암람의 등장 이후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ARH 방식의 BVRAAM을 내놓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등장한 대부분의 ARH 미사일은 제원상 50~100㎞ 정도의 최대 사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 유효 사거리는 40~50㎞를 넘지 못한다. 거의 모든 공대공 미사일은 추진기관으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켓모터를 쓴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와 달리 한번 연소를 시작하면 연소를 중단하거나 연소 속도를 조정해 추력을 조절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고체연료 로켓모터를 쓰는 공대공 미사일은 발사 직후 10~15초 정도 후에 연료가 떨어져 연소가 종료된다. 이후부터는 관성에 의해 활공하며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데, 중력과 공기저항의 영향으로 미사일의 속도와 기동성은 비행 거리와 반비례한다. 그래서 공대공 미사일에는 로켓모터가 정상 연소되며 미사일이 최고 속도와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구간, 일명 ‘회피불가구역(NEZ·No Escape Zone)’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NEZ는 통상 최대 사거리의 3분의 1 안팎인데 그래서 100~150㎞급 사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공표되는 암람 시리즈의 실전 격추는 대부분 50㎞ 이내에서 이뤄진다.

현대 공중전 전술은 ‘붐 앤 줌’

그래서 현대 공대공 교전은 ‘붐 앤 줌(Boom & Zoom)’이라 불리는 전술이 많이 사용된다. A편대와 B편대 간의 공대공 전투가 벌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공격자인 A편대는 BVRAAM의 사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B편대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더 빠른 속도로 접근하며 BVRAAM을 쏜다. 이러면 미사일 접근을 파악한 B편대는 편대 대형을 풀고 흩어져 *채프와 전자전 장비로 미사일 회피에 나설 것이다. B편대가 BVRAAM을 다 피했을 때면 A편대가 가시거리까지 접근해 적외선 유도 방식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쏘며 B편대를 공격할 것이다. 이때 A편대가 사용한 전술이 바로 붐 앤 줌이다.

채프(Chaff)
적의 레이더를 속이기 위한 기만 수단. 유리섬유에 알루미늄 등 레이더 전파 반사율이 높은 금속을 입힌 조각들을 통 안에 넣어놨다가 필요시 공중에 뿌려 적의 레이더가 아군 항공기를 찾을 수 없도록 일종의 전파 연막을 만드는 장치다.

이러한 공대공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NEZ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그래서 2010년대 이후 개발된 BVRAAM 대부분은 NEZ를 늘리기 위한 추진체 개량에 많은 공을 들였다. 중국의 PL-15나 이스라엘의 I-Derby는 고체연료를 1·2단으로 나눠 연소하는 듀얼 펄스 로켓을 채택했다. 1단 연료로 일정 거리를 날아간 뒤, 표적과 가까워지면 2단 연료를 점화해 기동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유럽의 미티어는 로켓에 램제트 엔진을 결합한 덕티드 로켓을 채택했다. 이 방식은 미사일에 공기흡입구를 달아 외부 공기를 빨아들인 뒤 고체연료와 함께 연소시키는 방식이다. 연소실 내 공기 유입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연소-관성비행-연소-관성비행을 반복하며 자동차 ‘연비 운전’을 하듯 연료를 쓰기 때문에 사거리도 길고 NEZ도 길다. 이런 신기술이 도입된 PL-15나 미티어는 NEZ가 암람의 2배 이상인 10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비 운전하듯 연료를 사용해 사거리를 늘린 미티어 미사일. 제조사 MBDA 홈페이지

연비 운전하듯 연료를 사용해 사거리를 늘린 미티어 미사일. 제조사 MBDA 홈페이지

다만 이러한 BVRAAM은 사거리 연장에 있어 이제는 물리적 한계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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