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없는데 왜 도망가야 하나”… 한인 초등생의 절규 [학교 폭력에 무너진 가정… 커뮤니티가 나서야]

교내 인종차별 집단폭행 피해자 A군의 아버지와 B군의 어머니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은 A군이 부모에게 쓴 편지. [박상혁 기자]

▶ 인종차별 집단폭행 2년…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 PTSD·응급실행·정신과 치료 “생업 중단, 삶 무너져”
▶ 사회관계 단절돼… 제도 미비에 2·3차 피해 호소

2024년 교내 인종차별 폭행 사건, 2025년 비자발적 자퇴, 그리고 2026년 현재.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피해자 가족의 시계는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피해 학생들은 폭행 후유증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고, 밤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겪었다. 부모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생업을 접고, 함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LA의 한 유명 차터스쿨에서 백인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적 집단 폭행을 당한 뒤 피해자들임에도 오히려 학교를 떠나야 했던(본보 2월19일자 A1면 보도) A군과 B군의 가족이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겪어온 고통을 털어놓았다.

A군의 아버지는 “고작 여섯 살 아이들이 때려봤자 얼마나 아프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날 이후 아이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았다. 이 흉터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쓰리고 기억을 되살리는 고통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신체적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됐지만, 마음은 더 깊이 무너져갔다. 결국 사건 이후 정상적인 근무가 어려워진 B군의 어머니는, 싱글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하던 간호사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B군은 밤마다 식은땀에 젖어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잠에서 깼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복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실려 갔다. 검사 결과는 ‘트라우마로 인한 신체화 증상’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화장실을 수십 차례 드나들며, 잠시라도 엄마와 떨어지면 극심한 불안을 보였다.

상태가 심각해 외출할 때는 프리웨이조차 탈 수 없었고, 휴대용 소변기를 들고 다녔다. 이후 B군은 물 마시기를 거부했고, 또 한 번 심각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방문했다. 의사는 변비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B군은 울면서 “나는 언제 괜찮아지냐”고 물었다.

우울 증세가 심해진 B군은 “칼을 든 괴물이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모는 회당 수백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의사는 약물 치료를 권했지만, 어린 자녀에게 정신과 약을 복용시키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병원 진료와 상담, 행정 절차, 변호사 상담까지 이어지며 가족의 생계는 카드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전학 첫날, B군은 물었다. “엄마,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도망가야 해?” 부모는 감정을 억누른 채 “맞아, 너는 잘못이 없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A군의 가정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폭행 당시 상황을 확인하려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설명을 요구했고, 아이가 묘사한 폭력 장면은 부모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전학 후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새 학교에서 아이는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시간이 많아져 갔다. 숙제를 챙기지 못해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은 날 밤, 아이는 서툰 글씨로 쓴 편지를 부모에게 건넸다. “매일 너무 어지럽고 그것 때문에 예민해진다”는 내용이었다. B군의 부모 역시 정신과 상담을 시작했다.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의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다는 점이다. A군의 아버지는 “A와 B군 모두 사건 전에는 내성적이긴 했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편이었다”며 “지금은 가족 외에는 누구와도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문에 손을 찧고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두 학부모는 또한 학교의 대응을 문제 삼았다. B군의 어머니는 “가해 학생은 재미로 때리고, 학교는 명성을 지키기에 급급하다”며 “특히 저학년의 경우 법적 제재가 거의 없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가 떠나는 시스템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사건 이후의 대응이다. A군의 아버지는 “병원 치료, 법적 절차, 행정 조사, 민원 제기까지 피해자가 스스로 알아보고 감당해야 한다”며 “UCP, CDE, 민권법Civil Rights 등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존재하지만 접근이 어렵고 처리 기간도 길었다.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기도 버거운 상태에서 그 과정 자체가 2차, 3차 고통이 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학교폭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다면, 최소한 피해자를 더 강하게 보호하는 시스템이라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군의 아버지는 “피해자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은 분명히 구조적 문제”라고 덧붙였다.

커뮤니티의 관심도 호소했다. B군의 어머니는 “백인 학생 무리가 아이들을 영어가 서툰 아시안이라고 조롱하며 폭행을 가했는데, 일부 한인 학부모가 앞장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며 “이 일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가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문제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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