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였을 거다. 인스타 피드에서 내내 그 단어가 계속 눈에 밟혔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매번 만났다. 밤티 같다, 완전 밤티, 밤티 느낌. 맥락을 보면 좋은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정확히 뭔지 몰랐다. 그냥 넘겼다. 또 나왔다. 또 넘겼다. 그러다 결국 나는 댓글을 달았다.
밤티가 뭐예요?
그것도 몰라? 노땅 티내네. 못생겼다는 말이잖아.
역시 온라인 세상에서는 욕을 먹어야만 겨우 하나 배울 수 있다.
인공지능(AI)이 알려준 밤티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시작은 아바타 꾸미기 게임 라인플레이였다. ‘밤티’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있었다. 긴 머리에 수염, 묘한 코디의 아바타. 그걸 본 누군가가 댓글을 남겼다. “밤티님 죄송한데 진짜 개X 같이 생기셨네요.” 이 한 문장이 캡처되어 퍼졌다. 커뮤니티를 돌고 X를 돌고 인스타그램까지 흘러들었다. 웃기고 황당한 이 댓글이 밈이 된 건 단순히 무례해서가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저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다들 돌려 말하는 시대에, 저 댓글은 너무 날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웃겼다.

SNS에도 ‘밤티’ 뜻을 설명해주는 콘텐츠와 밤티 밈을 이용한 마케팅 콘텐츠를 많이 볼 수 있다. SNS 인스타그램 ‘밤티’ 관련 연관 게시물 갈무리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이후였다. 저 밈이 유행하며 우리가 정상적으로 쓰던 “못생겼다”는 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대신 이런 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밤티 같다. 미감이 별로다. 내 취향은 아닌데. 같은 말이다. 뜻은 똑같다. 그런데 아무도 “못생겼다”고 하지 않는다.
올해 초 각종 연구소에서는 젠지 분석 보고서를 쏟아냈다. 읽다 보면 한결같은 말뿐이었다. 젠지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다. 자기 확신의 세대. 피드도 그랬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내 기준이 곧 미학이다. 선언들이 넘쳤고, 읽으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피드의 댓글 창을 내리면 어김없이 두바이도 있고, 봄동 비빔밥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또 별개로 밤티가 있었다. 미감이 별로에요가 있었다. 혐오가 가득한데, 아주 악플이 정중했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고 쓴 게시물 아래, 당신은 밤티 같다고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은 플랫폼에서, 같은 세대가, 같은 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못생겼다”는 욕은, 그걸 듣는 사람도 안다. 그래서 방어할 수 있다. 저 사람이 나쁜 거라고, 저건 그냥 악플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화를 내도 된다. 그런데 “밤티 같다”는 다르다. 욕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에 반박하기가 애매하다. 감정적으로 받아치면 오히려 내가 예민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더 나쁜 건, 밤티가 뭔지 몰라서 묻는 순간 내가 직접 그 뜻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검색을 하든, 누군가에게 묻든. 상처는 뒤늦게, 혼자 완성된다. 말한 사람은 그 자리에 없다. 이미 깔끔하게 빠져나갔다. 정확하지 않은 말이 오히려 더 정확하게 꽂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못생겼다는 직접적인 말은 방어가 된다. 밤티라는 애매한 말은 방어가 안 된다.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