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 인정하며 조훈현이 말했다… “바둑 본질은 인간의 수, 그게 더 중요”

조훈현 국수(國手)가 지난달 28일 '제1회 조훈현배 전국 학생바둑대회'가 열린 전남 영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 국수는 "인공지능(AI)을 인간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자신이 둔 수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등 바둑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한국기원 제공

[알파고 10년, 바둑 생존기]
<상> AI와의 공존
AI 이후 바둑, 수가 뻔해 재미 덜하지만
책임감 등 배우는 바둑 본질 변하지 않아
내 기록 깨는 후배들 보면 오히려 반가워
바둑 부흥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할 것”

수는 정확해졌고, 발전도 빨라졌다.

2016년 3월 9일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패배한 뒤, 바둑계가 무력감에 빠지는 대신 AI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다. 인간끼리 하던 대국, 복기, 연구는 이제 AI를 상대로 진행한다.

“바둑이 재미가 없어졌어요. AI가 가르쳐주는 수는 뻔하거든요. 특히 초반엔 비슷한 모양밖에 안 나와요.” 조훈현 국수(國手)는 한국일보와 만나 AI 이후 바둑에 대해 ‘재미가 없어졌다’고 평했다. 열 살 때 일본 기사 세고에 겐사쿠의 내제자(스승과 동거하며 직접 수련하는 제자)로 들어가 정상에 오른 뒤 아홉 살이던 이창호 9단을 집으로 들여 가르친 그로서는 자연스러운 평가일지 모른다. 바둑기사의 성향과 전략적 성격을 뜻하는 ‘기풍’에 별 차이가 없어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러나 그가 부정적으로 얘기했다고 해서 바둑의 미래를 비관한 것은 아니다. AI가 바둑의 양상을 바꾼 게 아쉽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믿고 있었다. “사람은 착각도 하고 실수도 하는데 AI는 그런 게 없어요. 인간과 달리 정답을 알고 있으니 끌려갈 수밖에 없죠.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다만 바둑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아요. 자신이 둔 수에 책임을 져야 하고, 이기는 기쁨과 지는 아픔을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정신을 구현하고 배우는 건 결국 인간 아니겠어요?”

그는 AI 출현 이후 인간이 설 자리를 넓혀야 한다는 데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듯했다. 다음은 지난달 28일 ‘제1회 조훈현배 전국 학생바둑대회’가 열린 전남 영암에서 진행한 조 국수와의 일문일답.

시각물=박종범 기자

시각물=박종범 기자

-본인 이름을 건 바둑대회를 열었다.

“학생들이 모여 있는 걸 보니 옛 생각이 났다. 바둑의 전성기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침체기라 할 수 있는데, 많은 아이들이 참가한 걸 보니 뿌듯하다. 바둑을 대체할 수 있는 문화, 오락이 많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바둑을 배우는 사람이 적어졌다. 다만 바둑이 나빠져서 이렇게 된 게 아니므로, 바둑이 다시 살아날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남 영암군 주최로 2월 28일과 3월 1일 양일간 열린 제1회 조훈현배 전국 학생바둑대회엔 400명이 참가했다. 영암은 조 국수의 고향이다.

-지난해 12월 유하준이 9세 6개월 12일에 입단하며 1962년 조 국수가 세운 최연소 입단 기록(9세 7개월 5일)을 깼다. 그간 세운 기록이 후배들에 의해 깨지는 걸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나.

“누군가 그랬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거라고. 기록이 깨진다는 건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것 아니겠나.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세운 기록이 깨지는 게 오히려 반갑다. 63년 만에 기록이 깨졌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늦게 깨진 것 같기도 하다.”

올해 1월 30일 조 국수는 지난해 12월 18일 프로에 입단한 유하준 초단과 대국해 281수 만에 백 2집 승을 거뒀다. 조 국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유 초단을 평가하면서도 “남들이 4~6시간 공부할 때 10시간, 20시간 공부해야 일류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AI를 활용해 수를 두고 분석하는 다른 프로 기사들과 달리 유 초단은 ‘AI를 쓰지 않는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훈현(왼쪽) 국수가 유하준 초단과 지난 1월 3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대국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하준이 9세 6개월 12일 나이로 입단하며 1962년 조 국수가 세운 최연소 입단 기록(9세 7개월

조훈현(왼쪽) 국수가 유하준 초단과 지난 1월 30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대국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하준이 9세 6개월 12일 나이로 입단하며 1962년 조 국수가 세운 최연소 입단 기록(9세 7개월 5일)을 깼다. 그간 세운 기록이 후배들에 의해 깨지는 데 대해 조 국수는 “기록이 깨진다는 건 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것 아니겠나.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세운 기록이 깨지는 게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알파고와의 대국 이후 10년이 흘렀다. AI가 없던 시절 바둑계를 평정한 전설로서, AI 이후 바둑을 어떻게 평가하나.

“처음 AI가 나왔을 땐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는데, 대단한 착각이었다. 발전 속도도 무시무시하다. 인간이 AI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기는 게임을 하려면 AI한테 배울 수밖에 없다. 나도 AI를 활용하곤 한다. ‘나보다 확실히 세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바둑밖에 몰랐던 10대, 20대 시절 AI가 있었다면 아마 밤새도록 붙잡고 있었을 거다. AI 의존도가 커지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 속에서 인간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고 바둑의 미래를 그려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예전엔 스승을 만나는 게 어려웠는데 지금은 AI가 상대를 해주기 때문에 바둑이 세계적으로 더 확산할 길이 열린 측면도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현재 바둑 세계 랭킹을 보면, 신진서 9단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중국 바둑에 밀렸던 한국 바둑이 부활한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세계 랭킹 상위권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중국과 비교하는 건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 바둑, 어떻게 평가하나.

“잘하는 선수들이 두껍게 있어야 하는데, 신진서 혼자 중국을 상대로 싸우는 것 같아 걱정이다. 중국은 1위만 못하고 있을 뿐, 2~5위 선수들 기량이 엇비슷하게 좋다. 신진서를 이을 후배들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 바둑이 부흥하려면 국가 차원에서 밀어줘야 한다. 좋은 선수가 자라날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와 달리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바둑에 엄청난 힘을 실어준다. 바둑 성적만 좋아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프로 기사에 대한) 대우도 상당히 좋다. 그러니 잘하는 친구들이 계속 바둑계로 모인다. 국민들도 우리 바둑을 더 응원해주면 좋겠다.”

실제로 신진서 9단은 본보 인터뷰에서 “1등으로서의 부담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신 9단은 2018년 3분기부터 프로바둑 세계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조 국수는 자신도 최정상에 있을 때 엄청난 불안을 느꼈다고 했다. “자리를 빼앗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에 항상 쫓긴다. 누가 끌어내리든 스스로 망가지든 언젠가는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데, 내려가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다. 매일 불안감을 느끼고 그걸 이겨내면서 매일을 살아가는 거다.”

조훈현 국수(國手)가 지난달 28일 '제1회 조훈현배 전국 학생바둑대회'가 열린 전남 영암실내체육관에 세워진 자신의 등신대와 악수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조훈현 국수(國手)가 지난달 28일 ‘제1회 조훈현배 전국 학생바둑대회’가 열린 전남 영암실내체육관에 세워진 자신의 등신대와 악수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유 초단과의 대국, 조 국수와 이창호 9단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 ‘승부’ 등 여러 이벤트를 만드는 건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 바둑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것인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겠지’ 하면서 기다려서는 절대 관심을 받을 수 없다. 예전엔 바둑만 잘하면 사람들이 호응해줬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바둑계에서 자꾸 일을 만들고 알려야 한다. 스타플레이어도 많이 나오는 게 좋다. 이제 승부사로서 조훈현은 끝났으니 경기를 통해 뭔가를 보여줄 순 없다. 그렇지만 바둑계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둑을 하면 뭐가 좋은가.

“참 좋은 게 많은 스포츠다. 마음이 가라앉고 두뇌도 발달한다. 생각하는 힘도 기를 수 있다. 책임감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으뜸이다. 내가 둔 수들이 결국 승리와 패배를 가져오지 않나. 내가 행동한 것(수)에 따르는 결과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게 정말 중요한 가르침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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