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오르는데 삶은 더 팍팍해졌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와 렌트비, 소득세율 등으로 인해 남가주 도시들의 구매력이 전국 꼴찌 수준이다. 주민들이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다. [로이터]

‘물가의 덫’에 갇힌 가계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연봉 18%, 물가는 21%↑ 주거비·식료품·보험료 등

 

최근 몇 년간 심각할 정도로 지속된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가계의 재정상황이 매우 팍팍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 대다수가 월급은 올랐지만,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4일 온라인 이력서 서비스 기업 ‘마이퍼펙트리쥬메’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미국인의 삶은 지표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실질적인 삶의 궤적은 오히려 퇴보했다.

노동통계국(BLS)의 데이터 정밀 분석한 결과, 지난 4년간 미국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약 6만 4,000달러에서 7만5,600달러로 18%라는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숫자만 본다면 가히 ‘황금기’라 할 법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탐욕스러운 인플레이션은 21%라는 파괴적인 속도로 질주하며 임금 상승분을 집어삼켰다.

결과적으로 미국인들의 실질 소득은 약 2.6% 감소한 셈이다. 커리어 코치 재스민 에스칼레라는 “사람들이 서류상으로 연봉 인상을 선물로 받았지만, 현실에서는 냉혹한 임금 삭감을 당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역별 격차는 분명했다. 전체 50개 주 가운데 41개 주에서는 구매력이 감소했지만, 아이다호·플로리다·워싱턴·몬태나·와이오밍 등 9개 주에서는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을 웃돌며 실질적인 생활 수준 개선이 나타났다. 특히 아이다호는 구매력이 3.1% 증가해 가장 높은 개선 폭을 기록했다. 플로리다(+2.6%), 워싱턴(+2.3%) 역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물가와 고용 환경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유타주는 물가와 임금이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며 기존 생활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뉴저지(-7.0%), 로드아일랜드(-6.9%), 메릴랜드(-5.4%), 매사추세츠와 뉴욕(-5.3%) 등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고임금 지역으로 분류되는 이들 주에서도 주거비와 세금, 보험료 상승이 임금 인상의 효과를 상쇄한 것이다. 실제로 연방준비제도(FRB·연준)에 따르면 같은 기간 주요 대도시의 평균 임대료는 25% 이상 상승해 가계 지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특히 주거비, 식료품, 에너지, 보험료,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 지출의 상당 부분을 잠식했다. 연방 농무부(USDA)는 식료품 가격이 4년간 누적 기준으로 두 자릿수 이상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많은 근로자들이 이직이나 경력 이동보다는 ‘현 직장 유지’를 선택하며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경향도 뚜렷해졌다.

최근 발표된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특히 서비스 물가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기업들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월급을 올리고, 이렇게 늘어난 인건비 부담이 다시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따. 에스칼레라는 “높은 연봉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2020년대 중반에 접어든 노동자들은 더 많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재정적 자유는 줄어든 상태”라고 평가했다.

한 경제 전문가는 “현재 미국 경제는 ‘명목상의 호황’과 ‘실질적인 침체’가 공존하는 기묘한 불균형의 상태에 놓여 있다”며 “과거에는 고액 연봉이 부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생활 비용 통제력’이 개인의 경제적 계급을 결정하는 척도가 됐다. 결국 인플레이션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가장 많이 버는 자가 아니라, 물가 상승의 파고로부터 자신의 구매력을 가장 견고하게 방어해낸 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홍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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