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민트’ 류승완 감독의 원픽배우 박정민스토리
류승완 감독은 영화 ‘밀수’(2023)를 만든 후 아쉬움이 남았다. 배우 김혜수와 염정아를 투톱으로 내세운 이 영화 속에서 남자배우 조인성과 박정민은 상대적으로 보조적인 인물이었다. 류 감독은 두 배우가 지닌 매력을 좀 더 부각시키고 싶었다. 그는 예전에 써놓은 시놉시스와 시나리오를 뒤진 끝에 두 남자가 주인공인 시놉시스를 하나 찾아냈다. 이야기 얼개를 고치고 시나리오를 써서 새 영화로 준비했다. 지난달 11일 개봉해 이달 5일까지 관객 188만 명을 모은 ‘휴민트’의 시작이었다. ‘휴민트’는 국가정보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과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의 다툼과 연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박정민은 류 감독과 유난히 인연이 깊다. 그는 류 감독이 아내 강혜정 대표와 함께 운영 중인 영화사 외유내강이 제작한 영화 5편에 출연했다. ‘사바하’와 ‘시동’(2019), ‘밀수’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2023), ‘휴민트’에 얼굴을 비쳤다. 박정민이 ‘류 감독과 강 대표의 아들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박정민과 류 감독의 인연은 44분짜리 ‘유령’(2014)으로 시작됐다. 전주국제영화제가 기획한 옴니버스 영화 ‘신촌좀비만화’(2014)에 포함된 중편영화였다.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 하고 살인을 하게 되는 청소년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박정민에게 ‘유령’은 의미가 남달랐다. 중편영화라고 하나 유명 감독이 연출한 영화의 주인공을 처음 맡아서다. 박정민이 출연 제의를 받고 외유내강 사무실을 찾아가 강 대표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은 “기쁩니다, 영광입니다”였다. 그는 “제가 진짜 배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류승완 감독은 ‘밀수'(2023)를 만들면서 박정민과 조인성을 앞세운 액션 영화를 연출하고 싶어 ‘휴민트’를 제작하게 됐다. NEW 제공
‘파수꾼’(2011)으로 공식 데뷔를 한 그는 독립영화 주연과 대중영화 조연 사이를 오가며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댄싱퀸’(2012)에서 중국집 배달원 뽀글이를 연기하며 시선을 끌었고, ‘전설의 주먹’(2013)에선 주인공 임덕규(황정민)의 고교시절을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박정민의 이름과 얼굴을 명확히 알리기에는 출연 시간이 짧았다. 류 감독과 박정민 등이 ‘유령’ 출연 확정 후 저녁식사를 하러 외유내강 사무실 인근 식당을 찾았을 때 중년여성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워한 건 배우가 아니라 류 감독이었다.
무기력에 빠진 젊은 배우

중편영화 ‘유령’은 박정민 연기 이력에서 큰 전환점이 됐던 작품이다.
‘신촌좀비만화’는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첫 상영되고 개봉까지 했으나 관객은 5,225명에 불과했다. 박정민으로서는 의미 있는 출연이었으나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는 어려운 흥행 성적이었다. 하지만 ‘유령’은 훗날 박정민의 연기 이력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게 된다. 개봉을 앞두고 영화계 인사들을 초청한 ‘신촌좀비만화’ VIP시사회에서 한 유명 감독이 ‘유령’을 보고선 박정민의 캐스팅을 염두에 두게 된 거다.
‘유령’ 이후 박정민은 ‘태양을 쏴라’와 ‘오피스’(2015)에 잇달아 출연했다. 흥행에서 별 재미를 못 본 영화들이었고, 박정민의 역할은 조연이었다.
박정민은 알 수 없는 무기력감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배우의 길에 처음 섰을 때는 원대한 꿈을 꿨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나 박정민은 성에 차지 않았다. 욕심이 컸기에 마음은 조금했다. 데뷔하고 4년이 지났으니 그럴 듯한 역할이 주어질 만도 한데 아직 그에게는 큰 기회가 오지 않았다. ‘배우로서 매력이 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배우로서의 삶이 이미 실패한 거 아닌가’라는 속단을 하게 됐다.
박정민은 어느 순간 엉뚱한 마음을 먹게 됐다. 몇 달을 고민한 끝에 연기를 그만 두고 멀리 떠나야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영국에서 공부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우선 어학연수를 할 만한 곳을 알아봤다. 어떤 전공을 하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전세금을 빼 일단 영국으로 건너가 영어 공부부터 하면 어떤 길이라도 열리지 않겠느냐는 것이 당시의 심정이었다.
유학을 알아보고 있을 때 소속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준익 감독이 영화 ‘동주’(2016) 출연 건으로 만나자 한다는 내용이었다. 박정민은 귀를 의심했다. 거짓말이거나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감독 사무실을 찾아가서는 안절부절 못했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들여다 본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