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 의료비 부담에 ‘휘청’… 3명 중 1명 “생활비 줄여”

척 슈머 연방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연방의회에서 건강보험 위기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로이터]

▶ “식비등 줄여 의료비 충당 8,200만 달해” 갤럽 조사

▶ 건강보험 있어도 영향받아 “경제·사회 구조적 위기”

미국에서 의료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천만 명의 국민이 식비나 생활비를 줄이고, 심지어 주택 구입과 출산 같은 인생의 중요한 계획까지 미루는 등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웨스트헬스-갤럽 헬스케어 센터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약 3명 중 1명, 즉 약 8,200만여 명이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식사 횟수를 줄이거나 외출을 줄이는 등 일상생활에서 최소 한 가지 이상의 희생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미국 성인 약 2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조사에 따르면 의료비 부담은 이미 미국인의 일상생활을 크게 바꾸고 있다. 응답자의 15%는 최근 1년 사이 의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돈을 빌렸다고 답했고, 11%는 식사를 거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일부 응답자는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운전을 줄이거나, 전기·가스 등 공과금 사용을 최소화하고, 처방약을 정해진 용량보다 오래 나눠 복용하는 방식으로 의료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보험이 없는 응답자의 62%가 의료비 때문에 생활비를 줄이는 희생을 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32%는 돈을 빌렸고, 24%는 약 복용량을 늘려 쓰거나 미룬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험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약 30%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웨스트헬스 정책센터의 팀 래시 센터장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의료비 문제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비 부담은 단순한 생활비 문제를 넘어 미국인들의 장기적인 인생 계획까지 흔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의 별도 조사에 따르면 의료비 때문에 지난 몇 년 사이 주요 인생 결정을 미룬 경험이 있는 미국인이 상당수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18%는 직장을 바꾸는 계획을 미뤘고 ▲14%는 주택 구입을 연기했으며 ▲9%는 은퇴를 미뤘고 ▲6%는 출산이나 입양 계획을 연기했다.

전문가들은 의료비 문제가 단순히 건강 문제를 넘어 미국 경제와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웨스트헬스-갤럽 연구 책임자인 댄 메이시는 “사람들이 의료비 때문에 일자리, 집, 삶의 방식 같은 중대한 결정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이 문제는 더 이상 일부 저소득층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료비 부담은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과 고소득층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생활비를 줄였다고 답한 비율은 연소득 2만4,000달러 미만 가구에서 55%, 2만4,000~4만8,000달러 가구에서 47%에 달했지만, 9만~12만 달러 사이 가구에서도 25%나 됐고, 24만 달러 이상 고소득 가구에서도 11%가 나왔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연소득 18만~24만 달러 가구의 34%, 24만 달러 이상 가구의 25%가 의료비 때문에 인생 계획을 미뤘다고 답했다. 즉 의료비 부담이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계층에 걸친 ‘시스템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향후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높다고 경고한다. 갤럽은 ▲일부 오바마케어(ACA) 보험 보조금 종료 ▲메디케이드 가입 축소 가능성 ▲보험료 상승과 본인 부담 의료비 증가 등이 겹치면서 수백만 명이 보험을 잃거나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의료비 부담이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문제라고 강조한다.

웨스트헬스-갤럽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의료비 부담은 단순한 의료 문제를 넘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일하고, 미래를 계획하는지까지 결정짓는 중요한 경제·사회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한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의료비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며 근본적인 의료개혁이 없으면 상황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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