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대도시를 무법지대로 만들고, 공화당은 미국을 전 세계의 혐오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요즘 LA와 남가주에서 만나는 한인들의 정치 대화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런 말이 돌아온다. 어느 쪽도 완전히 틀렸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이 과장과 분노의 뒤에는 ‘정치’ 자체보다 ‘정당’에 대한 깊은 피로감이 쌓여 있다.
문제는 이 감정의 정치를, 워싱턴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당은 예산과 안보, 이민·치안 같은 민생 현안까지 인질로 잡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면 정부 셧다운과 디폴트 위기까지도 카드로 올린다.
남가주 영주권·비자 갱신에 신경 곤두세운 한인들, 물가와 렌트 뛰어올라 하루하루가 팍팍해진 서민들의 삶은 정치 게임판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정당은 더 강해지는 듯한데, 정작 나라와 지역 경제는 조금씩 지쳐간다.
도시 범죄와 치안을 둘러싼 인식도 마찬가지다. 한인타운과 LA 도심의 범죄 뉴스가 연달아 보도될 때마다 “민주당이 장악한 대도시는 끝났다”는 말이 쉽게 나온다.
반대로, 공화당이 전면에 나설 때면 “치안을 빌미로 소수자와 이민자만 더 몰아붙인다”는 불만도 커진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어느 당 시장이냐에 따라 도시 범죄율이 일관되게 갈린다고 말하기 어렵다.
결국 “누가 더 무능하냐”의 싸움이 아니라, 어떤 공공 안전 정책과 사회 안전망이 현장에서 실제로 효과를 내느냐가 핵심이어야 한다.
경제와 미국의 대외이미지도 당파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사회주의 실험이 경제를 망친다”고, 공화당이 집권하면 “동맹이 무너지고 미국의 신뢰가 바닥난다”고 서로 고발한다.
그러나 남가주의 자영업자, 직장인, 유학생·유학생 부모 입장에서 중요한 건 이념 싸움이 아니다.
내 월급과 매출이 실제로 늘어나는지, 물가는 잡히는지, 아이들이 안전한 학교와 지역에서 자랄 수 있는지, 미국 여권과 비자가 전 세계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신뢰를 갖고 있는지다.
정치권이 극단적인 법안과 독한 언어로 서로를 공격할수록, 양당은 스스로를 “국가를 책임지는 세력”으로 보이게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를 붙잡고 같이 침몰하는 세력”처럼 보일 뿐이다. 민주당은 공화당을 향해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를 해체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하고, 공화당은 민주당을 “엘리트 카르텔”이라고 몰아붙인다.
그 사이에서 LA와 남가주의 한인들은 언제까지 “차악”만 골라야 하는지, 투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출구는 거창한 이념에서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상대 진영을 “악”으로 규정하는 정치를 그대 로 따라가는 대신, 우리 삶의 언어로 정치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민주당이 도시를 망친다”, “공화당이 나라를 망친다”는 구호 대신, “어떤 치안·이민·경제·교육 정책이 남가주 한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나아지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후보와 정당을 볼 때도 “우리 편이냐”보다 “내 세금과 안전, 내 자녀의 미래를 어떻게 다룰 사람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일요일 아침, 엘에이 한인타운 식당의 TV에서는 여전히 양당 정치인의 자극적인 설전이 쏟아진다.
누가 누구를 향해 어떤 모욕적인 말을 던졌는지, 어떤 법안을 인질 삼아 또 어떤 위기를 벼랑 끝으로 몰았는지 자막이 요란하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기다려야 할 뉴스는 어쩌면 이런 문장일지 모른다.
“오늘, 양당이 합의하에 국민과 지역사회의 일상을 위해 한 발씩 양보했다.”
그런 날이 더 이상 ‘특집 기사’가 아니라 ‘평범한 속보’가 되는 순간, 비로소 미국 정치는 극단의 시대를 통과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