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으려 할 때 비로소 얻는다’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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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환자를 처음 만나면 나는 몇 가지를 묻는다. 몇 시에 눕는지, 실제로 잠드는 건 몇 시쯤인지, 새벽에 깨는지. 그렇게 수면 패턴을 파악한 뒤 이렇게 말한다. “새벽 한 시 전에는 절대 눕지 마세요. 누워 있는 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이겠습니다.”

수면제한법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실제 수면 시간에 맞게 압축하는 치료다. 여덟 시간을 누워 네 시간을 뒤척이던 사람에게, 처음엔 가혹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자려고 침대를 사수하는 행위 자체가 수면을 방해한다. 역설이다.

뇌는 부정어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 “북극곰을 생각하지 마라”는 명령을 들으면, 당신의 머릿속엔 이미 흰 곰이 어슬렁거린다. 심리학자 다니엘 베그너가 실험으로 증명한 ‘아이러니 과정 이론’이다. 억누르려는 생각이 오히려 더 강하게 의식에 밀려든다. 잠을 쫓아가면 잠은 달아난다. 뇌는 목표를 이미지로 번역하는데, “자야 한다”는 명령 뒤에 따라붙는 이미지는 언제나 뒤척이는 자신의 모습이다.

골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저 해저드만은 피해야지” 하는 순간, 공은 귀신처럼 물 속으로 빨려든다. 신체는 부정의 언어가 아닌 이미지를 따라 움직인다. 뇌가 그리는 그림이 곧 목적지가 된다. 프로 선수들이 위기의 순간 “왼쪽으로 보내지 말자”가 아니라 “페어웨이 오른쪽”을 떠올리도록 훈련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지프 헬러의 소설 『캐치-22』는 이 역설의 구조를 문학으로 빚어낸 걸작이다. 전투 비행을 면제받으려면 정신이상을 증명해야 하는데, 면제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신이 멀쩡하다는 증거가 된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갇히는 구조. 인생의 많은 국면이 꼭 그렇게 생겼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첫 번째 규칙은 유명하다.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말 것.” 그 규칙은 파이트 클럽을 영원히 말하게 만든다. 금지는 욕망을 소멸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욕망에 불을 지핀다. 도스토옙스키도 일찍이 간파했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른 뒤 들키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자신도 모르게 자백을 향해 걸어간다. 숨기려는 의지가 폭로를 향한 무의식적 충동과 충돌하며 인물을 파국으로 이끈다.

창조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억지로 좋은 문장을 쥐어짜려 할 때 원고는 굳어버린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flow)’의 상태, 즉 최고의 집중과 창조는 오히려 의식적 노력을 내려놓을 때 찾아온다. 음악가도, 운동선수도 마찬가지다. 경기에서 지지 않으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는 순간, 몸은 굳고 실수가 시작된다. 잘하려는 의지가 오히려 잘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역설은 삶의 도처에 숨어 있다. 행복을 직접 겨냥할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사랑받으려 애쓸수록 사람들은 떠난다. 잠들려 발버둥칠수록 눈은 더 또렷이 떠진다.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고백했다. 행복에 대해 묻기를 멈추고 다른 것들에 몰두했을 때, 비로소 행복이 찾아왔다고. 동양의 지혜도 다르지 않다. 노자는 일찍이 무위(無爲)를 말했다. 억지로 하려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이루어진다는 것. 수천 년 전의 통찰이 수면 클리닉 진료실에서도 유효하다. 역설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이 구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지혜로운 전략은 목표를 비스듬히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고, 살짝 비껴가는 것. 자려 하지 말고 그냥 누워 있을 것. 해저드가 아닌 그린을 볼 것. 잡으려 쥔 손을 슬며시 펴는 것.

역설적이게도, 놓아주는 순간 비로소 얻게 된다.

김석재 삼성스마트김석재신경과 대표원장·’조종당하는 인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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