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탄생과 사망 이야기

FILE PHOTO: The CBS Broadcast Center in New York City, U.S. December 22, 2025. REUTERS/Kylie Cooper/File Photo

19세기 말 미국에는 2만개가 넘는 신문이 있었다. 그러나 이중 대부분은 주간지나 월간지였고 일간지는 2천여개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절대 다수가 동네 신문이었고 주 경계선을 넘어 배달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뉴스가 전해지는 속도도, 신문이 배달되는 속도도 느리고 경비도 비쌌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이를 바꿔놓는 대사건이 발생했다. 라디오의 발명이 그것이다. 라디오는 라틴어로 바퀴축과 테를 연결하는 ‘살’을 뜻하는 ‘radius’에서 왔다. 발신기에서 신호가 바퀴살처럼 퍼져나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선이 필요없이 공간을 뚫고 이동하는 전자기파의 존재를 처음 예측한 것은 ‘현대 전자기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맥스웰이다. 1886년 하인리히 헤르츠가 그 존재를 입증했고 이런 이론적 토대를 발판으로 1895년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1km 떨어진 곳까지 무선으로 신호를 보내는데 성공했다.

마르코니도 ‘라디오의 아버지’로 불리기는 하지만 그가 만든 것은 라디오라기보다는 무선으로 신호를 보내는 전보에 가까웠다. 무선 전파를 통해 신호가 아니라 ‘진폭 조정’(amplitude modulation) 방식을 통해 음성과 음악을 보내는 진정한 라디오를 만든 사람은 캐나다 출신 레지널드 페슨덴이다.

그러나 이 라디오는 음질이 너무 떨어져 대중화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리 디 포리스트가 ‘오디온’이라 불리는 ‘3극 진공관’(triode vacuum tube)을 발명해 음질을 확기적으로 개선하면서부터 진정한 라디오의 시대가 열렸다. 1930년대 에드윈 암스트롱이 ‘진폭 조정’대신 ‘주파수 조정’(frequency modulation) 기법을 통해 보다 깨끗하고 날씨나 주변 장애물의 영향을 덜 받는 FM 방송을 시작하면서 라디오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라디오의 포텐셜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으로 마르코니 회사에서 일하던 데이빗 사노프다. 그는 1919년 RCA 창립 때부터 매니저로 일하다 사장과 회장을 거쳐 1969년 은퇴할 때까지 이 회사를 최대 라디오 제조 회사로 키워놨다.

1926년 최초의 전국 네트웍을 갖춘 라디오 방송 NBC를 탄생시킨 것도 그다. NBC의 독과점 지위가 너무 커지자 정부의 분할 명령으로 ‘레드’와 ‘블루’ 둘로 쪼개지며 ‘블루’는ABC 방송으로 변신한다.

사노프에 못지 않게 라디오의 가능성을 꿰뚫어 본 사람이 있었다. 역시 러시아 출신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빌 페일리다. 시가 장사를 하던 아버지 가업을 물려받을 예정이던 그는 1925년 아버지와 삼촌이 출장 간 사이 당시 생소한 매체이던 라디오에 50달러를 주고 프로그램 후원 광고를 냈다.

삼촌이 돌아와 왜 쓸데 없는 짓을 했느냐고 꾸짓는 바람에 중단했지만 고객들 항의가 빗발치고 라디오 광고 직후 매출이 급증한 사실을 발견한다. 광고는 다시 시작됐고 페일리는 라디오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페일리는 아버지로부터 40만 달러를 받아 신생 방송국인 CBS를 인수한다.

그는 당시 방송사가 프로그램을 제작해 제휴사에게 파는 방식을 버리고 공짜로 나눠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당연히 제휴사들이 몰려 들었고 시청자수는 늘어났다. 시청자수가 늘어나면서 광고비는 증가했고 이렇게 번 돈을 다시 프로그램 제작에 투자했다. 이런 선순환이 계속되면서 CBS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져갔다.

그는 경영 능력뿐 아니라 청취자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원하며 누가 이를 맡을 재능이 있는지 알아보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 대표 사례가 제2차 대전 직전 유럽 특파원으로 에드워드 머로우를 발탁한 일이다. 머로우는 런던에서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미국민들에게 전하며 신문 기자 전체는 물론 정치인들보다 큰 영향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CBS의 모회사인 패러마운트 스카이댄스는 최근 월 5월말로 99년간 진행해온 방송을 중단하고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CBS의 폐업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청취자들이 유튜브와 소셜 미디어로 이동하면서 광고가 급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수입이 줄면서 프로그램과 인력이 축소되고 이로 인해 청취자가 떨어져 나가고 다시 광고 수입이 주는 악순환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CBS는 2016년 이미 소유하고 있던 117개 방송국을 팔아치운바 있다. 미국인들의 93%는 아직 출퇴근하며 라디오를 듣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것으로는 대세를 되돌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라디오는 세상을 바꿨지만 이 분야 개척자들의 인생은 순탄하지 못했다. 디 포레스트는 한때 큰 돈을 벌었으나 특허권 분쟁으로 3번 망하고 네 번 결혼했다 결국 거의 빈털털이로 사망했고 암스트롱은 소송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RCA 또한 사노프 사후 아들이 악수를 거듭하다 결국 문을 닫았다.

CBS 라디오의 폐업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고 있지만 그 주원인이 된 스마트폰도 결국 라디오 기술에 발판을 둔 것이다. 인간 세상에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끼게 된다.

[한국일보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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