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한국] “값 오르고 물건은 없다”… 전쟁 유탄 맞은 소상공인들 이중고

1일 서울 중구 방산시장 일명 비니루 골목이 한산하다. 골목 한쪽 점포에는 비닐과 포장 자재가 듬성듬성 쌓여 있다.

나프타 대란, 비니루 시장 도매상까지 덮쳐
도매상에 물건 파는 공장들도 상황 마찬가지
가격은 천정부지… 그마저도 원료·제품 없어
“석화사가 전쟁 나자 물량 걸어 잠가” 비판도

“가격도 물량도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1일 서울 중구 방산시장 ‘비니루 골목’은 한산했다. 가게 선반에는 테이프, 지퍼백 등 일부 품목만 듬성듬성 남아 있었고 매일 골목을 가득 메웠다는 비닐 롤은 보이지 않았다. 특수 비닐을 취급하는 박정범(51)씨는 “오늘부터 공급받는 가격이 20% 이상 올랐다”며 “공장에서 2주 뒤 상황을 보고 또 인상폭을 정할 것 같다”고 한탄했다.

비닐 제품 가격이 급등하고 물량 확보까지 어려워지면서 소상공인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한 나프타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에 상인들의 속은 하루하루 타들어간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전쟁을 핑계로 가격을 올린다는 성토도 높아지고 있다.

중동 전쟁 충격파에 신음하는 ‘비니루 골목’

비니루 골목 상인이 내민 제품 가격 인상 안내문에 원료 수급 불안으로 4월 1일부터 인상된 가격으로 출고하고, 기계 가동을 축소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전예현 기자

비니루 골목 상인이 내민 제품 가격 인상 안내문에 원료 수급 불안으로 4월 1일부터 인상된 가격으로 출고하고, 기계 가동을 축소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전예현 기자

30년 이상 비니루 골목을 지킨 강대민(66)씨는 “가격 올린다는 공문이 매일 온다”며 제조업체가 보낸 가격 인상 안내문을 보여줬다. 전쟁 전보다 40% 이상 뛴 가격이 찍혀 있었다. 강씨는 “지난달 중순부터는 아예 물량이 들어오지 않아 손님을 돌려보내는 일이 허다하다”며 “IMF도 버텼는데 셔터를 내릴까 처음으로 고민 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공장과 개별 업체가 비축해 둔 재고로 버텼지만 최근 들어 이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더 문제는 물량이 언제 들어올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포장용 비닐을 납품하는 김태수(66)씨는 “발주한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배급받듯이 기다리고 있다”며 “거래처에는 ‘늦어질 것 같다’는 말밖에 못 한다”고 토로했다. 김영수(73)씨도 “물량이 없다 보니 오래 거래한 곳 위주로 납품하고, 일부 거래처는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주문과 출고 시점 사이 가격이 달라지는 구조도 부담을 키운다. 발주 이후 납기까지 한 달 이상을 기다리는 동안 원료 가격이 계속 뛰기 때문이다. 비니루 골목 25년 차 박창규(58)씨는 “3월에 15%, 이달에 20%, 5월도 20% 이상 오를 것 같은데 전달 주문까지 오른 가격으로 계산되니까 도매업체 마진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혀를 찼다.

공장도 공급 부족, 가격 폭등에 골머리… “갑자기 재고 없다? 말도 안 돼”

1일 나프타분해설비(NCC)가 몰려 있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수=뉴시스

1일 나프타분해설비(NCC)가 몰려 있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여수=뉴시스

도매상에 물건을 납품하는 공장들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대형 석유화학 기업들이 나프타로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 원료를 만들면 이를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게 이들의 역할인데, 석화사의 공급 물량이 줄고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격이 인상돼서다.

현장에서는 “석화사들이 전쟁을 이유로 원료 공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올린다”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A석화사가 대리점에 보낸 공문을 보면 2월에 톤당 5만 원씩 올렸던 PP·PE 공급가를 지난달 3일에는 톤당 20만 원씩 올렸다. 전쟁 발발 사흘 뒤다. 이달 들어서도 벌써 수십만 원을 더 올렸다. 전쟁 전 톤당 130만 원 수준이던 가격은 현재 220만~230만 원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3월부터 계획된 판매량 이외 판매는 없으며, 추가 주문 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했다.

한 소상공인은 “2월만 해도 야적장에 물건을 쌓아 둬야 할 정도로 재고가 많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전쟁이 나자마자 재고가 없다며 공급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료를 공급하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전쟁 여파를 선반영해 움직였다는 주장이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파악 중이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원료 공급 조절 문제 제기가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불확실성이 커지니 유화사에 구매 요청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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