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선거운동 시작도 전에, 선거사무소 건물 외벽 덮은 ‘초대형’ 현수막
같은 건물 입주 상인들, 지역 정치인 ‘눈치’ 보여 항의도 못 해
“개수, 크기 등 가이드라인 필요하나, 국회서 입법할지 미지수”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상가 건물에 더불어민주당 마포구청장 예비후보의 대형 현수막을 설치돼있다. 해당 건물에 선거사무소는 한 층에 불과하지만, 건물 외벽 전체가 세 장의 대형 현수막으로 덮여 있다. 최주연 기자
지난 7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한 사거리는 ‘동작을’ 지역구에 출마하는 후보들 얼굴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 거대한 크기로 펄럭이고 있었다. 선거사무소는 한 층에 불과한데 현수막은 위아래층 가게 창문까지 통째로 집어삼킨 모양새다. 애먼 다른 층 점포 창문 위에 현수막을 설치한 얌체 사례도 왕왕 눈에 띄었다. 인근 주민과 상인들은 “유독 올해 더 (현수막 경쟁이) 심해진 것 같다”며 “전쟁으로 자원을 줄이자고 하면서 이럴 땐 안 아낀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공직선거법 개정 이후 처음 맞이하는 지방선거에 ‘선거사무소 현수막’이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길거리에 게시되는 일반 정당 현수막은 2024년 초 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읍·면·동별 2개 이내’ 등의 제한이 생겼지만, 선거법의 영향을 받는 선거사무소 외벽 현수막은 현재 개수나 크기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다.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후보의 선거사무실이 위치한 복도에서 후보의 현수막이 보인다. 최주연 기자

1일 서울시내에 대형 현수막을 설치한 선거사무소로 인해 사무실이 어두워져있다. 최주연 기자

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선거사무실이 위치한 빌딩에 후보의 현수막이 다른 층 복도 창을 가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후보자들은 “상가 소유주나 임차인들과 사전 협의를 거치기 때문에 법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상인들은 생업에 방해가 되어 내키지 않으면서도, 이른바 ‘지역 정치인’에게 미운털이 박힐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마포구의 한 미용업체 관계자는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건물 입구에 손바닥만 한 배너 하나 세우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데, 정치인들은 설치를 기정사실로 해놓고 뒤늦게 찾아와 통보하듯 말한다”며 “가게가 있는 건물 전체가 특정 정당 소유처럼 보여 속상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초대형 현수막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이다. 용산구의 한 요양병원 사무실은 건물 외벽을 덮은 현수막 탓에 환한 대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침침한 환경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동작구의 한 빌라에서는 베란다 창문 쪽 현수막 일부를 구멍 뚫듯 오려내 합의점을 찾았으나, 사생활 보호가 필수적인 주거지에 외부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

1일 서울 관악구의 한 빌라에 설치된 한 후보의 선거 현수막이 가정집 발코니 면적 만큼 잘려있다. 최주연 기자

1일 마포구의 한 예비후보 사무소 1층에 예비후보와 특정 당 대표가 함께 촬영한 사진이 게시돼있다. 최주연 기자
일정 기준 내에서 선거비를 세금으로 돌려주는 ‘선거비 보전 제도’가 사실상 후보자들의 대형 옥외광고판을 짓는 데 쓰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선거사무소 관계자는 “비계 설치 비용으로만 300만 원이 들었다”며 사무소 본연의 목적보다 사실상 옥외광고 홍보 효과를 노리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더 큰 문제는 현수막의 내용이다. 본 목적인 선거사무소 안내나 후보의 정책 소개보다는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 과시’에 치중된 모습이었다. 실제로 건물 3, 4층을 뒤덮은 한 대형 현수막에는 특정 당대표와 나란히 서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매일 해당 교차로로 출퇴근한다는 직장인 김모(34)씨는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고, 그저 ‘내가 누구랑 친하다’고 확성기로 외치는 것 같아 피로감만 든다”고 말했다.

1일 서울 동작구의 한 선거사무소가 비계설치를 해서 예비 후보의 현수막을 설치해놓았다. 현수막은 예비후보의 공약 보다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1일 서울 동작구의 한 예비후보 선거사무실에 대형 선거현수막이 비계를 이용해 설치돼있다. 최주연 기자
전문가들은 현재의 현수막 난립 사태가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꼼수’라고 입을 모은다. 후보들이 ‘사무소 안내’라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건물 전체를 도배하는 초대형 옥외광고를 통한 사전 선거운동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거사무소 외벽 현수막에 대해서도 조속히 합리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건물 외벽 면적의 일정 비율을 초과하지 못하게 규격을 제한하거나, 사무소당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 개수에 상한선을 두는 등 구체적인 선거법 보완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형 현수막의 홍보 효과를 무시할 순 없지만, 과도한 크기와 비용은 오히려 유권자들의 반감을 살 우려가 있다”며 “개수와 크기 등의 기준을 손볼 필요가 있으나 실제 국회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1일 서울 시내 건물 내부에서 바라본 선거현수막 사진 세 장을 콜라주 기법으로 이어붙였다. 최주연 기자
최주연 기자 (juicy@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