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 권하는 사회 [정숙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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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함께 와인을 마셔온 친구들이 있다. 6명 모두 와인에 진심이어서 준비에 늘 심혈을 기울이곤 한다. 매번 다른 샴페인, 화이트, 레드와인을 맛있게 즐기면서 음식과도 두루 어울리도록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부담이 크게 줄었다. 전에는 만날 때마다 3~4병을 준비했는데, 요즘은 끽해야 1.5병이면 되기 때문이다. 반병짜리(375ml) 샴페인 하나에 레드와인 한 병이면 모두 됐다고들 한다. 이유는 이제 우리도 나이 들었기 때문, 전처럼 많이 당기지도 않고, 내키는 대로 마셨다가는 몸이 편치 않다. 슬프지만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아주 보편적이어서 와인산업 쇠락의 한 원인이라는 보도가 최근 많이 나온다. 미국의 와인 붐을 주도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 은퇴기에 접어들면서 와인 소비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후의 X세대, M세대, Z세대가 그 공백을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지난해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술을 마시는 비율은 54%, 이는 1939년 이래 역대 최저율이다.

전통과 이름값을 중시했던 베이비부머들이 과시적으로 고급 와인을 소비한 데 비해, 실용성과 개인취향을 중시하는 X와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적 시선보다 자신에게 맞는 술을 찾아 선택적으로 소비하고, Z세대는 아예 저알코올이나 무알코올 음료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게다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에 따른 절약모드, 술이 건강에 안 좋다는 계속되는 경고, 그리고 요즘 사용이 크게 늘고 있는 오젬픽, 위고비 등 GLP-1 약물이 술에 대한 욕구까지 줄이는 효과가 입증되자 주류업계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미국 와인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 와인업계가 받는 타격은 시름 이상이다. 와인협회(Wine Institute)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미국와인 수출액은 8억 500만 달러로, 한해전보다 35%나 감소했다. 불경기와 건강 이슈 외에도 관세와 무역긴장, 포도 과잉공급 사태 등이 한꺼번에 덮쳐 ‘퍼펙 스톰’을 일으키고 있다고 업계는 전한다.

치명타는 관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유럽 와인에 20%의 관세를 부과했고, 얼마 안 있어 15%로 낮췄지만 프랑스에게는 200% 인상을 위협하는 등, 시장의 혼란과 적대감, 불안정성을 증폭시켰다.

특히 캐나다는 관세협박과 함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망언으로 미국와인 불매운동이 벌어져 무려 3억6,000만 달러의 수익이 증발했다.

관세는 또한 와인병, 오크통, 코르크 마개 가격의 상승을 불러와 전체 와인의 생산비용을 증가시켰다. 많은 미국 생산자들이 프랑스에서 오크통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에서 병을,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코르크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양조 장비를 수입하는데, 관세가 이 모든 제품의 가격을 올려놓은 것이다.

여기에 포도 과잉공급 사태는 불난 집에 부채질 효과를 불러왔다. 요즘 미국의 대형 와인회사들은 캘리포니아 포도만을 사용하지 않고, 칠레와 호주 등지에서 값싼 벌크와인을 수입하여 슬그머니 미국 와인과 블렌딩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 가을 캘리포니아의 많은 포도농장들이 포도를 수확하지 않고 밭에 버려두기에 이르렀다. 수확비용이 시장 가격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러니 양조회사들이 직원들을 해고하고 생산 시설을 폐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지난달 세계최대 와인 생산업체 갤로 와인(Gallo Wines)과 수십개 와이너리를 소유한 콘스텔레이션 브랜드(Constellation Brands)는 대규모 해고와 양조시설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켄달-잭슨 샤도네로 유명한 미국 6위 규모의 잭슨 패밀리 와인도 4월 중 여러 와이너리를 폐쇄하고 직원들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흐름은 연쇄적으로 요식업계의 부진을 몰고 온다. 일반적으로 식당의 매출은 40% 음식에서, 60%는 주류 판매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주류 판매가 감소하면서 음식과 주류 비율이 50대 50이 되었고, 갈수록 내려가 70대 30까지 이르자 폐업해버리는 식당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이런 현상의 영향은 막대하다. 특히 대학가 주점들은 억지로 술을 먹이는 회식이나 집단 문화가 사라져 매출이 반토막 났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인의 웰빙과 건강이 중요한 요즘 20대들 사이에는 단체로 폭음하고 주정하고 다음날 숙취로 시달리는 술 권하는 문화는 촌스러운 구시대의 유물이며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부어라 마셔라’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시대는 지났다. Z세대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특별한 술이나 와인, 또는 무알코올 음료를 선택해 음미하는 시간을 즐긴다. 요즘 마켓이나 와인샵에 가면 넌알코올 음료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금주까지는 아니어도 음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베이비부머로서 한 시대를 사는 동안, 와인이란 신의 선물, 미각의 예술을 향유했던 시간들이 그립고 감사하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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