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란, 무기한 휴전… 종전 불발에 화약고 된 중동

트럼프, “협상 종결까지” 일방 선언
폭격 한계… 봉쇄·제재로 전략 전환
‘호르무즈 일촉즉발’ 속 장기전 수순

당초 2주간이었던 미국과 이란 간 휴전이 길어질 전망이다. 협상 교착으로 종전이 불발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한 설정 없이 휴전 연장을 선언하면서다. 미국의 폭격이 멈췄고 이란의 선공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당장 긴장 수위는 낮아졌다. 그러나 양측이 대치할 호르무즈해협이 전쟁 재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종전을 원치 않는 이스라엘도 변수다. 중동이 일촉즉발 화약고로 변해 가는 형국이다.

분열된 이란 정권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오후 4시 9분(미국 동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란과의 휴전을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란 지도부와 대표단이 통일된 제안을 내놓을 때까지 이란에 대한 공격을 보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서다.

시한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의 제안이 제출되고 논의(협상)가 어느 쪽으로든 마무리될 때까지 휴전을 연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종전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전쟁을 중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무기한 휴전인 셈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외교에 또 다른 합의 도출 기회를 제공했다. 전쟁 재개와 대규모 역내 확전도 막았다”고 평가했다.

정황상으로는 일방적인 통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장 명분으로 “이란 정부가 짐작대로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는 사실과 파키스탄 측 아심 무니르 군 총사령관 및 셰바즈 샤리프 총리의 요청”을 거론했다. 파키스탄은 협상 중재국이다. 이란과 합의했다는 언급은 없다. 실제 이란 국영방송(IRIB)은 트럼프 대통령 발표 직후 이란이 미국의 휴전 연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연장 결정은 자신이 제시한 휴전 기간 만료를 하루 앞두고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차 평화(종전) 협상을 위해 파키스탄에 가려던 JD 밴스 미 부통령의 출장 일정이 이란의 응답 거부로 연기된 직후였다”고 전했다. 휴전 기간 중 미국과 이란은 11,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한 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전향도 극적이었다. 이날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경제 전문 CNBC방송에 이란이 미국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폭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막판 방향을 틀었다. 발표 직전 백악관 안보 회의에서 참모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 정부는 통합된 세력이 아니며 이란 내 강경파들이 미국 대통령 요구에 굴복할 의사가 없다는 취지로 보고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자금 압박의 효과

전혀 뜻밖의 결정은 아니다. 폭격이 한계를 드러낸 터였다. 탄약 소모가 극심했다. 유럽과 인도·태평양 동맹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칠 판이었다. 이란이 반격하리라는 것도 분명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항공우주군 사령관 마지드 무사비는 걸프(페르시아만) 연안 주변국의 산유 시설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동 역내 석유 생산과 작별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이란 반관영 메흐르통신이 이날 전했다. 걸프 산유 시설이 망가지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가뜩이나 치솟은 유가가 오래갈 수밖에 없다. 미국 내 기름값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이기고도 선거에서 질 위기다. 이날 협상 무산 가능성이 커지자 유가가 급등하고 주가는 내려갔다. AP통신과 미국 시카고대 여론조사센터(NORC)는 트럼프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지난달 조사 때보다 5%포인트 빠져 지난해 초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뒤 가장 낮은 33%까지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를 이날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 연장 방침을 밝힌 것은 장 마감 직후였다.

21일 대중 집회가 열린 이란 테헤란 도심 엥겔랍 광장에서 한 참가자가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란은 이날 ‘코람샤흐르-4’ 미사일을 공개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전 기간을 연장했다. 테헤란=UPI 연

21일 대중 집회가 열린 이란 테헤란 도심 엥겔랍 광장에서 한 참가자가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란은 이날 ‘코람샤흐르-4’ 미사일을 공개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전 기간을 연장했다. 테헤란=UPI 연합뉴스

미국은 전략을 전환할 참이다. 군사 공격보다 더 효과적인 압박 수단을 찾았다. 대(對)이란 해상 봉쇄다. WSJ는 “첫 협상이 결렬된 지 24시간 만에 발효된 봉쇄 조치는 호르무즈해협 장악으로 이란이 갖게 된 우위를 약화시켰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을 연장하면서도 해상 봉쇄는 유지하겠다고 천명한 배경이다. 이란 협상단 대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의 안보보좌관인 마흐디 모하마디는 이날 엑스(X)에 “해상 봉쇄 지속은 폭격과 다를 바 없다”고 적었다.

미국이 봉쇄로 거두려는 효과는 원유 수출 차단을 통한 이란 정권 수입원 단절이다. 봉쇄와 제재가 수단인 ‘경제적 분노(Economic Fury)’ 작전으로 군사 작전 ‘장대한 분노(Epic Fury)’를 보완하거나 대체한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 구상이다. 이렇게 압력을 가하다 이란이 제안을 내놓으면 협상할지 공습할지를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날 X에 “경제적 분노 작전을 통해 테헤란의 자금 창출, 이동 및 송금 능력을 체계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라고 썼다.

미국은 기한 없는 휴전 연장이 무기한 공습 중단으로 비칠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트럼프 행정부 소식통은 액시오스에 “대통령은 이란이 내부 정리를 하도록 3~5일 정도 휴전을 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란 측 단일안을 마냥 기다리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아슬아슬한 휴전

휴전은 아슬아슬하다. IRGC와 연계된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미국의 해상 봉쇄가 풀리지 않는 한 호르무즈해협을 개방하지 않을 것임은 물론 필요할 경우 봉쇄를 무력으로 해제할 것이라는 이란군 입장을 정했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뿐만 아니라 다른 해상에서도 제재 대상 이란 선박을 나포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전쟁을 역내 적대 세력 소탕 기회로 여기며 휴전이 깨지기만을 바라는 이스라엘도 친이란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다시 싸우려 채비 중이다. 이날 양측은 서로 상대방이 휴전 합의를 어기고 로켓과 무인기(드론)를 날렸다며 무력 공방을 벌였다.

협상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우발적 충돌과 확전 개연성 속에 휴전이 길어지는 것은 장기전으로 가는 수순이다. 봉쇄는 양측 모두 포기하기 힘든 협상 지렛대다. 우라늄 농축 중단 기간이나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처리 등 이란 핵무기 개발 잠재력 관련 쟁점도 입장 차를 좁히기 어렵다. 막판 휴전 연장으로 미국이 가진 폭격 카드의 위력이 약해진 만큼 이란이 전향적으로 나오면 타결점이 찾아질 수도 있다. 재건 비용 마련과 경제 회복을 위해 이란은 반드시 제재 완화 목표를 관철해야 하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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