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우리만 지키나?’… 만든 법도 안 지키는 LA 시의회의 이율배반

자기들이 만든 법을 자기들이 막는다

LA 시의회는 2021년 시 자치법규(LAMC) 41.18조를 개정해 학교·공원·탁아소·노숙자 쉼터 반경 500~1,000피트 안에서 텐트 설치와 노숙을 금지했다.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Wikipedia).

문제는 이 법이 만들어진 방식이다. 적용하려면 시의원 본인이 자기 지역구에 ‘집행 구역’을 지정해 시의회 결의안으로 통과시켜야 한다 (Traci Park 시의원실).

법은 만들어 놓고, 실제 집행 여부는 각 시의원의 ‘재량’에 맡긴 것이다.

결과는 어땠나. 2024년 11월 LA 노숙자 서비스국(LAHSA) 보고서는 41.18이 “전반적으로 비효과적”이며 “텐트 정리와 주거 진입이라는 두 핵심 목표 모두에서 실패했다”고 결론 냈다.

정리된 노숙자 중 영구 주거를 확보한 비율은 16.9%에 불과했다 (LAist).

더 충격적인 것은 시의회가 이 보고서를 8개월 동안 공개하지 않고 묻어뒀다는 사실이다. 만장일치로 보고서를 의뢰해 놓고, 결과가 자신들에게 불리하자 서랍 속에 넣어 둔 것이다 (LAist).

법적 장벽도 사라졌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2024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은 그랜츠패스 판결에서 “쉼터가 부족해도 도시가 노숙 야영을 단속·벌금·체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LA시가 41.18을 집행하지 못하게 막던 법적 장벽이 사실상 사라졌다 (CalMatters).

그럼에도 LA 시의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5지구 케이티 야로슬라브스키 시의원은 41.18 집행 구역을 단 한 곳도 지정하지 않았다 (LA Times).

13지구 우고 소토-마르티네스 시의원은 아예 “41.18은 완전한 실패작”이라며 공개적으로 집행에 반대한다 (LAist).

반면 인근 도시들의 행보는 다르다. 비벌리힐스는 비영리단체와 협약을 맺어 쉼터 침대를 확보한 뒤 자기 도시에서 적극적으로 단속한다.

샌디에이고도 2024년부터 학교·쉼터·환승역 인근 야영을 강력 단속하면서 도심 노숙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CalMatters). LA만 법을 만들어 놓고 집행을 거부한다.

월드컵·올림픽이 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서 LA 시정부의 이율배반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6년 FIFA 월드컵이 6월 11일 멕시코에서 개막해 7월 19일 미국에서 결승전이 열린다. LA의 소파이 스타디움(SoFi Stadium)은 8경기를 개최한다.

이어 2028년 LA 하계올림픽이 다가온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시청자와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LA로 몰려올 행사다.

질문은 단순하다. 그때가 되면 41.18은 “비효과적”이고 “사람들을 블록에서 블록으로 밀어낼 뿐”인 법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

답은 누구나 안다. 카메라가 켜지는 순간, 시의원들이 그토록 반대하던 텐트 정리와 야영 단속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도심 거리, 경기장 주변, 공항 동선, 관광지 인근에서 노숙자 야영지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 “인도주의적 이유”로 집행을 거부하는 시의원들도 그때는 침묵할 것이다. 어쩌면 앞장서서 단속 결의안에 손을 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율배반이다.

평소에는 한인타운 자영업자가 매일 가게 앞 텐트와 마주하고, 학부모가 학교 가는 길의 야영지를 우회해 아이를 등교시켜도 집행을 거부한다.

그러나 외부 시선이 쏠리는 국제 행사가 다가오면 “보여주기식 단속”이 시작된다.

노숙자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집행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지역구민의 일상보다 외부 카메라가 더 무겁기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의 진짜 의미

LA 시의원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는 단어가 있다. ‘의회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 그러나 의회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법을 만들고, 만든 법을 책임지고 집행하는 것이다.

법을 만든 의원들이 평소에는 집행을 거부하다가, 국제 행사가 오면 강제하는 행태는 의회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이율배반이고, 시민에 대한 기만이다.

진정으로 41.18이 실패작이라고 믿는다면 절차는 분명하다.

시의회 동료들을 설득해 법을 폐지하거나, 더 효과적인 대안을 입법화하면 된다.

그러나 현재 시의회는 법은 그대로 둔 채 집행만 회피한다. 그러다 월드컵·올림픽이 오면 그제야 강제할 것이다. 이것은 신념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계산이다.

균형의 시각

물론 41.18 집행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 텐트를 치우는 것만으로 노숙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쉼터 침대 확보, 정신질환·중독 치료 연계, 영구 주거 공급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LAHSA 자료가 이미 입증한다.

그러나 그것은 “집행을 거부할 이유”가 아니라 “집행과 병행해 보완해야 할 정책”의 근거다.

비벌리힐스와 샌디에이고는 그 병행을 해내고 있다. LA 시의원들은 둘 다 안 하고 있다.

월드컵까지 약 13개월, 올림픽까지 약 27개월 남았다. 그때까지 LA 시정부가 평소 시민의 일상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법을 집행할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끝내 외부 행사용 ‘보여주기식 단속’으로 일관할지 — 그 답이 곧 LA 의회민주주의의 진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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