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검게 탄 아파트 7개 동 그대로… 홍콩 최악 화재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의 아파트들이 검게 그을린 채 자리 잡고 있다. 왕푹코트는 지난해 11월 대형 화재가 발생해 168명이 사망한 곳이다. 진상 규명을 위해 지난해 12월 조직된 독립위원회는 화재 원인 및 불씨를 키운 요인을 종합적으로 조사 중이다. 홍콩=신은별 기자

화재 참사 5개월 뒤 다시 찾은 ‘왕푹코트’
봉쇄된 단지 “짐 챙기려” 이재민 제한 개방
위험 자재, 관리 부실… 곪은 문제들 드러나
“실수와 잘못 직시해야 더 안전한 사회 가능”

“노 엔트리(No Entry·출입 금지), 노 엔트리.”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 경찰이 단지 주변을 서성이던 기자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이곳은 지난해 11월 26일 홍콩 역사상 최악의 화재가 발생한 곳으로 사망자만 168명에 달했다. 대규모 보수 공사 중 발생한 화재로 아파트 8개 동 가운데 7곳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전 세계가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애도했다.

지난해 11월 26일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불은 43시간여 만에 겨우 꺼졌다. 홍콩=신화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6일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가 불길에 휩싸여 있다. 불은 43시간여 만에 겨우 꺼졌다. 홍콩=신화 연합뉴스

완전 봉쇄된 단지… 그 안엔 검게 탄 건물들

지난달 17일 5개월 만에 찾은 화재 현장은 여전히 참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31층짜리 고층 아파트들은 참사의 아픔을 간직한 듯 까맣게 탄 채 속을 드러낸 상태로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단지 주변은 각종 벽과 울타리로 완전 봉쇄됐다. 곳곳에 ‘위험 지역 출입 금지’ 안내가 붙었다. 주변은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이따금 차량이 울타리 너머로 들어가자, ‘누가 입장하는 거냐’고 물었다. 경찰은 “용건이 있는 사람만 신분 확인 뒤 입장 가능하다”고 말했다.

‘쾅푹 공원’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SKH 위안첸 마운첸 초등학교’로 향하는 스쿨버스가 봉쇄 구역 안으로 향하는 주된 차량이었다. 오후 2시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스쿨버스를 탈 때 잠시 왁자지껄할 뿐, 왕푹코트 주변엔 이내 다시 적막이 흘렀다. 인근에서 인도 식당을 운영하는 한 남성은 “울음이 가득했던 사고 직후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나은 편”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지난달 17일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가 봉쇄된 가운데, 신분 확인 등을 거친 차량이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다. 홍콩=신은별 기자

지난달 17일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가 봉쇄된 가운데, 신분 확인 등을 거친 차량이 검문소를 통과하고 있다. 홍콩=신은별 기자

집 잃은 주민들, 소지품 찾으러… 유품 챙겼다

참사로 집을 잃은 4,500여 명의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정부가 마련한 임시 주택 등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는 왕푹코트 부지 매입 등을 통해 보상안을 마련할 예정인데, 결론이 날 때까지 불안정한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재민들은 지난달 20일부터 한시적으로 개인 소지품 확인 및 취득을 목적으로 아파트 내부로 입장할 수 있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아파트 출입 가능 제한 시간은 약 3시간. 입순팅 카본(36)은 잿더미 속에서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에게 선물한 팔찌와 브로치를 가장 먼저 챙겼다. 옆 동에 살던 입의 어머니는 화재 때 사망했다. 지난달 20~29일 열흘 동안 1,062가구, 3,859명의 주민들이 소지품을 찾아갔다.

왕푹코트에 거주했던 도르즈 청이 지난달 21일 화재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자신의 집 내부를 촬영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26일 화재가 발생한 뒤 약 5개월 만에 주민들이 소지품 등을 챙길 수 있도

왕푹코트에 거주했던 도르즈 청이 지난달 21일 화재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자신의 집 내부를 촬영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26일 화재가 발생한 뒤 약 5개월 만에 주민들이 소지품 등을 챙길 수 있도록 집을 제한적으로 개방했다. 지난달 20~29일, 10일 동안 4, 500명가량의 이재민 중 3,859명이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홍콩=도르즈 청 제공, 로이터

“명확한 조사 결과 나오길”… 비극 ‘현재진행형’

참사는 왕푹코트라는 한 아파트 단지의 비극에 그치지 않았다. 독립위원회 조사와 공개 청문을 거치며 홍콩의 노후 아파트 보수공사, 안전 관리, 감독 체계 전반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발화 원인으로는 공사 현장 주변에서 버려진 담배꽁초가 종이상자 등 가연물에 불을 붙였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꺼져 있던 화재경보기, 차단된 소방 호스와 소화전, 방염 성능이 부족한 비계망, 계단과 복도 쪽 창문 제거로 인한 연기 확산, 막혀버린 피난 경로 등 켜켜이 쌓인 문제들이 불씨를 키웠다. 위험한 공사 자재를 교체해달라는 주민들 요구가 묵살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위원회 측 변호인은 “거의 모든 화재 안전 시스템이 인적 요인으로 인해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했다. 대규모 보수 공사 결정과 진행 과정에서 담합 및 부패가 의심되는 정황도 불거지고 있다.

왕푹코트를 덮쳤던 불은 43시간 만에 꺼졌다. 그러나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질문은 여전히 타오르는 중이다. 홍콩 사회는 구조적 실패와 책임 소재에 대한 객관적 답을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은 과거의 실수와 잘못을 직시해야 도시가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홍콩 시민 알렉스 막은 기자에게 “비극적 사건에 대해 명확하고 포괄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할 뿐”이라고 말했다. 위원회의 최종 조사 결과 보고서는 올해 9월쯤 나올 전망이다.

지난달 17일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 내 건물들이 지난해 11월 26일 발생한 화재로 인해 까맣게 타 있다. 화재 원인 및 화재를 키운 요인을 지난해 12월 구성된 독립위원회가 조사 중인 가운데

지난달 17일 홍콩 북부 타이포의 아파트 단지 ‘왕푹코트’ 내 건물들이 지난해 11월 26일 발생한 화재로 인해 까맣게 타 있다. 화재 원인 및 화재를 키운 요인을 지난해 12월 구성된 독립위원회가 조사 중인 가운데, 참사는 안전 관리 및 감독 부실 등 인재라는 점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홍콩=신은별 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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