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560원으로 급등…외환위기 수준 근접
美 새 관세, 전쟁 장기화…외인 120조 ‘팔자’
미국 물가 뛰고 고용은 안정…구윤철 효과 ‘0’
올 금리인상 확률 71%…달러 ‘썰물’ 가능성
개방경제라 변동성 최고…스페이스X도 악재
최근 중동 전쟁 장기화, 원유 구입 비용 증가, 한국 증시 외국인투자가 이탈, 대기업 달러 축적 등의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여기에 고용은 안정적이고 물가만 오르는 미국이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고개를 들며,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약 30년 만에 1600원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다음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방대법원에서 무효화된 상호관세를 대체할 새 관세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대미 투자에 대한 추가 요구를 내놓을지도 환율의 중대 변수다. 원·달러 환율이 지나치게 빠르게 오를 경우 한국의 수입 물가가 급등하게 돼 한국은행까지 3년 만에 금리 인상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이 통화긴축을 시도하면 반도체 등 그간 급등했던 업종을 중심으로 양국 증시도 상당 부분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UPI연합뉴스
6·3 지방선거가 막 끝난 지난 4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돌연 급등세를 연출했다. 2009년 3월 10일 이후 17년 만에 개장 초반부터 1530원을 넘더니 이후 쉽게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원·달러 환율이 장중 1530원을 넘긴 것은 올 3월 31일 이후 처음이었다.
이날 원·달러 환율 급등에는 2일(현지 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새 관세 계획 발표가 촉진제가 됐다. USTR은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거래를 막지 못한 60개 경제권에서 들어온 수입품에 다음달께 10%나 1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의 도입과 효과적 집행에 모두 실패한 54개 경제권 그룹에 포함되면서 12.5% 관세 부과 대상이 됐다. 10%가 아니라 12.5%를 부과받는 그룹에는 한국을 비롯해 호주, 브라질, 중국, 일본, 러시아, 영국, 베트남 등이 들어갔다. 캐나다, 에콰도르,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멕시코, 파키스탄 등 6개 경제권만 10% 관세를 적용받는다.
USTR은 올 3월 11일부터 중국, EU, 한국, 일본,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대만, 방글라데시, 멕시코, 인도 등 16개 경제 주체를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펼치고 있다. 2월 20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와 펜타닐 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하자 이를 대체할 수익원을 마련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 행동 등에 맞서 행정부에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준다. USTR은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과 관련된 별도 301조 조사도 3월 12일 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담과 달리 미국과 이란이 종전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무력을 다시 행사하기 시작한 점도 환율에 악재가 됐다. 또 중동 불확실성에 국제 유가가 연일 오르면서 한국의 수입 물가 부담이 증가한 점도 환율에 반영됐다. 원·달러 환율 1개월물은 서울외환시장이 개장하기 전인 3일, 역외시장인 뉴욕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이미 1533원 위에서 거래를 마쳤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4일 구두 개입까지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구 부총리는 4일 오전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시장상황점검회의를 갖고 “환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과도한 쏠림에 즉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이탈하는 상황은 이제 외환시장의 고질적인 위험 요인이 됐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달 7일부터 이달 5일까지 무려 20거래일 연속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이 기간 누적 순매도 규모만 약 81조 2389억 원에 달한다. 기간을 올 들어 이달 5일까지로 확장하면 그 규모는 119조 517억 원까지 늘어난다. 5일에는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브로드컴 효과로 증시에서 외국인이 한 차례 또 이탈하며 외환시장을 흔들었다. 브로드컴은 3일 뉴욕 증시 마감 뒤 실적을 공표하면서 연간 인공지능(AI) 반도체 매출 전망을 상향하지 않았다. 이 소식에 5일 코스피지수는 삼성전자(005930)(-6.40%), SK하이닉스(000660)(-9.92%) 등 반도체주를 필두로 5.54% 급락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연합뉴스
관세, 전쟁, 물가, 외국인 이탈 등 악재가 연이어 쏟아지자 원·달러 환율은 4일 야간거래에서 곧바로 장중 1540원까지 넘겼다. 지난달 15일 이후 13거래일 연속 1500원대에 머물며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 말∼1998년 3월 초 49거래일 연속 이후 최장 기록을 세웠다. 중동 전쟁 발발 직후였던 올 3월 26일∼4월 7일 9거래일,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 24일∼3월 10일 11거래일 기록은 이미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은 5일 주간 거래에서도 1539.1원에 거래를 마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인천국제공항 은행 환전 창구의 달러 현찰 매입 환율은 심지어 16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구 부총리는 전날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 이날도 비상경제본부회의에서 “최근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민생물가가 어려운 점에 대해 각별히 경각심을 갖고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 발언 이후 외환시장이 진정되긴커녕 환율은 더 올라갔다.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야간거래에서는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6일 오전 2시 서울외환시장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1559.0원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는 1561.5원까지 치솟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6일(1597.0원) 이후 17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이 올라갔다.
기름을 부은 것은 미국의 5월 비농업 고용지표였다. 이날 미국 노동부는 5월 비농업 부문 고용이 4월보다 17만 2000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 8만 명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노동부는 3월과 4월 일자리 증가 폭도 각각 2만 9000명, 6만 4000명 높여 잡았다. 3∼4월 합산 상향 조정 폭만 9만 3000명에 달했다. 5월 실업률은 4.3%를 기록해 4월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했다.
전쟁통에도 미국의 고용 상황이 너무나 안정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금융시장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5일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1.3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2.65%), 나스닥종합지수(-4.18%)는 위험자산 회피 심리 확산으로 일제히 떨어졌다. 엔비디아(-5.96%), 브로드컴(-7.76%), 마이크론(-12.87%) 등 최근 상승폭이 컸던 반도체주가 특히 직격탄을 맞았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도 10.26% 폭락했다.
가상화폐 시가총액 1위 종목인 비트코인 가격은 장중 한때 6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가상화폐에 우호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24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지난해 10월 6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 12만 6210달러에 비하면 8개월 만에 52.7%가 하락했다. 가상화폐 매집 기업인 스트래티지가 최근 비트코인을 매각한 데다 가상화폐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자금이 유출된 영향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뉴욕증권거래소(NYSE). UPI연합뉴스
외환시장이 떠안게 된 더 큰 문제는 고용지표의 선방으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통화긴축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달러화 표시 자산의 수익률이 올라가면 원화 표시 자산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현재도 양국 기준금리는 미국 3.50~3.75%, 한국 2.50%로 역전된 상태다. 물가 급등에 놀란 미국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 푼 유동성을 급하게 회수하는 과정에서 한미 금리가 뒤집어졌다.
월가에서는 특히 양호한 고용지표가 최근 잇따르면서 연준이 당분간 노동시장 활성화보다는 물가 안정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5월 고용보고서와 별개로 미국 고용 정보 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도 3일 보고서에서 5월 민간 고용이 4월보다 12만 2000명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전망치였던 11만 7000명보다 많은 수치였다. 고용정보 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 또한 4일 보고서에서 올 1∼5월 미국 전체 고용주들의 감원 발표 규모가 지난해 동기보다 7% 감소했다고 집계했다. 연준은 3일 발간한 6월 경기동향 보고서(베이지북)에서 “고용 분야의 경우 대부분 지역에서 ‘저채용·저해고’ 기조가 이어졌다”며 “제조업 분야에서는 채용이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고용과 달리 연준이 통화정책 준거로 삼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4월 들어 전년 동기 대비 3.8% 올라 2023년 5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가격지수의 상승률도 3.3%로 2023년 10월 이후 가장 높았다. 연준이 정책 목표로 삼는 물가 상승률은 2.0%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주택담보대출과 우량 회사채의 준거 지표가 되는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5일 심리적 저항선인 5.0%를 장중 다시 돌파했다. 글로벌 채권 시장의 추종 지표(벤치마크)인 10년물 금리 역시 심리적 저항선인 4.5%를 넘어섰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0.12%포인트 뛴 4.17%까지 장중 치솟아 지난해 2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올 연말까지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확률을 총 71.1%로 반영했다. 이는 전날 50.5%에서 크게 오른 수준이다. 금리 동결 확률은 47.4%에서 27.9%로, 금리 인하 확률은 2.2%에서 1.0%로 각각 떨어졌다. 지난달 22일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업고 이례적으로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취임했지만,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관철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취임식에서 케빈 워시(왼쪽) 신임 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UPI연합뉴스
달러 대비 통화 약세가 한국 원화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물론 아니다. 5일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인덱스(DXY)는 100.7을 기록해 4월 3일 이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100을 넘겼다. 달러인덱스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금본위제를 끝내고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던 1973년 3월의 달러 가치를 100으로 놓고 볼 때, 현재의 가치를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최근의 원화 가치 폭락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공유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원화 가치의 하락폭이 다른 통화보다 유독 큰 탓이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의 에너지 공급 구조상 국가 경제 자체가 중동 악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외 개방형 경제 특성이 너무나 뚜렷하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한국 시장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반도체 초호황에도 달러 강세를 예상한 대기업들이 시중에 미국 돈을 쉽게 풀지 않는 점도 원·달러 수급 불균형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나마 현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위기를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269억 9000만 달러(약 649조 원)로 4월 말보다 8억 8000만 달러 감소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4월 말 기준 4279억 달러로 3월에 이어 세계 12위 수준을 유지했다. 달러 보유액은 중국이 3조 4105억 달러로 가장 많고, 일본(1조 3830억 달러), 스위스(1조 823억 달러), 러시아(7587억 달러), 인도(6907억 달러), 대만(6025억 달러), 독일(5992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4948억 달러), 이탈리아(4561억 달러), 프랑스(4494억 달러), 홍콩(4421억 달러) 순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중동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준까지 돌연 금리를 올릴 경우 외국인의 투자 자산은 한층 더 급격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기만 해도 연 4~5%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굳이 변동성이 큰 한국 시장에서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어지는 까닭이다. 코스피시장에서 1500원짜리 주식의 가격이 33% 올라 2000원이 되더라도, 그 사이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서 2000원이 된다면 외국인이 인출하는 돈은 결국 같은 1달러에 그친다.
여기에 오는 12일로 예정된 미국 스페이스X와 하반기를 겨냥한 앤스로픽, 오픈AI의 기업공개(IPO)도 한국 외환시장에는 부담 요소가 될 전망이다. 상장과 동시에 시가총액 10대 기업이 될 수 있는 이들의 입성으로 뉴욕 증시에 대한 한국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경우, 달러 유출의 또 다른 경로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의 상단을 1600원 이상까지 열어두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600원을 넘어서면 이는 장중으로는 2009년 3월 2일(1613.0원) 이후 17년, 종가로는 1998년 3월 23일(1615.0원) 이후 2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된다. 이제 시장은 워시 의장이 처음으로 주재하는 오는 16∼17일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서울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