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률 1위 ‘폐암’ EGFR 변이 확인되면 표적항암제 투여
3세대 EGFR 표적항암제, 뇌전이 병변도 효과적으로 조절
전신 컨디션 저하된 고령 환자도 먹는 약만으로 안정적 관리
유한양행 ‘렉라자’ 무상 공급 통해 3년가까이 생존 이어가기도
EGFR 변이 폐암, 거점병원서도 수도권과 동일한 표준치료
“담배는 커녕 술 한잔도 못해요. 기침이 오래 간다 싶었는데 폐암이라니, 처음에는 억울하고 화도 났죠. ”
경남 창원에 사는 서경자(65·가명) 씨는 지난해 가을 기침, 가래와 함께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는 증상이 지속돼 병원을 찾았다. 흉부 엑스레이 촬영에서 폐암 의심 소견이 발견돼 창원경상국립대병원에 의뢰됐고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등 정밀 검사를 거쳐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폐에서 기원한 악성 종양은 크게 소세포폐암(small cell lung cancer)과 비소세포폐암(non-small cell lung cancer)으로 나뉜다. 비소세포폐암은 말 그대로 암세포의 크기가 작지 않은 유형으로, 전체 폐암의 약 80~85%를 차지한다. 폐암은 흡연자에게 생긴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비소세포폐암은 비흡연자에게도 나타난다. 여성 폐암 환자의 경우 87.8%는 흡연 경험이 없었다는 연구도 있다. 서씨의 경우 이미 암세포가 폐를 싸고 있는 흉막을 넘어 뇌로 퍼진 상태였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두통과 현기증이 뇌전이의 신호였던 것이다. 서울에 사는 아들 내외의 성화를 못 이겨 서울 대형병원에 갈까 고민도 해봤지만 고속철도(KTX)를 타고 왕복 6시간씩 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체념하던 서씨가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지역 병원 의료진의 진심어린 권유 덕분이다. 허이레 창원경상국립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폐는 물론 뇌전이 병변에도 잘 듣는 신약이 나왔고 건강보험도 적용된다”며 유전자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치료 가능한 돌연변이가 확인되면 부작용이 적은 표적항암제의 투여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검사 결과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 변이가 확인됐고 3세대 표적항암제 복용을 시작하기까지 열흘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의 이름난 병원을 택했다면 진료 예약을 잡기도 버거웠을 기간이다. 약을 복용한 지 2개월 만에 시행한 MRI 검사에서 뇌전이 병변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물론, 현기증·두통 등 신경학적 증상도 호전됐다. 허 교수는 “폐암은 종양 크기를 줄이는 것 못지않게 부작용 관리와 치료의 연속성이 중요하다”며 “EGFR 변이 폐암는 표준치료가 상당 부분 확립돼 있어, 지역 거점 병원에서도 서울의 대형병원과 동일한 치료 옵션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뇌전이를 동반한 폐암 4기 진단은 사망 선고나 다름 없었다.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폐암의 5년 생존율은 42.5%로 위암(78.5%)·대장암(75.6%) 등 주요 암보다 현저히 낮다. 초기 자각 증상이 없어 진단할 때 이미 3기 이상인 경우가 많고 재발과 전이가 잦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고령 환자 발생률은 16.3%로 전립선암(12.4%)·위암(11.6%)·대장암(11.4%) 등을 크게 웃돌고 있다. 암세포와 함께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세포독성 항암제는 전신 컨디션이 저하된 고령의 폐암 환자가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EGFR 변이를 타깃으로 한 표적항암제는 독성 반응을 크게 낮췄지만, ‘이레사, 타쎄바, 지오트립’ 등 소위 1~2세대 약물은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지 못해 뇌전이 병변을 억제하진 못했다. 폐에 생긴 종양도 초기엔 반응을 보이다가 약을 9~14개월가량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 암이 다시 진행되기 일쑤였다. 유한양행 ‘렉라자’ 같은 3세대 EGFR 표적항암제는 기존 1·2세대 약물과 달리 BBB 투과율이 우수해 뇌전이 병변에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거동이 힘든 고령 환자 입장에선 주사제가 아닌 알약 형태로 집에서 복용하며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다행히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EGFR 돌연변이 발생률이 약 40~55%로 백인(15~25%)에 비해 2~3배 높다. 3세대 EGFR 표적항암제가 폐암 치료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허만봉 교수는 “치료 가능한 표적 변이를 가진 폐암 환자 중 일부는 부작용만 잘 관리하면 만성질환처럼 병을 관리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한다”며 “장기간 치료를 이어나가려면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허만봉(왼쪽부터)·김태훈·허이레 창원경상국립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가 3세대 EGFR 표적항암제 도입 이후 폐암 치료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창원경상국립대병원
실제 창원경상국립대병원에는 2023년 하반기 유한양행의 무상 공급 프로그램을 통해 렉라자를 복용하기 시작한 환자들 중 상당수가 현재까지 약 3년간 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반면 원거리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환자들이 주말에 폐렴 등 갑작스러운 증상 악화로 창원경상국립대병원 응급실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무조건 수도권의 대형 병원을 찾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아닐 수 있으며, 치료 연속성 측면에서는 오히려 인근 거점병원이 더 안정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태훈 교수는 “렉라자와 이중항체 치료제 ‘리브리반트’를 함께 사용하는 병용요법이 임상 연구의 전체생존기간(Overall Survival) 측면에서는 매우 우수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EGFR 변이 폐암의 1차 치료 옵션이 크게 네 가지로 늘어났다”며 “개별 환자의 연령과 전신 상태, 동반질환, 종양 부담(Tumor Burden), 전이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 전략을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세대 표적항암제 복용 이후 발생한 내성을 리브리반트 병용요법 등으로 조절하는 전략도 최근 연구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며 “폐암 환자들이 절망하지 말고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