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더 묻고 싶은 것은 없습니까? [복길의 방송일기]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전직 특전사였던 나화진(김무열)은 '교권보호국'이라는 초월적 기관의 감독관이 되어 학교로 들어간다. 넷플릭스 제공
어떤 상황에서든 피해자의 편에 서는 것은 내 안의 무력감과 싸우는 일이고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지치고 힘든 일인지를 알기에 종종 그런 무력감을 떨쳐낼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다.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 피해자의 완전한 회복,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낙관. 현실을 넘어서는 완벽한 판타지를 원하는 것이다.

그 판타지를 충족하기 위해 가장 흔히 쓰이는 방식은 전능하며 정의로운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복수 대행 조직을 만들어 가해자에게 사적 응징을 하는 ‘모범택시’는 피해자의 상실에서 출발해 영웅적 응징으로 닫히는 서사, 실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에 반영하여 시청자의 공분을 카타르시스로 전환하는 장치로 사적 제재를 하나의 장르적 문법으로 안착시켰다.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바로 이 문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작품이다. 교사였던 약혼녀가 학생에게 살해당하자, 전직 특전사였던 나화진(김무열)은 ‘교권보호국’이라는 초월적 기관의 감독관이 되어 학교로 들어간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사적인 응징’이 교육 현장으로 옮겨지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해진다. 학교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품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홍종찬 감독의 전작 ‘소년심판’은 배경이 학교가 아니었음에도 어른이 소년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을 파고들었다. 소년부 판사 심은석(김혜수)은 소년범에게 자신의 자식을 잃은 피해자 유족이었으나, 작품은 그가 가진 분노와 원한을 복수의 동력으로 사용하지 않고, ‘판사’와 ‘어른’이라는 역할 앞에서 심은석이 마주하는 딜레마를 끝까지 추궁했다. 이는 소년의 범죄에 사회의 책임이 있었음을 질문하는 태도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교권보호국의 '돌+아이' 감독관 임한림(진기주)이 여고에 잠입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교권보호국의 ‘돌+아이’ 감독관 임한림(진기주)이 여고에 잠입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참교육’은 ‘소년심판’의 질문에 ‘소년범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라고 단호히 답변하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에게 호되게 폭행을 당하고도 아이들은 여전히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 작품이 이런 소년들의 모습을 집요하게 비추며 말하려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응징이다. 악인으로 규정된 이들의 서사는 다루지 않는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왜 폭력의 논리 안에서 살아가는지, 허위 미투를 자행한 학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응징을 당하면서도 선생을 향해 욕을 퍼붓는 아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응징을 당하며 느끼는 감정이 무서움인지 억울함인지. 작품은 그들에게 질문하지 않음으로 메시지를 대체한다.

2023년 한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이 ‘교권 붕괴’를 사회적 문제로 만들었고, 원작 웹툰인 ‘참교육’은 학교폭력 문제를 그 사건과 연결하여 풀어내는 판타지다. 소년범의 죄뿐만 아니라 소년범을 만드는 사회의 구조와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어른의 책임을 물었던 ‘소년심판’과 달리, ‘참교육’은 구조보다 개인에게 귀책을 집중시키고 모든 책임을 ‘체벌이 사라진 학교’라는 시스템에 전가하며 전작이 가지고 있던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퇴보시킨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흥미로운 것은 작품이 자신들이 받을 비판을 작품 속에 미리 심어,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한계를 변호한다는 점이다. 무분별한 체벌, 초법적 기관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빈번하게 등장시키며 동시에 그 경고를 무력화시키는 상황들을 만들어 ‘응징이 교육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응징 외에 다른 방식은 없다’는 현실을 강요한다. 이는 디스토피아를 묘사하여 디스토피아적 해결 방식을 수락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의 교권보호국 구성원들. 왼쪽부터 봉근대(표지훈), 임한림(진기주), 최강석 교육부 장관(이성민), 나화진(김무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의 교권보호국 구성원들. 왼쪽부터 봉근대(표지훈), 임한림(진기주), 최강석 교육부 장관(이성민), 나화진(김무열). 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이 모든 논쟁은 ‘참교육’을 처음부터 복수극으로 본다면 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참교육’은 교육자가 아닌 군인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교사였던 약혼녀를 학생에게 잃은 나화진은, 교육의 세계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그는 처음부터 교육을 논할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다. 가르침이 아니라 응징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에게 아이의 문제를 묻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드라마가 군인을 교육자의 자리에 세운 것부터 ‘교육’은 이미 포기된 것이다. 작품은 그 개인의 복수를 교권 붕괴라는 사회적 언어와 겹쳐놓고 복수와 정의를 분리하지 않는다. 개인의 분노가 공적 정당성을 입는 순간, 복수의 논리는 교육의 논리를 대체한다. 왜 저 아이가 저러는지 묻지 않는 것은 나화진의 한계가 아니다. 복수극의 문법이 교육의 문법을 밀어낸 결과다.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인간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문화비평가이자 교육자인 벨 훅스는 교육을 ‘자유의 실천’으로 정의하며, 가르침은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학생을 향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그러한 질문에 너무 빨리 회의를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의 답변을 듣기도 전에 응징이라는 카드를 꺼내 카타르시스를 원하고 있지는 않는가? 어쩌면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교육을 어떻게 믿지 못하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언제부터 학생에게 질문을 멈췄는지를 의도치 않게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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