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임시보호지위’ 이민자 추방 허용…130만명 쫓겨나나

미국 워싱턴 DC 연방대법원 청사 - 로이터 연합뉴스

NYT “아이티·시리아 임시보호지위자  추방될 수도”
WP “17개국 130만 명 판결에 영향”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임시보호지위(TPS)’ 이민자 수십만 명을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
TPS는 이민자들이 무력 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비상사태에 놓인 고국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미국이 1990년에 마련한 제도다. 18개월간 미국에 체류할 수 있고 갱신도 가능하다.

연방대법원은 25일 아이티·시리아 이민자들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임시보호지위 종료에 대해 대법원의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삼권분립 체계상 행정부의 TPS 종료 결정에 법원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가 정한 법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채 해당 조치를 취했다는 하급심의 법률 위반 판단을 뒤집었다.
이번 판결은 보수 대법관 6명의 찬성과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의 반대로 결정됐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대법원의 판결로 미국 내 아이티인 35만 명과 시리아인 6,000여 명이 추방될 수 있다고 전했다. 미 NBC방송은 지난해 3월 기준 17개국 출신 약 130만 명이 TPS 적용 대상이라며, 이날 판결에 이들이 이민법상 추방 대상으로 전환됐다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이번 판결로 베네수엘라, 온두라스, 아프가니스탄, 네팔 등 13개국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TPS 종료를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법적 장애물이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고 짚었다.

진보 성향의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대법원이 TPS의 적법 절차를 부인한 것은 물론, 정부의 인종차별 관행을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 보호 조항’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또, 아이티 출신 원고들이 제시한 증거 중엔 이민자들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포함돼 있었는데 “너무나 혐오스럽고 인종적 편견이 섞여 있어 다수의견조차 이를 판결문에 싣기를 거부했다”고 썼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박해 위험을 이유로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려는 이민자들을 트럼프 행정부가 물리적으로 막아 돌려보낼 수 있다는 판결도 내놨다.

앞서 2016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가 급증하자 이에 제한을 주는 이른바 ‘돌려보내기(turn-back)’ 정책을 실시했다. 관련 규정은 다음 정권인 조 바이든 미 행정부 때 사라졌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이 판결도 보수 대법관 6명의 찬성과 진보 대법관 3명의 반대로 이뤄졌다.

진보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이날 법정에서 “사람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의회가 제정한 시스템이 있음에도, 대법원이 박해를 피해 도망치는 모든 이들에게 문을 쾅 닫아버리려는 행정부의 결정을 지지했다”며 반대 의견 요지서를 낭독했다.

다수 의견을 작성한 보수 성향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반대 의견 낭독 계획을 몰랐다면서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고 WP는 전했다.

백악관은 대법원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대변인은 “엄청난 승리”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오랫동안 미국인을 괴롭혀온 이민 시스템의 지독한 남용을 합법적으로 종식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잔혹하고 비인간적 결정”이라며 “TPS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안전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트럼프와 대법원이 잔혹함과 혼란, 공포를 택했다”고 비난했다.

비영리단체 국제난민지원프로젝트(IRAP)의 후세인 엘바크리 수석 변호사는 “TPS 신분의 이민자들은 미국 내에서 가장 철저한 검증을 거친 합법적 이민자들”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가 자의적이며 보복성이 짙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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