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쓰고 읽을수록…당신은 생각을 잃는다 [북스&]

■읽지 않는 사람들 (나오미 배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자가 생긴 이후 ‘읽기’와 ‘쓰기’는 오랜 기간 특권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독점을 타파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의 한글 창제와 사용에서 알 수 있듯, 특히 읽기의 보편화를 위한 투쟁은 가열찼고 다행히 승리했다. 인간 인지 능력의 핵심 기둥인 읽기가 만인의 것이 되면서 인류는 지식의 민주화와 함께 사회적 평등이라는 근대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한 세대 만에 인간의 독창적인 ‘읽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면서다. 어느새 ‘AI 시대’가 되면서 자료 읽기를 AI에 맡기고, 글쓰기마저 AI가 대신하는 세상이 현실이 됐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방식에 기술이 어떻게 관여하는지 30년을 연구해온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 박사는 신간 ‘읽지 않는 사람들’에서 어느새 우리 일상 깊숙이 침투한 읽는 AI, 즉 ‘읽기 봇(Reader Bot)’이 인간의 읽기를 대체하고 있다고 하면서 “AI에게 읽기를 내어 주는 만큼 인간의 삶은 텅 비어갈 것”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묻는다. AI가 읽는 동안 인간은 무엇을 하는가, 혹은 무엇을 하지 않는가. 정보와 자극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혹자는 AI에게 읽기를 맡긴 다음 그만큼의 시간을 절약했다고 자축하며 더 열렬한 ‘인지적 구두쇠’가 되기를 바란다. 인지적 구두쇠란 정신적 노력을 최대한 아끼려는 인간의 본능을 가리킨다.

문제는 읽기 능력이 한 번 익혔다고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능력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배우지 않으면 생기지도 않는다. 매번 깊이 읽고 의미를 따지는 대신 AI가 내미는 가장 빠른 지름길과 그럴듯한 요약에 기대다 보면, 스스로 사고하는 인지 근육은 조용히 약해진다. 결국 표피적인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맥락 속에서 읽고 해석하는 능력, 즉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빠졌는지를 가려내는 힘을 잃어간다. 인지 빈곤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이 사피엔스 출현 이후 최초로 인간 지능이 퇴보할 위기의 시대, 이른바 ‘텍스트포칼립스(Textpocalypse)’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실제로 지능 퇴보의 시대는 현실화되고 있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및 성인 문해력 추산 데이터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성인의 절반은 문해력이 중학생에게 필요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 중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읽기와 쓰기조차 어려운 기능적 문맹 인구가 4300만 명에 이른다.

한편에선 인재 선발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흐름도 포착된다. 2024년 기준 미국 대학 입학처의 82%가 입학 전형에 AI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I가 대신 써 준 자기소개서를 또 다른 AI가 대신 읽고 평가하는 진풍경이 현실이 된 것이다. 과연 이 선발 과정이 공정하다는 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AI 생성 텍스트가 인간의 글을 질식시키고, 사람들이 기계와 인간의 글을 구분조차 하지 않게 되면 ‘기술을 지배하는 소수가 정신을 지배하는 정보 불평등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직접 읽고 사고해야 하는 이유다. 2만 2000원.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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