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말은 유창하고, 생각도 깊어 보이고, 자기 이야기를 꽤 잘 하는 것 같은데, 어딘가 어긋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 특징 중에서도 유독 뚜렷하게 나타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내 이슈가 남의 이슈인 줄 아는 경우 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투사(projection)’라고 부릅니다.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이나 욕구, 혹은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측면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던져버리는’ 방어기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내가 화가 나 있는데 ‘저 사람이 나한테 화가 나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죠.
내가 누군가를 불신하는데 ‘저 사람이 나를 의심하는 것 같다’고 읽히는 것입니다. 이 투사라는 방어기제는 꽤 정교하게 작동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틀린 것이 아니라, 절반쯤은 맞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의 태도나 말투에서 ‘발견’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나타납니다. 그저, 문제는 그 예리함이 자기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상대방을 읽는 데는 탁월한데, 정작 그 읽기가 자신의 내면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오래 대화하다 보면 묘한 피로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항상 ‘문제가 있는 타인’이 등장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예민한 동료, 이해받지 못하는 나, 자꾸 상처를 주는 관계. 그런데 그 ‘문제 있는 타인’의 묘사가 놀랍도록 말하는 사람을 닮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일관성의 부재입니다.
어제는 이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는데 오늘은 가장 실망스럽다고 합니다. 어제는 이 일이 천직이었는데 오늘은 그만두고 싶다고 말합니다.
어제는 확신에 차 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해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변합니다. 생각도 바뀌고 감정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외부 상황이 바뀐 것도 아니고,충분한 성찰의 시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바뀌었을 뿐이죠.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의 패턴을 알기 마련입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관계를 차갑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나는 피곤하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같은 자기 지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파도가 밀려올 때, 그것이 현실에 대한 판단인지 자신의 상태에 대한 반응인지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기를 잘 모르는 사람은 지금 느끼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바뀌면 진실도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주변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게 됩니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다르고, 지난주의 약속과 이번 주의 태도가 다르다면, 본인은 그때그때 진심이었겠지만 그 진심이 너무 자주 바뀌면, 신뢰라는 것은 서서히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내가 화가 났다’고 인정하는 것, ‘나도 그 나쁜 상황에서 역할이 있었다’고 받아들이는 것, ‘나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이 모든 것이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남을 탓하거나, 지금 느끼는 것만을 진실로 붙잡으면서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완성된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 ‘이 반응은 지금 상황 때문인가, 아니면 내 안의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습관처럼 스스로에게 던지는 사람만이, 결국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이 사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ssung0191@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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