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과학이 좋다는 젊은이들 “우리가 연구실 계속 지키는 이유”

고려대 양자대학원 이동헌 교수 연구실에 소속된 석사와 박사과정생들이 실험실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박상우씨 제공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박상우(26)씨는 올해 고려대 양자대학원에 입학했다. 그가 연구하는 ‘양자 센싱’은 자기장부터 진공 상태의 우주 현상까지, 인간의 눈이나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세계를 정밀 측정하는 분야다. 공학보다 ‘돈’이 덜 되는 기초과학 분야로, 걸음마 단계인 양자 학문 중에서도 비주류에 속한다.

그럼에도 박씨는 입학원서를 쓸 때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수억 원대 성과급을 보상받는 대기업이나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대 진학을 고민한 적도 전혀 없다.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함이 오히려 기대됩니다. 안정적인 분야는 아니지만 평생 연구해볼 가치는 있다고 보여요. 인류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조금이라도 확장해보고 싶거든요.”

고려대 양자대학원 소속 대학원생 박상우씨가 여러 렌즈와 거울, 다이아몬드에 레이저를 쏘고 여기에서 나오는 광반응을 측정해 원자핵의 양자역학적인 성질과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박상우씨 제공

고려대 양자대학원 소속 대학원생 박상우씨가 여러 렌즈와 거울, 다이아몬드에 레이저를 쏘고 여기에서 나오는 광반응을 측정해 원자핵의 양자역학적인 성질과 환경에 대한 정보를 얻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박상우씨 제공

한국일보는 한국 이공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가득한 가운데 묵묵히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젊은 과학 인재 10명을 만났다. 이들이 과학을 계속하는 원동력과 우리 사회가 왜 과학을 놓지 말아야 하는지 들어봤다.

동아리 만들어서라도, 우주로

포항공대 항공우주연구회인 PSI 소속 학생들이 전남 고흥의 발사장에서 직접 설계한 로켓을 발사하기 전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주의강씨 제공

포항공대 항공우주연구회인 PSI 소속 학생들이 전남 고흥의 발사장에서 직접 설계한 로켓을 발사하기 전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주의강씨 제공

그래도 포항공대인데, 실망을 좀 했던 기억이 나요.”

나로호 발사를 계기로 항공우주공학자를 꿈꾸게 된 김경민(19)씨는 대학 입학 직후 느낀 소회를 이렇게 회상했다. 한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 중 한 곳이니 비행기나 로켓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실습은커녕 ‘로켓 공학’ 과목이 2년에 한 번씩 열릴 뿐이었다. “항공우주 분야를 연구하려면 기계공학과에서 열역학, 고체역학, 유체역학과 같은 기초 이론 수업을 ‘주워 모아’ 듣는 게 최선이더라고요.” 국내 4년제 대학 중 학부에 ‘항공우주공학’ 전공이 개설된 대학은 서울대 등 16곳으로, 포항공대는 해당 전공이 없다.

김씨처럼 학교 수업에 아쉬움을 느낀 포항공대 학생들은 2년 전 동아리를 만들었다. 논문 스터디는 기본이고 로켓 부품을 구해 소형발사체를 직접 조립해보고 연간 두 차례 발사도 했다. 한 번 발사할 때마다 1,000만 원 정도 들고 발사장이 있는 전남 고흥까지 기자재를 싣고 이동해야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학생들의 얘기다.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주의강(21)씨는 “우주 분야는 안보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아 해외 선진 기술이 공유되지 않아, 기체를 직접 제작하고 발사하고 실패해보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부딪쳐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특히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유인 달 탐사 우주선인 아르테미스 2호 발사를 계기로 우주학도들의 도전 의식은 더욱 불타오르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이 더욱 중요해진 이유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항공우주학과에 재학 중인 장정우(20)씨는 “장기 프로젝트를 꾸준히 끌고 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이 보장된다면 우주학도들의 진로 불안도 해소되고, 연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초과학 사명 다하겠다는 책임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과학전공 2학년인 유민(21)씨는 고교 재학 당시 약대와 생명과학과 중 고민하다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주변에선 의아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물리 천재’로 불렸던 친구마저 현실적인 이유로 의대에 원서를 넣었기 때문이다.

유씨는 고심 끝에 마음을 정리했다. 안정된 미래 대신, 지식의 경계를 넓힌다는 기초 과학의 사명을 다하고자 했다.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질병의 근본 원인을 연구해보고 싶었어요.” 특히 우주, 심해와 함께 마지막 미지의 영역으로 꼽히는 ‘뇌’에 유씨는 매료됐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현재 유씨의 목표는 동양인의 유전적·환경적 특성에 맞춘 뇌 연구를 통해 성과를 내는 것이다. 한국의 뇌과학 교과서나 선행 연구 데이터가 서양인 위주로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뇌 연구가 주로 미국 등에서 이뤄진 탓에 서양인 고유의 유전 정보에서 기인하는 파킨슨병이나 헌팅턴병 등의 연구에 치우쳐 있다는 게 유씨의 진단이다. “뇌과학은 원천 연구가 중요하기 때문에 예산이 충분히 지원됐으면 좋겠어요. 상용화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꾸준한 지원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없던 원천 기술, 직접 만들자

이재명 대통령이 2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학장학생·올림피아드 대표단 친수 및 간담회에서 개최된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2월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학장학생·올림피아드 대표단 친수 및 간담회에서 개최된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부출연연구기관인 KIST에서 양자 소자 분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강지은(27)씨는 대학에선 반도체를 연구했다. 그는 동기들처럼 돈 잘 버는 대기업에 취업하는 대신 양자 소자라는 미지의 영역을 택했다.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내가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없잖아요. 물리가 좋아서 시작한 만큼, 세상에 없던 원천 기술을 내 손으로 직접 개척해보고 싶었어요.”

강씨가 연구 중인 분야는 양자 컴퓨터의 핵심 부품인 ‘양자 단일 광자 검출기’ 소자 기술.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을 중심으로 연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훗날 한국 첨단과학 기술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연구하고 있다.

강씨는 이공계 인재로서 연구자의 길을 계속 걸을지 망설이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비해 투자도 기술 인프라도 많이 나아졌어요. 지금 가장 부족한 건 ‘사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의지를 가진 분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지 않나요.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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