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풀은 그 방향으로 눕는다

인격과 몸이 함께 성장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성형 AI로 구현한 이미지. 그래픽=변한나·ChatGPT

최근 한 고교 스포츠 현장에서 인성 논란이 불거졌다. 사람들은 선수 개인의 됨됨이를 탓한다. 사건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선수 개인의 인성 문제인가, 아니면 우리가 스포츠를 가르치고 배워 온 방식의 문제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습관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어떤 행동을 계속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되는지가 결정된다. 용감한 행동을 반복하면 용감한 사람이 되고, 정의로운 행동을 반복하면 정의로운 사람이 된다. 인성은 능력과 별개로 존재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능력을 익히고 사용하는 방식 속에서 형성된다.

‘습관(習慣)’이라는 말 자체가 이를 보여준다. 습은 새끼 새가 날갯짓을 거듭하며 나는 법을 익히는 모습을 담은 글자다. 습관이란 반복을 통해 몸과 마음에 새겨진 무늬다. 연습(練習)은 그 반복 중의 한 가지다. 핵심은 그것을 ‘어떻게’ 반복하느냐다. 사람은 자신이 매일, 그리고 많이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이 된다. 같은 훈련도 어떤 마음가짐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을 만들어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스포츠는 단순히 던지고 치며, 더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기술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다. 선수는 훈련에 어떻게 임하는가, 지도자는 어떤 말로 가르치는가, 선후배는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 모두 사람됨을 빚는 교육의 과정이다.

폭언과 강압이 훈련의 일부가 되고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인된다면, 선수들은 기술과 함께 강압의 문화도 몸으로 익힌다. 그래서 기술은 늘어도 덕성은 자라지 않는다. 온전한 스포츠 교육만이 온전한 스포츠인을 키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교육의 목적을 기술 습득이 아니라 인간 형성에서 찾았다. 그들은 이를 파이데이아(paideia)라 불렀고, 그 이상을 아레테(aretē)라 했다.

아레테는 경기력의 뛰어남만이 아니라 지혜와 용기, 절제와 정의를 아우르는 인간다움의 탁월성이다. 동아시아의 ‘대학'(大學)에서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교육의 순서로 제시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수신(修身)을 큰 배움의 출발로 삼는다.

동양의 수신과 서양의 아레테는 같은 진실을 말한다. 사람은 무엇을 배우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배우느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그 매일, 많이 하는 일은 다름 아닌 운동이다.

운동선수는 운동을 통해서 온전한 사람이 된다. 운동을 잘하는 일과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나란히 놓인 두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훈련이 맺는 값진 두 열매다.

이 원리는 학생선수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코치의 훈계가 아니라 어른들의 몸짓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판정에 삿대질하는 선수, 생활체육 동호회에서 승부에 집착해 언성을 높이는 어른. 그런 장면들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최초의 스포츠 습관으로 새겨진다.

‘논어’ 안연편은 윗사람의 덕을 바람에, 그 영향을 받는 이들을 풀에 비유했다. “바람이 불면 풀은 그 방향으로 눕기 마련이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必偃)”고 했다. 한국 스포츠 현장에서 어른들이 매일 반복하는 방식이 바람이라면, 다음 세대의 습관은 그 바람 앞에 눕는 풀이다.

선수는 운동을 통해 선수가 되고, 운동을 어떻게 하느냐를 통해 사람이 된다. 이것은 어른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매일 하는 스포츠가 우리를 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실천이 될 때, 다음 세대의 스포츠도 비로소 교육이 되고 우리 사회의 스포츠도 바로 설 수 있다.

우리가 스포츠를 어떻게 하느냐가 어떤 사람과 어떤 사회를 키울 것인지를 결정한다.

최의창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한국일보]

작성자

0
0

TOP 10 NEWS TODAY

오늘 가장 많이 본 뉴스

LATEST TODAY NEWS

오늘의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