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황태자로 불린 30대 집권여당 서울시장 후보
낙선 뒤 넉 달 만 탈당… 24년 이어진 ‘철새’ 멍에
李 대통령 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수석최고위원
김민석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그의 책 ‘퇴수일기’에 자신의 정치 역정을 이같이 자평했다. 그는 17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후보를 꺾고 집권 2년 차 여당 대표로 선출되며 또 한 번의 회복을 기록했다.
김 신임 대표는 서른두 살에 국회의원이 된 뒤 서른여덟 살에 집권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황태자’로 불리며 일찌감치 차세대 대권 주자로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집단 탈당한 ‘후단협 사태’로 한순간에 추락했다. ‘철새’란 꼬리표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두 차례 피선거권이 박탈되기도 했다. 정치 입문 이후 극심한 부침을 겪은 그가 ‘당대표가 로망’이라던 말을 실현하기까지 24년이 걸렸다.

15대 총선에서 영등포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김민석 대표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DJ 황태자’로 불린 30대 김민석
김 대표는 ’86세대’의 맏형 격 인물로 꼽힌다. 서울대총학생회장에 당선된 1985년, 미문화원 점거 농성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89년 영등포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재야 후보 고영구 변호사의 선거운동을 도우며 정계에 발을 디뎠다. ‘김대중표 개혁 공천’의 상징으로 불리며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첫 도전은 259표 차 석패로 끝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후보로 나선 199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당 청년특위를 맡으며 정치적 재기를 노렸다. 대선은 패했으나, 15대와 16대 총선에서 영등포을에서 내리 당선된 그는 2000년 김 전 대통령 당총재비서실장을 맡으며 범민주진영의 유력한 차기 주자로 성장했다. ‘DJ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2002년 11월 20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오른쪽)와 정몽준 후보가 심야회동에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한 뒤 여의도 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으로 러브샷을 하고 있다. 손용석 기자
서울시장 낙선 넉 달 만에 탈당…18년 야인 생활의 시작
2002년은 추락의 해였다. 그해 6월 집권여당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래도 서른여덟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재기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넉 달 뒤 정치적 분기점을 맞는다. 대선을 두 달 앞둔 10월, 정몽준 지지를 선언하며 탈당을 선언하자 민주당은 뒤집혔다. 김 대표는 “민주평화개혁세력의 후보 단일화를 통해 대선 승리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마지막 대안이라고 확신한다”고 탈당의 변을 밝혔지만, 민주당은 ‘이적행위’로 규정했다.
단일화 경선에서 패한 정 후보가 대선을 하루 앞두고 단일화 합의를 파기하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여기에 2004년과 2010년, 두 차례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각각 징역형이 확정되며 피선거권마저 잃었다. “김민석은 끝났다”라는 평가가 나온 시점이다. 야인으로 지내는 동안 중국과 미국으로 잇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재기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선거권 회복을 앞둔 2014년 ‘원외민주당’을 창당해 정계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6년 추미애 대표 체제이던 민주당이 원외 민주당을 흡수 합당하면서 복당이 이뤄졌다.
2017년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상황본부장을, 이후 민주연구원장을 맡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21대 총선에서 자신의 옛 지역구였던 영등포을에서 당선되며 18년간의 야인 생활을 청산했다.
李 대통령 “정말 뛰어난 리더십, 내각 잡음 없이 이끌어”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의 마지막 주례보고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은 2022년 대선을 기점으로 그는 대표적 친이재명(친명)계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대통령과는 별다른 인연은 없었으나 주요 당직을 거치며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1기 지도부에서 정책위의장을, 2024년 총선에서는 총괄상황실장을 맡아 총선을 지휘하며 민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2024년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연임에 도전한 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며 ‘이재명의 사람’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경선 초반 당선권 밖으로 밀리기도 했지만,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냐”는 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판이 뒤집히며 최대 득표로 ‘수석 최고위원’에 올랐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에 관하여’를 출간하며 이 대통령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2025년 6월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국무총리에 발탁된 그는 지난 7월 “남은 과제는 국회와 당으로 돌아가 계속하겠다”며 총리직에서 물러나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앞선 6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정말 뛰어난 리더십으로 내각은 잡음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제가 제시하는 방향대로 치열하게 잘 달려 왔다”고 김 대표의 다음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김현우 기자 (with@hankookilbo.com)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