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전차 레일에 걸려 넘어졌는데, 트럭이…” 샌프란시스코서 숨진 32세 한국인 여성의 비극

Yebin Kim, 32, was a native of South Korea, where she leaves behind her mother, father and two younger siblings after she was killed by a truck that struck her on San Francisco's Market Street on Aug. 7. (Courtesy of Yonga Cho)

서울대 출신 32세 김예빈 씨, 전차 레일에 바퀴 끼며 넘어진 뒤 트럭에 치여… 유가족 “왜 자전거와 차가 같은 차선을 쓰나”

샌프란시스코 아파트 냉장고에 붙은 달력. 9월 5일자에 빨간 별표가 찍혀 있었다.

1년 반 전, 더 넓은 세상을 찾아 미국에 온 32세 김예빈 씨가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돌아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8월 7일 아침, 마켓 스트리트에서 스쿠터를 타고 출근하던 김 씨는 트럭에 치여 현장에서 사망했다. 사고 지점은 마켓과 파웰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곳. 경찰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사인은 외상성 뇌 손상이었다. 길바닥에는 그녀의 헬멧과 스쿠터가 나뒹굴어 있었다.

“딸의 모든 것이 그리워요. 안아주고 싶은데 안을 수가 없어요. 집에 있으면 방에서 ‘엄마’ 하고 들어올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요.”

어머니 조용아 씨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경남 사천의 작은 농촌·어촌 마을에서 가난한 부모님을 대신해 두 동생을 돌보며 자란 예빈 씨. 그 책임감이 그녀를 대한민국 최고 대학인 서울대학교까지 이끌었다고 어머니는 회고했다. 대학 시절 2년간 영국 워킹홀리데이로 영어를 배웠고, 졸업 후에는 태양광 기업 큐셀(Qcells) 인사팀에서 일하며 “직장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녀의 재능은 일에만 있지 않았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했고, 최근엔 테니스에 푹 빠져 있었다. 가족은 그녀를 테니스복 차림으로 장례를 치렀다. 아파트에서 수거한 미키마우스 잠옷에선 딸 냄새가 났다. 스누피 인형과 가수 박효신 굿즈는 엄마와 함께 덕질하며 다투던 추억이 담긴 물건이었다.

“바퀴가 레일에 끼었다” 증언… 예견된 참사였나

사고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유가족 측 변호사인 리치 쇤버거는 경찰이 반복된 요청에도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ABC7과 샌프란시스코 스탠더드에 따르면, 사고 직전 김 씨의 스쿠터 바퀴가 전차 선로 레일에 끼어 넘어졌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전차 레일은 자전거·스쿠터 운전자들의 단골 낙상 원인”이라는 분노가 이어졌다.

변호인단은 보안 카메라 영상과 경찰 보고서를 확보 중이다. 시와 트럭 운전사를 상대로 한 부당 사망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도로 설계다. 샌프란시스코시 교통국(SFMTA)은 2020년 코로나 예산 위기를 이유로 마켓 스트리트 보호 자전거 도로 설치 계획을 축소했다. 현재 자전거와 스쿠터는 택시, 상용차, 버스와 폭 11피트(약 3.3m)의 차선을 함께 쓴다.

“수 톤짜리 차량과 스쿠터, 자전거를 매일 같은 좁은 차선에서 뒤섞이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고, 솔직히 어처구니없습니다(goofy).”

쇤버거 변호사의 말이다. SFMTA는 논평을 거부했고, 시 법무국은 “시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개인 간 사고에 대해 시가 책임질 수는 없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시신 수습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왔던 조 씨는 매일 딸의 사고 현장을 찾았다. 차와 자전거가 분리되지 않은 도로, 무단횡단을 해도 단속하지 않는 경찰을 보며 그녀는 한국과의 차이를 실감했다.

“예빈이는 꿈을 좇아 미국에 갔다가 차가운 시신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예빈이가 거기서 죽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빈 씨는 생전 절반 가까이를 고향이 아닌 곳에서 살았다. 고등학교, 대학교, 영국, 그리고 캘리포니아까지. 어머니는 그것을 딸의 스타일이라며 응원했다고 한다.

“예빈이가 미국으로 떠날 때 슬프지 않았어요. 더 넓은 세상을 찾는 걸 응원했거든요. 그게 예빈이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유골은 이제 집에서 차로 50분 거리의 아름다운 납골당에 안치됐다. 엄마는 딸이 멀리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조 씨는 오늘도 산책을 하며 딸이 좋아하던 노래를 듣는다. 그래야 딸이 곁에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작성자

1
0

TOP 10 NEWS TODAY

오늘 가장 많이 본 뉴스

LATEST TODAY NEWS

오늘의 최신 뉴스